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수면 사이의 줄다리기
지난 연재글에서는 커피를 안 마신 지 나흘째라고 했었다. 그 뒤로도 가능한 커피는 멀리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긴 하다. 커피를 안 마신 초반에는 너무 오랜만에 중간에 깨지 않는 통잠을 잤던 터라 커피를 안 마신 후 나오는 수면의 효과가 엄청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커피를 안 마시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질수록 밤의 수면은 약간은 원래의 패턴으로 돌아오고 있는 느낌이다. 여전히 중간에 깨긴 하는데, 그 횟수가 줄었고, 비교적 전보다는 깊은 잠을 자는 느낌이다. 하지만 낮 동안 내내 졸린 듯 피곤한 듯 나른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카페에 가서 커피가 아닌 말차라떼, 초코라떼, 잎차 등을 시키면 참 밍숭맹숭한 게 역시 커피를 마셨을 때의 그 기분에 도달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내가 가는 단골 카페는 다행히 상시 디카페인 원두를 구비해놓고 디카페인 옵션을 제공한다. 다른 카페들은 디카페인 원두에 이유 모를 500원 혹은 1000원 추가를 하고 있지만 이 카페는 기존 메뉴들과 가격을 동일하게 해줘서 더욱 좋다. 물론, 맛의 차이도 거의 없다. 단, 카페인을 제거하는 화학처리 과정이 건강에 좋지 못하다고 해서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어차피 커피는 건강에 해롭다.
카페에서 커피 대신 다른 메뉴를 시키는 게 좀 주저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메리카노는 보통 4천 원 정도 하는데 잎차는 6천 원부터 시작하고, 카페라떼보다 초코라떼나 그린티라떼가 최소 500원 이상 더 비싼 경우가 많다.
하하하, 어떻게 해서든 커피를 계속 마셔보려고 별의별 핑계를 찾는 내 꼴이 너무 웃기고 안쓰럽다.
20대, 30대 한참 회사 일을 해야 했을 때는 하루에 커피를 5잔도 마시곤 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내 마음을 다잡고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회사 생활 내내 커피에 내 정신을 붙잡고 있었던 듯하다. 결국, 위궤양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지금은 절대 그때처럼 마시지 못한다. 아마 지금은 위만 아픈 게 아니라 진짜 건강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
챗GPT에게 커피를 마시되, 가능한 카페인의 영향을 덜 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GPT는 디카페인 커피를 추천했다. 그것 말고 말해 달라니까 로부스타 원두가 아라비카 원두보다 카페인 함량이 훨씬 높다며 가능한 아라비카 원두의 커피를 마시라고 권했다. 그리고 추출 방식도 에스프레소보다는 필터 커피나 프렌치프레스 방식을 추천해줬다. 그리고 자기 12시간 전까지만 마시란다. 카페인의 영향이 사라지는 데에 12시간 정도 걸린다며.
챗GPT의 조언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오전 11시 이전에 아라비카 원두로 만든 핸드드립 커피를 물을 많이 타서 연하게 마실 것.
술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은 지도 오래인데 이제 커피까지 포기해야 하는 삶이라니...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그런데 밤에 제대로 못 자는 나날은 진짜 더 이상 수용 불가능한 상태까지 왔다. 그럴 나이가 되었다.
금요일 밤 홍대에 가서 밤새 클럽에서 춤추고(그때도 술은 마시지 않고 생수를 마셨지) 새벽 5시 지하철 첫 차를 타고 다시 7시 파리바게트 아르바이트로 직행해서 오후 1시까지 일하던 대학생 때의 내가 아니니까.
마흔은 구구경심(口口驚心) 경계해야 할 때다. 2016년 SBS에서 방영되었던 '달의연인-보보경심 려'의 보보경심은 步步驚心 (보보경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걷는다는 뜻인데, 마흔은 입으로 들어가는 하나하나 조심해야 하는 그런 나이.
커피와 거리를 둔 지 열흘째. 지금은 커피를 안 마시는 것을 디폴트로 하고,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디카페인 커피를 허용하는 패턴으로 자리를 잡아가려고 하고 있다.
마흔은 맨정신으로 오롯이 하루를 살아낼 줄 알아야 하는 나이인 것 같다. 커피가 주는 낮의 의욕과 또렷함이나 술이 주는 밤의 흥겨움 대신 오롯이 내 정신만으로 24시간을 잘 살아내야 하는 그런 나이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