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관사의 역사
"너, 사과 먹을래?"
한국어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말이다. 그런데 이걸 영어로 옮기려는 순간, 머리가 복잡해진다.
"Do you want apple?" "Do you want an apple?"
뭐가 맞지? 왜 사과 앞에 'an'을 붙여야 하는 거지?
한국인이 영어를 배울 때 끝까지 발목을 잡는 게 바로 이 관사다. a, an, the. 도대체 언제 쓰는 건지, 왜 필요한 건지, 우리에겐 평생 낯설기만 하다. 한국어에는 관사가 없으니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어에는 관사가 언제부터 있었을까? 처음부터 있었던 걸까, 아니면 중간에 생긴 걸까?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조금이라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 언어들에도 관사가 있다는 것을. 프랑스어는 un, une, des, le, la, les... 여섯 가지나 되고, 스페인어는 한술 더 떠서 여덟 가지다.
그러니까 영어만 특이한 게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 언어들이 다 관사를 쓴다는 거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유럽 언어들에는 관사가 언제부터 있었을까?
이야기는 18세기 말 인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동인도 회사의 법률가였던 윌리엄 존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인도 콜카타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다가 깜짝 놀랄 만한 걸 발견한다. 산스크리트어와 그리스어, 라틴어가 이상하게 닮아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숫자 '3'을 보자.
산스크리트어: trayas
라틴어: tres
그리스어: trias
발음이 거의 비슷하다. '아버지'를 뜻하는 단어는 어떨까?
영어: father
산스크리트어: pitar
라틴어: pater
그리스어: pater
이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비슷하다.
존스는 1786년 학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언어들은 분명 지금은 사라진 어떤 공통의 뿌리에서 나온 게 틀림없다." 이것이 '인도유럽어'라는 거대한 언어 가족의 발견이었다.
영어는 이 인도유럽어의 한 갈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게르만어파 중에서도 서게르만어에 속한다. 독일어, 네덜란드어가 같은 형제고,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는 라틴어에서 갈라져 나온 사촌쯤 된다.
자,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고대 페르시아어나 라틴어 같은 아주 오래된 언어들에는 관사가 없었다.
놀랍지 않은가? 영어에 그렇게 큰 영향을 준 라틴어조차 관사가 없었다는 거다. 심지어 고대 영어, 그러니까 5~6세기 앵글로색슨족이 쓰던 초기 영어에도 관사가 거의 발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관사는 어느 시점에 갑자기 생겨난 거다.
2015년, 러시아 학자들이 이 의문을 파헤친 논문을 발표했다. 제목은 《서유럽 인도유럽어에서 관사의 기원》. 이 연구자들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서유럽 언어들에 관사가 언제부터 쓰였는지 추적했다.
그들은 몇 가지 가능성을 놓고 하나씩 따져보기 시작했다.
가능성 1: 그냥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언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진화하잖아? 관사도 그렇게 생긴 거 아닐까?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같은 인도유럽어를 쓰는데도 서유럽과 동유럽이 칼로 자르듯 나뉜다는 거다. 러시아어, 폴란드어 같은 동유럽 언어들에는 관사가 없다. 저절로 생긴 거라면 이렇게 지역별로 딱딱 나뉠 리가 없다. (X)
가능성 2: 8세기에 무슬림이 유럽을 정복하면서 아랍어의 영향을 받았다?
아랍어에는 'al-'이라는 정관사가 있다. 무슬림 정복 시기에 이게 유럽 언어에 들어온 거 아닐까?
그런데 8세기 이전 기록에 이미 관사가 나온다. 시기가 안 맞는다. (X)
가능성 3: 중세에 유대인들이 유럽에 정착하면서 히브리어에서 들어왔다?
이것도 말이 안 된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럽 사회에서 주류가 아니었다. 보통 힘센 쪽의 언어가 약한 쪽에 영향을 주는 법인데, 반대 상황이었으니까. 게다가 성경을 유럽 언어로 처음 번역한 게 930~960년경인데, 그때 이미 관사가 쓰이고 있었다. (X)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은 4세기 어느 주교에게서 나온다.
울피라스(Ulfilas)라는 이름의 주교가 있었다. 그는 고트족을 위해 성경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 고트족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던 게르만 민족인데, 당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고트족에게는 문자가 없었다.
그래서 울피라스는 문자부터 만들었다. 그리스 문자를 기본으로 삼고, 라틴 문자와 옛 룬 문자를 섞어서 27개의 고트 문자를 만든 거다. 게르만 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문자를 사상 전파에 쓴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리스어로 된 성경을 고트어로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게 나온다. 그리스어에는 이미 관사가 있었다. 울피라스는 그리스어의 관사 개념을 고스란히 고트어로 옮겼다.
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정관사(the)는 보통 '저것'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에서 왔다. 부정관사(a/an)는 '하나'라는 숫자에서 왔다."
실제로 영어의 'the'는 '저것'을 뜻하는 'that'과 같은 뿌리다. 독일어의 정관사 'der'도 마찬가지. 부정관사 'a'는 '하나'를 뜻하는 'one'에서 나왔다. 독일어 'ein'도 숫자 '하나'다.
울피라스가 성경을 완성한 건 약 369년경이다. 고트족은 이후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퍼져나갔고, 이 성경도 함께 퍼졌다. 4세기부터 7세기 사이 어느 시점, 이렇게 해서 유럽 언어들에 관사가 들어왔을 거라고 학자들은 본다.
관사가 들어왔다고 해서 무조건 쓰는 건 아니잖아? 사람들이 필요를 느껴야 살아남는 거다.
조승연 작가는 《플루언트》에서 상업의 발달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물건을 사고팔 때 "어떤 사과"인지 "그 사과"인지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는 거다. 그럴듯하긴 한데, 상업은 유럽 전역에서 다 발달했다. 왜 서유럽에만 관사가 자리 잡았을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옛날 영어는 지금보다 훨씬 복잡했다. 명사마다 남성, 여성, 중성이 있었고, 문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명사 형태가 변했다. 마치 한국어에서 "은/는/이/가/을/를"이 붙는 것처럼.
프랑스어를 보면 아직도 그런 흔적이 남아 있다.
예를 들면:
un homme (남자 한 명) – des hommes (남자들)
une femme (여자 한 명) – des femmes (여자들)
un beau garçon (잘생긴 남자애) – une belle fille (예쁜 여자애)
명사의 성별에 따라 관사도 바뀌고, 형용사도 바뀐다. 복잡하다.
그런데 영어는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대혼란을 겪는다. 프랑스 북부에서 온 정복자들은 프랑스어를 썼고, 피지배층 영국인들은 영어를 썼다. 약 300년간 영국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이 혼란 속에서 영어는 자연스럽게 간단해졌다. 명사의 성별 구분이 사라지고, 복잡한 어미 변화도 줄어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단순화한 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명사가 문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속성을 가졌는지 구분할 방법이 사라진 거다.
언어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인도유럽어에서 명사의 형태 변화가 단순해지면서 지시사가 관사로 바뀌는 현상이 관찰된다.
라틴어가 좋은 예다. 라틴어는 원래 관사가 없었다. 명사 자체가 6가지 형태로 변하면서 모든 걸 표현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복잡한 변화가 사라지고, 대신 관사가 나타났다. 그게 지금의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다.
슬라브어권(러시아어, 폴란드어 등)은 아직도 명사가 6~7가지 형태로 변한다. 그래서 관사가 없다. 근데 재미있는 예외가 하나 있다. 불가리아어는 명사 변화가 2가지로 간단해지면서 관사가 생겼다.
결국 관사는 언어가 간소화되면서 잃어버린 정보를 보충하기 위해 등장한 거다.
지금 우리는 영어 관사 때문에 골치 아파한다. a, an, the... 언제 쓰는 건지 헷갈린다.
그런데 만약 노르만 정복이라는 대혼란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a'와 'the' 말고도 남성 관사, 여성 관사, 중성 관사를 따로 외워야 했을지 모른다. 각 명사가 무슨 성별인지 다 암기하고, 그에 맞춰 관사를 바꿔가며 써야 했을 거다.
"사과는 여성 명사니까 une apple..." "아니지, 복수니까 des apples..." "앞에 형용사가 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영어 관사가 '그나마' 간단한 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를 다 버린 결과다.
"너, 사과 먹을래?"
이제 이 문장을 영어로 옮기려 할 때, 그냥 기계적으로 'a'나 'an'을 붙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4세기 어느 주교가 글자도 모르는 고트족을 위해 문자를 만들고 성경을 번역했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어의 관사 개념이 게르만어로 넘어왔다. 수백 년간의 침략과 정복을 거치며 영어는 복잡한 옷을 벗어던졌고, 관사는 그 빈자리에서 명사를 설명하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그 작은 'a' 하나, 'the' 하나에 천 년이 넘는 시간이 담겨 있다.
우리가 관사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하다. 한국어에는 없는 개념이니까.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관사가 왜 존재하는지, 어떤 역사를 거쳐 지금 여기 있는지.
언어를 배운다는 건 결국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이다. 한국어 화자인 우리에게는 사과가 그냥 '사과'다. 하나든 여럿이든, 특정한 것이든 아니든, 문맥으로 알아서 이해한다.
하지만 영어 화자에게는 다르다. "an apple"인지 "the apple"인지가 중요하다. 듣는 사람이 그 사과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인지 여럿인지, 그게 대화의 흐름을 만든다.
관사는 단순한 문법 규칙이 아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다.
그러니 우리가 영어 관사를 완벽하게 쓰기 어려운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30~40년 넘게 관사 없이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모든 명사 앞에 'a'나 'the'를 붙이는 사고방식으로 전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다. 이해하는 거다.
영어가 왜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표현하는지, 그 뒤에 어떤 역사와 사고방식이 숨어 있는지. 그걸 알고 나면 관사는 더 이상 성가신 문법 규칙이 아니라, 영어라는 언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된다.
그리고 그 창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