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극복이야

위기

by 결화



요즘 들어 자주 찾아오네.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건 여전해서 네가 처음 내 앞에 섰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아.
사실, 애초에 문을 잠근 적도 없었으니까 늘 내 안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누가 들여보냈는지, 아니면 내가 혼자 만들어낸 모습인지조차 확실치 않아.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좀 무서워.

어디부터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너인지 점점 흐려지는 경계 속에서,

네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


우린 닮은 구석이 너무 많잖아.
넘쳐나는 생각은 전부 무음, 기척 없이 나타나고, 가만히 나를 지켜보는 방식까지.


사람들은 어서 널 밀어내야 한다고 말해.
'극복'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입에 담으면서 말이야.
그 단어는 언제 들어도 낯설고, 나한텐 너무 무겁게만 느껴져.

그 말은 위기와 닮은 널 떨쳐내야 한다는 뜻이겠지.


나는 그냥 조용히 앉아서 너를 부드럽게 바라보는 연습을 할 뿐인데.
내가 오늘만큼은 괜찮을 거라고 믿으면 넌 나를 데려가지 않을 거잖아.


돌보는 척, 말을 거는 척, 괜찮은 척.

사실 그런 적조차 없었다는 하루하루를 지냈어.
지난밤 사이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마치 네가 없다는 듯이.


가끔은 네가 너무 조용해서 더 무서워.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다가와놓고 말조차도 하지 않으니까,
내가 괜히 더 많은 의미를 만들어내게 되거든.


‘오늘은 괜찮은 날일까’
‘아직도 나를 안고 있진 않겠지’
두려운 생각이 커질수록 너의 자리는 작아지지 않고 내 심연까지 닿아오는 기분이야.


내가 먼저 말을 걸면 너는 여전히 가만히 듣기만 해.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내 안 어딘가를 꼭 쥐고 있는 너의 손길이 느껴져.

절대로 놓지 않을 거라는 너의 비겁한 의지 같아.


그저 뱉은 숨소리에도 놀라 얼굴에 두려움을 담았던 순간도 있었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숨결이 나를 안심시키기도 했어.

아니, 너였기 때문에 안심했을지도.

아직 여기에 있다는 신호였으니까.

그래서일까, 나는 아직도 문을 닫지 못해.


어쩌면 내가 먼저 열어두고 있었는지도 몰라.

익숙한 온기를 놓기 무서워서.

혹시 지금까지 버틴 게 전부 너 때문이었을까 봐.
나만, 너를 껴안고 있었던 게 아닐까 봐.


그래도 언제까지고 여기 머물 순 없다는 걸 알아.
너와 함께 있는 동안에도 나는 아주 조금씩, 고요히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점점 멀어지는 너와 나의 팔이 증명해주고 있어.


그러니까 오늘은 네가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만 끄덕일게.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극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