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난 어릴 때 운동회 하던 날이 그렇게 좋더라.
두근거리는 음악이 은은하게 들려오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모두가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잖아.
부모님이 맛있는 도시락과 먹거리들을 잔뜩 들고 오셔서 제일 좋은 자리를 맡으려는 그때부터 무지 설렜어.
달리기를 몇 등을 해도 괜찮았던 때, 한 학년이 단체로 춤추며 연습한 결과를 보여줄 때는 반짝반짝 셔터음이 멈추지 않았어.
난 지금 그 시간 속에서 날 찾고 있어.
웃고 있나? 즐거우려나? 어쩌면 달리기 꼴찌라며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아빠의 손은 쉬지 않고 필름을 감으며 나를 찍었지.
아주 순수한 기쁨과 사랑이 느껴져.
매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아빠와는 반대로, 엄마는 나를 눈으로 담기에도 바빠 보이네.
맞아. 이렇게 시간을 간직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랐었지.
조심조심 춤추는 아이들을 지나 어린 나에게 다가가는데 벌써 내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야.
시선을 곧게 맞추었어.
그 맑은 눈은 자신의 부모가 어디 있는지 열심히 찾으면서도 춤추는 데에 정신이 팔려있었어.
겨우 내 허리에 닿을까 말까 한 작은 몸으로 참 열심히도 하는 모습은 지금의 내가 봐도 좀 기특한 것 같아.
앨범을 좀 더 넘겨볼까.
앞장을 가득 메우던 내 사진이 줄어들고 공백으로 메운 빈 앨범 종이만이 넘어간다.
쓸쓸하게 두꺼운 앨범을 덮고 나면 어쩐지 외로워.
굳이 앨범을 펴보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수 백번 반복되는 장면들이 있어.
예쁜 꽃가루가 날리던 그때와 비교되는 삭막한 공기,
거친 말을 가득 안고 나에게 날아오는 종이뭉치들,
내 반응을 찍고 맛보려는 듯한 손가락들.
외우려 하지 않아도,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내 머릿속 영사기는 쉼 없이 순간을 반복해서 보여줘.
찬란한 기억을 찾아 하나씩 짚어야 했던 내 수고는 몰라준 채 내 하루에 끼어들지.
정말 자비 없는 불공평함이야.
길고 긴 필름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알고 있는 기억을 또 보여줘서 어쩔 건데.
피나는 절규에도 쏟아지는 필름은 이젠 내 몸을 휘감을 만큼 끝을 향해 달려갔지.
또 나를 기억으로 묶으려는구나.
시대가 발전하며 함께 성장한 트라우마는 이젠 스크롤 하나로 나를 그 순간으로 끌고 가버려.
클릭, 클릭.
반복 재생, 구간 재생.
그만.
그래,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순수한 기쁨이 나를 해치던 순간을 잊지 말라는 거지?
사실은 위험을 미리 알려주고 싶었던 거지? 제발 그런 거라고 해주면 안 될까.
너도 알고 있잖아. 과거는 과거로 두고 흘려보내야 해.
나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날 리가 없어.
나는 새로 자랐고 너는 그만큼 낡고 오래됐어.
트라우마라는 허물을 두른다 해도 그게 곧 내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
난 이제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