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어에는 관사가 존재할까?

동양과 서양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by 세이지SEIJI

공부의 두 가지 방법

공부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누군가가 알아낸 지식과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방법과 어떤 현상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그 답을 구해보려고 하는 방법이 있다. 사실,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공부는 존재하기 힘들지만, 현대의 한국 교육은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주입식 교육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는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할 때에는 반드시 위의 두 가지 방법 모두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져 그 답을 얻을 때야말로 배움의 즐거움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방법을 소홀히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다면 어느 분야의 공부이건 지루하고 재미없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앞에서 영어와 한국어는 극명하게 다른 언어 중 하나라고 했다. 한국인이 영어를 배울 때 한국어와 다른 영어의 차이점이 어디에서 오는지, 왜 다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당연히 궁금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영어 교육은 다르다는 것만 알려주고 '왜 다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궁금해할 시간이 없는 것처럼 몰아붙인다. 수능 시험 대비하고 토익 시험 점수 잘 나오려면 그런 것을 궁금해할 시간이 없다고 다그친다.


한 언어를 제대로 구사한다는 것은 그 언어가 모국어인 자들의 철학, 즉 '세상을 보는 관점'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영어의 관사를 잘 쓸 줄 안다는 것은 영어에 관사가 존재하는 이유와 왜 그들에게 그것이 중요한지에 대한 그들의 철학을 이해했다는 것과 같다.

이제부터 왜 영어에는 관사가 존재하고,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아보자.



관사에 담긴 철학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약 2,500년 전의 고대 그리스와 고대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 동양과 서양으로 대표되는 이 두 고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본 눈, 즉 관점의 차이가 관사가 있는 언어와 없는 언어로 나누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은 어떤 곳인가'라는 질문, 즉 고대 동서양인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관은 두 문명의 거리만큼이나 서로 달랐다.

고대 그리스인은 우주를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사물들의 조합'으로 생각했고, 고대 중국인들은 우주를 '연속되는 하나의 물질'로 여겼다.

서양인(텅 빈 우주 공간) VS 동양인(기로 가득찬 우주 공간)

이런 생각은 현대인에게는 상관없는 옛날의 일일까? 여기 이에 답해주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있다.

인지심리학자인 무츠미 이마이(Imae, M.)와 디드레 겐트너(Gentner, D.)는 다양한 연령대의 일본인과 미국인에게 코르크로 피라미드를 만들어서 보여주고 그것이 '닥스'(Dax)라고 알려주었다. 그런 후에 사람들에게 두 물체를 보여주었는데, 하나는 모양은 피라미드인데 재료가 코르크가 아니었고, 다른 하나는 재료는 코르크지만 모양은 피라미드가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 어떤 것이 '닥스'인지 고르게 했는데, 미국인들은 주로 모양은 같지만 재료는 다른 물체를 골랐고, 일본인들은 같은 재료지만 모양은 다른 물체를 닥스로 골랐다. 이 실험은 그 후 다시 'EBS 다큐멘터리 동과서' 팀에서 실행되었고, 결과는 앞 실험과 같았다.

가운데 물체가 닥스

이 실험의 결과가 말해 주는 것은 동양인은 '물질'에 집중하고, 서양인은 '물체'에 집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크기나 겉모습 윤곽에 중점을 두면 물체, 그 물체를 이루는 재료에 중점을 두면 물질이 된다. 즉,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은 물질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미국인을 비롯한 서양인은 물체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주는 텅 빈 공간에 독립된 개체들이 떠 있는 곳이라고 인식한 고대 그리스인과 우주는 기(氣)로 가득 찬 공간이고 사물 간은 기로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한 고대 중국인의 우주관과 상통한다. 개체성을 중시하는 서양인과 사물 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인이 탄생한 것이다.



언어는 세상을 인식하는 철학의 거울

이런 세계관이 어떻게 언어에 영향을 끼친 것일까? 언어는 기계적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거울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도 한국어와 영어에는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한국어로는 '태어나다'라고 하지만 영어로 옮기면 'be born'이라고 표현한다. Be born은 낳다라는 동사 bear를 수동태로 바꾼 표현이다. 즉, 직역하면 '낳음을 당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한국인에게 태어남은 주체적인 일이지만, 서양인에게는 수동적인 일인 것이다. 태어나다처럼 그 자체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동사를 영어에서 찾기 힘들고 능동동사인 bear(낳다)나 create(창조하다)의 수동형만이 한국어 태어나다에 대입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리고 '죽다'라는 표현에서 좀 더 겸손한 표현에 '돌아가셨다'라는 우리 표현이 있다. 돌아갔다는 것은 흙으로 돌아갔다는 뜻 혹은 생은 돌고 돈다는 윤회사상이 담긴 표현이다. 이 표현을 직역한다고 영어로 'He returned.'라고 하면 영어권 사람들이 이해할까? 영어에서는 died라는 표현 대신 passed away라고 한다. 즉, 지나가버렸다. 지옥이든 천국이든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났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천국과 지옥, 이 세상과 하느님의 세상으로 구분 짓는 기독교적 관점이 반영된 표현이다.


이렇듯 언어는 철학뿐 아니라 그 언어가 최초로 생기고 수천 년 동안 겪은 모든 역사가 반영된 거울이다. 언어 공부를 할 때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명사 중심 vs 동사 중심

다시 개체성을 중시하는 서양인과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인의 사고 체계로 돌아오자. 동양인은 사물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 여겼고, 그 연결 관계를 표현하는 동사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서양인은 각 개체는 독립적이라 여겼고, 개체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따라서 각 개체를 나타내는 '명사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언어'를 갖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커피를 더 마실 것인지 청하는 상황에서 딱 중요한 핵심만 남기고 표현하라 하면 영어와 한국어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Would you like to have) more coffee?

(커피를) 더 마실래?


영어는 more coffee라는 명사가 남았고, 한국어는 더 마시다라는 동사가 남았다. 동양에서는 개체 간의 관계, 즉 커피와 마시다라는 관계에 집중하기에 동사적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반면에 사람과 커피가 서로 독립된 개체라고 믿는 서양에서는 개체인 명사에 집중해 명사적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사물이 독립된 개체라고 믿는 서양의 언어는 각 개체의 속성을 대표하는 명사가 언어의 중심을 이루고 이 명사의 범주를 중시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공통의 속성을 지닌 것을 같은 범주로 분류했지만, 고대 중국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같은 범주에 속한 것으로 보았다.


『생각의 지도』 저자 리처드 니스벳과 지리준, 장지용이 중국과 대만 대학생들과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다음 실험은 범주화에 대한 동서양 차이를 잘 보여준다. 학생들에게 세 가지 사물의 이름을 제시하고 서로 가장 관련 있는 2개를 고르도록 한 실험이었다. 제시된 3가지는 판다, 원숭이, 바나나였는데, 중국과 대만 대학생들은 대부분 원숭이와 바나나를 고른 반면, 미국 대학생들은 대부분 판다와 원숭이를 골랐다.

범주화 실험

즉, 동양인은 '먹는다'와 같은 동사를 통해 두 사물 간의 관계성을 설명하려 하고, 서양인은 판다, 원숭이와 같은 명사를 통해 사물의 범주를 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범주화와 속명(generic nouns)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물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작업은 '그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물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그 개체가 공통 특성을 가지고 모인 집합의 범주 자체에 대한 이름, 즉 '속명'(generic nouns)이 발달된다.


예를 들어, dog라는 영어 명사가 있다. 이 명사는 a dog, the dog, the dogs, dogs라는 표현이 가능한데, 이 중에서 개의 범주 자체를 가리키는 속명은 dogs이다.


개체를 중시하는 서양인의 언어인 영어는 명사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명사를 공통적 특징으로 묶는 범주화가 활발하다. 그 범주화를 표현하는 기능어가 바로 '영어의 관사'이다.

따라서, 영어에서는 불특정 개 한 마리를 얘기하는지, 특정 개 한 마리 혹은 여러 마리를 얘기하는지, 아니면 개 일반이라는 속성을 의미하는지 구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나는 개를 좋아한다.'라는 문장을 영어로 표현할 때 I like dog. / I like the dog. / I like a dog. / I like the dogs 모두 논리적으로 맞지 않음을 이제 알 수 있다.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눈앞 존재하는 실존적 개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개라는 속성을 담은 그 범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호를 나타낼 때의 대상은 셀 수 있는 명사라면 '제로관사 복수형'(a, the 아무것도 붙이지 않은 복수형)으로 표현해야 올바른 표현이 된다.

I like dogs.


맥락적 생략의 차이

그러나 한국어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이러한 구분을 잘 하지 않으며, 맥락을 통해 유추한다. 이러한 맥락적 생략 현상은 관사뿐 아니라 주어나 목적어의 생략에서도 일어난다.

'(나는) 배고프다'라고 할 때 말하는 당사자가 배고프다고 쉽게 유추하기 때문에 종종 주어인 '나'를 생략한다. '(너는) 그거 좋아하니?' '어, (나는 그것을) 좋아해.' 표현에서도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된다. 이것을 그대로 영어로 표현하면 불완전한 문장이 돼 버리고 만다.


"배고프다" → "Am hungry." "그거 좋아하니?" → "Like it?" "어, 좋아해." → "Yes, like."

영어에서는 맥락적으로 유추되어도 생략이 일어나지 않는다.


"Am hungry." → "I am hungry." "Like it?" → "Do you like it?" "Yes, like." → "Yes, I like it." (실제로는 Yes, I do로 대답하는 게 더 흔하지만 여기서는 이 부분은 다루지 않겠다)


영어 관사는 단순한 문법 규칙이 아니다. 개체를 독립적으로 인식하고 범주화를 중시하는 서양인의 철학과 세계관이 만들어낸 언어적 산물이다.

다음 글에서는 관사에 담긴 역사를 들여다보며 영어 왜 관사가 생겼는지 더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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