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는 포기해야 하는 것들
아침에 눈을 떴다. 어제 밤 11시 반쯤 잠들어서 오늘 아침 6시 반까지. 중간에 깨지 않고. 통잠이었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이런 아침이!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 게 달랐다. 평소처럼 머리가 무겁지 않았고, 몸이 납처럼 가라앉아 있지도 않았다. 뭐랄까, '맑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머릿속 안개가 걷힌 느낌. 그리고 '채워진' 느낌. 잠을 제대로 잤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커피를 끊은 지 나흘째다.
커피는 내게 그냥 음료가 아니었다.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연료였고, 무기력한 일상에 작은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의식이었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은 나만의 안식처였다.
특히 프리랜서로 일하는 내게 카페는 사무실이자 은신처 같은 곳이었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앞에 놓으면 뭔가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하든 안 하든, 그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그런 커피를 포기하려니, 솔직히 지금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문제는 수면이었다. 잠드는 것 자체가 전쟁이었다. 침대에 누워도 한두 시간은 뒤척였고, 가까스로 잠들어도 2시간마다 깼다.
얕게, 불안정하게.
아침에 일어나면 잔 것 같지가 않았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피곤했다. 온몸이 무겁고, 기분은 불쾌했다. 그런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면, 당연히 커피가 필요했다. 커피를 마셔야 겨우 정신이 드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20년 넘게 살아왔다.
11시나 12시에 잠들어서 아침 6시, 7시까지 중간에 깨지 않고 푹 자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냥 한 번이라도.
문득 깨달았다, 이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점이라는 것을.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단순히 피곤한 게 아니라 모든 게 연쇄적으로 무너진다는 걸. 집중력, 기분, 몸 상태, 전부.
마흔이라는 나이는 잔인하다. 이십 대처럼 밤새도 괜찮고, 삼십 대처럼 무리해도 금방 회복되지 않는다. 몸이 정직하게 반응한다. '더 이상은 안 돼'라고.
그래서 커피를 끊어보기로 했다. 진짜로.
대신 요즘은 그린티를 마신다. 홍차도 마시고, 차이 라떼도 마신다. 솔직히 마시는 중에는 커피만큼 만족스럽지 않다. 뭔가 허전하다. '아, 이게 아닌데...' 싶다.
그래도 카페에 간다. 카페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은 포기할 수 없으니까. 커피 없이도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찻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게 나인가? 카페에서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있는 이 사람이 정말 나인가? 서른 살의 나에게 말해줬으면 안 믿었을 것 같다.
커피 없이 잘 살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다. 내일 다시 커피를 마시고 싶어질 수도 있다. 일주일 뒤엔 또 손에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이렇게 살아보려고 한다. 통잠을 자고 맑은 아침을 맞이하는 이 느낌을 더 경험해 보고 싶어서. 커피가 주던 순간의 기쁨보다, 깊은 잠이 주는 회복이 더 절실해져서.
마흔의 배움이란 아마 이런 것 같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법. 좋아하는 것도 때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젊었을 때는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사는 것'이 멋있어 보였다면, 지금은 '나를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진 것 같다.
4일 차.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오늘 아침의 그 맑은 느낌은 기억하고 싶다. 흔들릴 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