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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Nov 08.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43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43. 7월 24일, 쉬농소 성(Château de Chenonceau), 앙부아즈 성(Château Royal d’Amboise)





이른 아침 작은 성의 정원과 숲은 맑고 상쾌한 공기와 크리스털처럼 반짝이는 햇살이 가득하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책을 했다. 여행이 끝나면 가장 그리울 것 같은 날이다. 투명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걸었다.


호텔의 뷔페식으로 차려진 조식을 먹었다. 살구, 수박, 딸기와 멜론 등의 과일과 서너 가지 종류의 치즈, 햄과 삶은 달걀, 신선한 오렌지 주스와 크루아상, 바게트 등이 정성스럽게 준비되어 있다.


성에 살면서 매일 이런 숲을 산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 안의 작은 예배당








루아르 고성 지역은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역이다. 루아르 강을 따라 15~16세기의 성이 80여 개가 있다. 성을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욕심에 자칫 휘둘릴 수 있다. 절제하고 또 절제하여 고른 성들이다.


첫 번째로 방문할 곳은 쉬농소 성(Château de Chenonceau)이다. 이 곳은 앙리 2세가 20살 연상의 절세미인이자 애첩이었던 디안 드 푸아티에 게 주었던 성이다. 물 위에 지어진 이 성은 여성스럽고 섬세하다. 앙리 2세가 낙마사고로 사망하자, 왕비였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게 빼앗긴다.


슈농소 성



이 두 명의 영리한 여인들은 왕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치열하게 살았던 라이벌이다. 수많은 그림에 여신으로 그려질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디안과 평범한 외모로 늘 디안에게 밀렸던 카트린. 그러나 결국 자신의 아들을 왕의 자리에 앉힌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이 두연인의 삶이 한 편의 영화 같다.

카트린과 디안의 초상화


성 내부에는 누가 보아도 여신처럼 아름다운 디안을 모델로 그린 그림들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반면 엄숙하고 강한 느낌의 카트린의 초상화가 대조적이다. 카트린이 침실 바닥에 구멍을 뚫어 아래층에서 사랑을 나누는 왕과 애첩의 모습을 염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내가 외모에 자신이 없어서일까 어느새 카트린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생전의 그들의 숨 막히는 전쟁은 양쪽으로 나뉘어 각자의 이름을 딴 정원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단정한 카트린의 정원과 화려한 디안의 정원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국말 오디오 가이드 기기가 있어서 아이들도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카트린 드 메디치의 정원




슈농소 성 내부는 여왕들이 사용했던 은밀한 침실과 당시 성내부의 식당과 부엌살림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다. 창밖으로 성 아래로 흐르는 초록빛 강물과 나무들이 보여서 마치 커다란 유람선에 타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강 위에 지어진 슈농소 성



두 여인과 또 다른 왕가의 여인에 관한 스토리가 담긴 성 내부를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성내의 정원, 농장과 숲도 아름답다.  왕실에서 사용할 허브와 각종 채소, 자두나무 등을 키우는 텃밭과 염소와 망아지 같은 가축을 키우는 우리가 있다. 오래된 마차와 클래식한 자동차들도 전시되어 있다. 덩굴로 뒤덮인 헛간도 예뻤고, 키가 큰 가로수가 줄지어 있는 길을 걸어 미로 정원으로 가는 길도 좋았다.


미로 정원



성 안의 농장
그림같은 농가 건물










앙부아즈 성

 


20분 거리의 앙부아즈 성(Château Royal d’Amboise)으로 간다. 루아르 강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지어진 요새의 역할도 했던 성이다. 여러 왕들이 사랑했던 성으로 증축을 거듭하여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성 아래로 호수처럼 잔잔한 루아르 강과 강 건너 집들과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루아르 강이 잔잔히 흐른다.



프랑스와 1세가 사랑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무덤이 이곳 성 부지 내의 작은 예배당에 있다.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예배당 바닥에 이름이 새겨진  소박한 무덤이다.


말년을 루아르에서 보낸 거장의 소박한 무덤



여기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기기가 있어서 아이들과 돌아보기가 수월했다. 아이들은 각자 성안 내 지도를 살펴보고 못 본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이럴 때는 나는 가능하면 아이들에게 말을 시키지 않고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한다.  동시에 나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갖기에도 좋은 기회이다.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하는 여행인지라 나만의 시간을 틈틈이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4시간 엄마로 사는 것은 꽤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엄마와 계속 붙어 있으면 아이들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도 쌓이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들이 지도를 보고 어디로 가야할지 정하면 나는 뒤따라 간다.








호텔 주변의 목가적인 풍경과 귀여운 염소들
하나 둘 불이 켜진 호텔의 저녁 풍경



단 2틀 동안이지만 우리의 성으로 돌아와서 마지막 호화로운 만찬을 즐긴다.  친절한 웨이터가 와인 이름을 말해주고 나는 또 즐겁게 받아 마셨다. 13살 딸은 이제 엄마의 훌륭한 대화 상대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들은 저녁 식탁이 마무리될 때까지 앉아 있기가 어렵다.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풀밭을 한 바퀴 돌고 와서 디저트를 한입 먹고, 또 한 바퀴 돌고 오는 식이다. 녀석이 꽤 오래 식탁에 돌아오지 않아 찾아보니 제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놀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엄마랑 누나는 아무래도 아들의 욕구를 다 충족시킬 수 없나 보다.


오늘도 이어지는 호사스러운 와인과 만찬


두 남자아이가 한참을 논다. 미국에서 온 11살짜리 마크와 그의 부모와 4살 어린 여동생은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 사이 아들은 그 부모들과도 통성명을 하고, 자신의 별명은 monkey라고 알려준 후였다. LA에서 왔다는 이 부부는 노르망디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생일잔치에 다녀와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부인은 유명한 TV쇼의 pd이다. 남편도 마치 영화배우처럼 멋지다. 어쩌다 보니 이 부부와 새벽 1시까지 호텔 바에서 위스키를 여러 잔 마시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두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동안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게임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놀았고, 이제 자러 가야 한다고 하니 모두 아쉬워한다.


오랜만에 흥미로운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고 어른들의 대화를 했더니 나도 아이마냥 들뜬 기분이어서 과음을 하긴 했다. 저녁 식사 때 와인을 4~5잔 마시고, 또 위스키 몇 잔을 더 마셨으니 말이다. 아이들과만 지내는 것이 조금 힘든 때도 있던 여행이었는데, 내 사정을 아는 듯 쾌활한 대화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고마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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