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현 Oct 23. 2022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53

프랑스 런던 아일랜드

8 5 런던


파리의 에어비엔비 숙소는 네 명이 지내기에는 좁았다. 어느 새벽 3시에는 옆집 커플의 이유가 분명한 신음 소리에 잠에서 깨기도 했다(아이들은 깊이 잠들어서 못 들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파리 한가운데 위치한 점, 위치를 생각했을 때 과도하지 않은 비용이 큰 장점이었다. 복작복작 좁은 숙소에서 부지런히 도 움직였던 9일간의 체류를 끝내고 런던으로 가는 날이다. 네 명의 짐이 제법 많으니 우버 중에서도 좀 큰 차를 예약해서 파리 북역으로 갔다. 숙소에서 차로 십여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서 편리하다.


기차역에서 영국 입국절차를 마치고 무사히 열차를 탔다. 처음 타보는 유로스타는 짐칸도 넉넉하고 좌석도 쾌적하다. 최대 시속 300km, 도버 해협을 잇는 해저 터널 길이가 50km인데,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터널이라고 한다.


50여 일 동안 정들었던 프랑스를 나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다. 기차  풍경을 바라본다. 여행의 첫 과제였던 니스에서 파리까지 자동차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뿌듯함을 감출 수 없다. 






런던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추억의 장소이다. 26세의 나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 혼자 지내던 작은 원룸의 세간을 모두 정리하고, 가장 큰 여행용 캐리어 하나만을 남겼다. 그때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겁 많고 걱정 많은 소심한 인간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옛 기억을 모두 단절하고 살아보겠다는 대찬 포부는 1년 만에 꺾이고 말았다. 춥고 외롭고 또 불안했던 1년여의 타지 생활이었다. 그러나 추억은 항상 아름답게 각색되는 법. 늘 런던을 향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


세인트 판크라스 역(St. Pancras International)에 도착했다. 숙소는 도보로 약 10분 거리의 에어비엔비이다. 대형 캐리어를 끌고 가야 했지만, 10분 정도면 천천히 걸어갈만하다.  런던의 숙소를 정할 때 꽤 고민을 했다. 어쩐지 파리보다 런던의 숙소가 훨씬 비쌌다. 파리에서처럼 도심에 숙소를 마련하려니 비용 부담이 너무 컸다. 그나마 런던에 들어오고 나갈 때 편리한 역 주변의 숙소를 선택했다. 산책삼아 도심까지 걷기도 하고, 거리가 먼곳은 우버로 이동했다.


King's Cross St.Pancras


짐을 숙소에 대충 던져두고 코벤트 가든으로 향했다. 내가 기억하는 런던의 모습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고 싶었다.  천천히 걸으며 파리 시내와 비교하며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 건물, 간판들, 심지어 길에 나뒹구는 쓰레기까지 반가웠다. 파리 시내가 새침한 아가씨 같다면, 런던은 슬리퍼 끌고 다니는 자유로운 영혼의 청년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일요일 오후, 코벤트 가든은 여왕 분장을  사람과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있는 사람들,  병사들로 분장한 사람들, 바닥에 각국의 국기를 그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치 야외의 커다란 연극 무대 같다. 검은   마리가 끄는 마차에 검은색 양복과 모자를  마부가 지나가고,  영국 신사와 숙녀복 차림을  행사 요원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야외 연극 무대 같은 코벤트 가든 주변



피카디리 서커스를 지나 트라팔가 광장까지 걸었다런던에 머물던 당시 일주일에 두세 번씩 방문했던 내셔널 갤러리에 들렀다. 입장료가 무료라 부담 없이 와서 오래오래 그림을 보고 가곤 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여행 과잉의 시대라서 그런지 여유롭게 미술관을 돌아보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조금 슬펐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 동안에도 큰 변화 없는 런던 시내







세인트 제임스 공원까지 걸어가 보았다. 영국에서 사귀었던 친구들과 잔디 위에 작은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수다를 떨며 오후 한때를 보내곤 했던 추억의 장소이다. 수많은 나무와 넓은 호수, 오리들과 백조들도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공원의 터줏대감들
런던이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가 도심에 이런 큰 공원이 있어서 인 것 같다. 







돌아보면 그때는 훨씬 젊었고 20대였고 가능성이 지금보다 더 많았고, 선택의 폭도 더 넓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외롭고 소외된 고독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떠올려 보니, 더 어깨를 펴도 되고 더 느긋했어도 되었을 텐데, 잠시 그때로 돌아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아무 문제없으니 걱정과 불안을 내려놓으라고. 


나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첫날에 어슬렁거릴 때가 제일 행복하다. 



작가의 이전글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5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