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새벽과 잠시 헤어진 상태. . .
새벽 4시 반.
세상이 깨어나기 직전의 그 시간을 나는 무척 사랑했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동트기 전 청량한 푸른 빛, 아직 시작되지 않은 하루의 설렘, 모두가 잠든 고요함 속에서 오롯이 날 것 그대로인 내 의식. 그 시간에 마시는 커피 한 잔, 책상에 앉아 펼치는 책 한 권, 혹은 키보드 위에 올려놓는 손끝의 감촉. 그 모든 것이 특별했다.
새벽에는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연하게라도 희망이 느껴졌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 생겼다. 내 안의 근원적인 질문들도 그 시간에는 두렵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같은 물음 앞에서도 차분히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흔 이후, 그 시간을 잃어버렸다.
정확히는 새벽을 맞이할 수 있는 몸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밤 10시, 11시에 일찍 자려고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눈을 감아보고, 이런저런 자세를 바꿔보지만 소용없다. 운이 좋으면 자정 즈음 스르르 잠들지만, 대부분은 1시, 2시가 되어도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몸은 분명 피곤한데 잠들려면 필요한 그 나른함, 릴랙스한 느낌이 오질 않는다. 그저 심란할 뿐이다.
밤 2시의 각성은 새벽 4시의 각성과 완전히 달랐다. 같은 '잠들지 못한 상태'인데도, 밤에는 희망 대신 초조함이, 의욕 대신 '빨리 자야 하는데'라는 조급함이 밀려왔다. '이렇게 살아가도 되나' 같은 질문들도 밤에는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답 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잡음일 뿐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새벽을 포기했다. 전에는 억지로라도 일찍 일어나 그 시간을 누렸지만, 수면시간이 부족해지니 몸이 감당을 못 했다. 건강이 나빠지는 게 느껴졌다. 결국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루틴으로 바뀌었고, 새벽 4시 반의 청량함은 기억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종종 그 시간이 그립다. 세상이 깨어나기 전, 내가 먼저 하루를 시작하던 그 느낌. 희망을 느낄 수 있었던 그 각성의 순간들.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다. 취침시간만 컨트롤할 수 있다면 다시 새벽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려면 결국 내 하루 루틴을 되찾아야 하고,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걸 안다.
마흔 이후 잃어버린 건 단순히 '새벽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내 하루를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힘을 다시 되찾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언젠가 다시, 새벽 4시 반에 눈을 뜰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