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감정으로 걷다》
② 도쿄편 – 눈가주름의 도시

“질서는 나를 감쌌지만, 감정은 어디에도 깃들지 못했다"

by seikoon

[이 시리즈에 대하여]


이 글은 도시를 소개하지 않습니다.

여행을 권하지도, 정보를 정리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지도를 따라 걷지 않습니다.

그 대신, 감정이 지나간 길을 다시 걸어봅니다.


도시는 내 감정을 붙잡았던 배경일 뿐입니다.

그 장소들은 내 안의 기억과 감정을 부드럽게 끌어올렸고,

나는 그 감정의 결을 따라 글을 남깁니다.


그러니 이 시리즈는, 도시를 읽는 방식이 아니라

감정을 다시 살아보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그날의 공기, 그 거리의 정적, 그 사람의 눈빛.

당신도 당신만의 도시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보색의 도시


도쿄(東京)의 감정은
보색처럼 조용히 부딪히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이방인이었지만,
그 이질감 덕분에
오히려 내 감정의 결이 선명해졌다.


도시는 나를 따뜻하게 초대한 적 없지만,
묵묵히 곁을 두고 있었다.


어딘가…
눈길이 닿으면 비로소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처럼.


질서가 나를 정리해줬지만,
감정은 초대받지 못한 도시.


● 바래진 풍경


중학교 시절,
나는 일본을 TV 너머의 ‘세련된 세계’로 기억했다.


1980년대의 음악,
정돈된 도시,
어딘가 앞서 있다는 공기.


하지만 내가 도쿄에 도착한 건
1990년대 초반, 유학생으로서였다.

여행이 아닌,
살아내야 할 시간의 시작이었다.


버블은 이미 꺼졌고,
도시는 너무 조용했다.


거리는 깨끗했지만,
그 깨끗함은 생기보다 체념에 가까웠다.


마치 오래된 사진이
빛에 바래 색이 바랜 것처럼.


그 감정은
어렸을 적 좋아하던 사람을
다 커서 다시 만났을 때 느끼는
어색한 실망감과도 비슷했다.


● 침묵의 출근길


도쿄의 출근길은
사람이 많은데, 조용하다.


비 오는 날,
사람들은 우산을
서로에게 젖지 않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각도를 조절한다.


30년 전에도 이미,
전철 안에서
가방이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 메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신문을 포켓 소설책만 한 크기로
곱게 접어 읽는 아저씨들을 자주 봤다.


거의 한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정보의 조각.


게다가 아저씨는
팔다리를 바짝 자기 쪽으로 모은 채
공간을 쓰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며
신문을 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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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옆 사람에 대한 배려일까,
아니면 질서에 대한 집착일까.


그저 도쿄의 리듬일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배려가
침묵으로 작동하는 도시.


그게 도쿄의 아침이었다.


● 우산 아래의 온기


내가 다리 다친 건,
당시 살고 있던 나카메구로(中目黒) 주유소 앞이었다.


눈 오는 날,
길 위에서 넘어진 나에게
낯선 아주머니가
우산을 씌워주며 조용히 물었다.


“구급차 불러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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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말없이,
우산을 씌운 채,
구급차가 올 때까지
내 옆에 서 있었다.


말도 없었고,
생색도 없었다.


그 순간,
도쿄는 조용히 나를 품었다.


그날의 우산은,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의 온도를
처음으로 알려주었다.


나는 그 따뜻함이,
왜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지를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 흔들리는 땅, 흔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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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진이 잦다.


살다 보면
건물이 흔들리는 건 일상이고,
사람들도 덤덤하게 넘긴다.


그런데 나는,
건물이 흔들릴 때마다
내 마음도 흔들렸다.


단지 땅의 진동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이 서 있는 바닥이
잠깐씩 무너지는 듯한 느낌.


● 오니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번은 친구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각자 편의점에서
오니기리를 골랐다.


그런데 한 친구는
맨손이었다.


왜 안 샀냐고 묻자,
“그냥 됐어.” 하고 웃었다.


아마 학비에, 아르바이트에
힘들었던 거겠지.


돈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도
“같이 나눠 먹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그 친구가 무안하지 않도록
모른 척 해주는
일본식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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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갑의 정, 테이프의 정


한국의 정은
두꺼운 겨울 장갑 같았다.


따뜻하지만,
감각이 둔해지고,
벗으려 하면
손끝이 시리거나
자국이 남는다.


일본의 정은
얇은 실크 장갑 같았다.


감각은 살아 있지만,
깊은 온기보다는
가벼운 닿음에 가까웠다.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도 생각했다.


한국인은 스카치테이프 같고,
일본인은 포스트잇 같다.


스카치는 단단하게 붙지만
떼어낼 때 종이가 찢기고,
포스트잇은
가볍게 떨어지지만
자국은 남지 않는다.


감정의 접착면조차,
문화마다 이렇게
다르게 작동할 줄은 몰랐다.


그날 아주머니가 씌워준 우산은,
스카치도, 포스트잇도 아닌 방식이었다.


그건 정답보다
온도가 먼저 도착하는 방식이었다.


● 번역된 감정의 리듬


사회학 전공 수업.
외국어 필수 과목으로 나는 중국어를 택했다.


중국어 교재를 읽고,
머릿속에서는 한국어로 해석하고,
입으로는 일본어로 발표했다.


언어를 바꿀 때마다
호흡의 리듬도 달라졌다.


서울에서 나는 숨을 참았지만,
도쿄에서는
숨의 깊이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도쿄는 나에게,
언어와 감정이 동시에 교차하는 무대였다.


● 나는 누구에게 멋져 보이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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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게 묻는다.


나는 한국인들에게
멋져 보이고 싶었던 걸까,


일본인에게
멋진 외국인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도쿄의 정리된 거리보다
내 안의 흔들림이 더 크게 느껴졌다.


● 거울 속 감정


서울은 나를 키운 도시였다.
숨을 참아야 했고,
자꾸만 상처를 눌러왔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아픈 손가락’**처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도쿄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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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뜨겁게 환영하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곁을 두고 흐르며
내 감정 어딘가에
주름처럼 얇고 오래된 흔적을 남겼다.


서울은 아픈 손가락이었고,
도쿄는 내 눈가주름이었다.


아픈 손가락은
늘 의식 속에 있고,


눈가주름은
거울을 볼 때마다
문득 드러난다.


서울은 늘 ‘지금’에 있었고,
도쿄는 가끔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도쿄는 나를 흔들지 않았다.
다만, 그 도시 안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머무르는 나의 감정이
나를 드러냈다.


● 숨을 불어넣는 질문


이 도시는 나에게
어떤 감정을 허락했을까?


그 감정은 머물렀을까,
흘러갔을까,


아니면 지금도 어딘가
내 안에 묵묵히 접혀 있는 걸까.


● 당신에게 묻는다


나는 도시를 말하지 않는다.


도시 위를 걸었던
내 감정을 디깅하고,


그 감정이 남긴
구조물 위에 글을 쓴다.


이 글은
도시의 지도가 아니라—
내 감정이 머물렀던
풍경의 흔적들이다.


그리고 나는 문득 묻는다.


당신이 머물렀던 도시들은,
당신의 몸 어디쯤에 남아 있을까?


아픈 손가락처럼,
아니면… 눈가주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