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모두 비평가가 되어야 하는가

프롤로그_AI 시대, 비평적 사고가 더 절실해진 이유

by 세이지SEIJI

프롤로그


우리는 언제부터 의심하는 것을 멈췄을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애초에 의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뉴스를 보고, 책을 읽고,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그저 받아들였다. 의심하고 질문하는 것은 비평가나 지식인 같은 특정 그룹의 일이라고 여겼다. 일반인인 우리는 그저 주어진 정보를 소비하면 그만이었다. 그게 편했고,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비평은 더 이상 전문가의 특권이 아니다

과거에 비평은 소수의 영역이었다. 신문의 문화면을 장식하는 비평가들, 학술지에 논문을 쓰는 교수들,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오는 전문가들. 그들이 세상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평가했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때로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저 넘어갔다.

왜냐하면 비평적 사고는 어렵고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전문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일상을 살아가는 데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AI가 만들어낸 새로운 위기

인공지능이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왔다. ChatGPT에게 질문하면 그럴듯한 답이 돌아온다. 이미지 생성 AI는 몇 초 만에 사진 같은 그림을 만들어낸다. 뉴스 기사도, 보고서도, 심지어 소설도 AI가 쓴다. 편리하다. 놀랍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왜일까?

첫째,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데이터로 학습한다. 그 말은 인간의 편견, 오류, 맹점까지 고스란히 학습한다는 뜻이다. 만약 역사 교과서가 특정 인물을 영웅으로만 서술했다면, AI 역시 그 인물을 영웅으로 소개할 것이다. 만약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가 왜곡되어 있다면, AI는 그 왜곡을 진실처럼 재생산할 것이다.

둘째, AI가 쏟아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가짜 뉴스만 해도 이미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거기에 AI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텍스트와 이미지까지 더해진다면? 2024년 미국 대선에서는 AI로 생성된 후보자의 가짜 음성과 영상이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앞으로 이런 일은 더 빈번해질 것이다.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AI를 이용한다면, 우리는 무엇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된다.

AI를 거부하고 쓰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AI는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채용 과정에서, 신용 평가에서, 의료 진단에서, 법률 자문에서. 우리가 AI를 직접 사용하지 않더라도, AI가 내린 판단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AI가 만들어내는 모든 결과물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 질문하는 것. 의심하는 것. 이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생존 기술이 되었다.



피곤했던 나의 비평적 기질

고백하자면, 나는 원래부터 비평적 사고 성향을 타고났다. 어릴 때부터 "왜?"라고 묻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 교과서에 쓰인 것,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나는 자꾸만 의문을 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게 참 피곤한 일이었다. 그냥 받아들이고 넘어가면 편할 텐데, 나는 계속 걸렸다. "정말 그럴까?", "왜 다들 이렇게 생각하지?", "이 말속에 숨겨진 전제는 뭘까?"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학교 학부생 시절, 교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도 나는 종종 "이게 맞나?"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철학책을 읽다가 화가 나서 책을 집어던진 적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뒤, 인문학을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해볼까 싶어 사이버대학 인문학과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 만에 자퇴했다. 교수들의 수업 수준과 방식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퇴 사유란에 "전공 교수 수업의 수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썼다. 교수들이 얼마나 열받았을까.


가끔은 이런 생각을 했다. '비평적 사고 같은 거 없이 태어났으면 얼마나 살기 편했을까.' 남들처럼 그냥 받아들이고, 고개 끄덕이고, 편하게 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야 정확하다.

좋건 싫건, 모든 사람이 비평적 사고를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던 이 기질이, 이제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능력이 된 것이다. 어쩌면 내 비평적 기질이 제대로 활용될 때가 온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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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비평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비평은 단순히 트집 잡기나 부정적으로 보기가 아니다. 비평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다. 모두가 옳다고 말하는 것에 "정말 그런가?"라고 묻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 너머를 보려고 하는 것이다.

비평은 대상을 깊이 읽어내고, 그 안에 담긴 의미와 맥락을 해석하며, 그것이 우리 삶과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밝히는 작업이다. 영화나 책만이 아니라, 사회 현상도, 역사적 인물도, 일상의 관습도, 심지어 우리가 쓰는 언어도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세종대왕은 훌륭한 왕이었다. 한글을 만들었고, 백성을 사랑했다. 우리는 이렇게 배웠다. 하지만 비평적으로 본다면? 세종 시대에 노비제도는 어떻게 작동했는가? 대외 정복 전쟁은?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결정들은? 세종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신화화된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효도(孝道)는 좋은 것이다."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비평적으로 본다면? 효라는 개념이 어떻게 가부장제를 정당화해 왔는가?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면서 개인의 자율성을 억압한 측면은 없었는가?

이것이 비평이다. 불편할 수 있다.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걸어갈 길

이 연재 '우리는 모두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에서 나는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세상을 비평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과거를 비평한다는 것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재검토하는 것이다. 공자(孔子)는, 소크라테스는, 칸트는, 그리고 우리가 배워온 역사 속 영웅들은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인가? 그들이 보지 못한 것, 그들이 정당화한 폭력, 그들의 사상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를 함께 들여다볼 것이다.

현재를 비평한다는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과 사건, 담론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다. 왜 'MZ세대'라는 범주화가 문제인가? '공정' 담론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SNS에서 소비되는 감정들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미래를 비평한다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세상에 대해 경고하고, 질문하고, 상상하는 것이다. AI가 지배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기후 위기 시대에 인간중심주의는 여전히 유효한가?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의 당연함을 의심하는 법을 함께 연습할 것이다. 왜 명절에는 여성들만 부엌에 있어야 하는가? 왜 회식은 당연한 문화로 받아들여지는가? 왜 동물은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여겨지는가?



함께 비평가가 되자

당신은 비평가가 될 수 있다. 아니, 이미 비평가다. 다만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오늘 접하는 뉴스 하나, AI가 준 답변 하나,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정말 그럴까?"라고 물어보라.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 하나에 "왜?"라고 질문해 보라.

처음엔 어색할 것이다.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습하면 할수록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들이 들릴 것이다.

이것이 비평적 사고의 힘이다. 그리고 이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나는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구체적인 예시들을 보여줄 것이다. 어떻게 질문하는지, 어떻게 의심하는지, 어떻게 다르게 볼 수 있는지. 함께 걸어가며 우리 모두 비평가가 되어보자.



세상은 우리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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