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사상 2026년 2월호 기고문
날마다 빼놓지 않고 하려는 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프리스타일 랩 연습이다. 하루 1시간 정도 즉흥 랩을 연습한다. 두 번째는 뉴스 검색창에 ‘동물’을 넣어서 동물과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뉴스를 몽땅 살펴보는 것이다. 그다음 동물복지와 연관이 있는 기사를 20-30개 정도 간추려 SNS ‘동물복지 봇’에 공유한다. 매일 기사를 선별하고 짧게 간추리는 데 보통 2시간이 걸리니 꽤 부담되는 일이지만, 2019년부터 줄곧 해오고 있다. 오늘은 어떤 동물 소식이 있을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인상 깊게 읽은 기사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오타니가 어린이·동물 재단을 설립했다는 내용이었다. 어린이면 어린이고, 동물이면 동물이지 어린이·동물 재단은 무엇인가? 긴급 재난구호와 더불어 유기견 구조까지 힘쓰고 있는 한 구호단체를 알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호기심은 풍선껌처럼 부풀었다. 오타니 재단 홈페이지에는 아직 별 내용이 없었다. 영문으로 이렇게 적혀 있는 게 전부다.
"우리의 사명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영감을 주는 사업을 지원하고,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을 구조·보호·보살피는 프로그램을 후원해 더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오타니 재단》홈페이지 (www.shoheiohtanifamilyfoundation.com)
야구선수 오타니는 어떤 동물까지 연민을 가지는 것일까? 개와 고양이일까? 아니면 돼지와 소, 염소와 당나귀, 오리와 닭의 안녕에도 관심이 있는 걸까? 그 답은 재단의 로고에 있다. 오타니 부부와 어린아이, 그리고 개의 뒷모습을 검은 실루엣으로 그려 놓았다. 로고에 고양이는 없지만, 반려동물의 범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일부 길고양이도 이 재단의 혜택을 받게 될 가능성은 있다. 공장식 축산업의 현장에서 운 좋게 탈출한 돼지나 닭의 여생을 돌보는 단체가 이 재단의 문을 두드린다면 어떨까? 오타니 재단은 고민할 것이다. 어쨌거나 그냥 ‘동물’(animals)이라고만 적어 놓았으니까.
이와 똑같은 질문은 우리나라 사회에도 이미 던져진 상태다. 법무부는 2021년부터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의 사례를 충분히 연구해서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과 분리하되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한 소심한 내용이지만, 법원행정처는 아직 ‘신중 검토’라며 반대라고 한다. 한편 동물에게 ‘물건’과 ‘사람’ 사이의 제3의 지위를 부여하는 민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이들에게 동물의 범주를 어디까지 정하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어떨까? 어떤 이들은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만, 어떤 이들은 돼지와 닭 같은 농장 동물도, 어떤 이들은 척추가 있는 어류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 답할 것이다. 설마 말미잘, 산호, 해파리 같은 자포동물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까? 꿀벌, 거미, 새우 같은 절지동물은 어떤가?
어떤 동물의 입장부터 헤아릴 것인가
1822년 영국에서 소, 양, 말, 노새 등 가축 학대를 금지하는 법(Martin’s Act 또는 Cruel Treatment of Cattle Act)이 제정된 이후, 정책과 법안으로 일부 동물의 삶의 질을 보장하려는 사회운동은 근현대에 걸쳐 전 세계 곳곳에서 열정적으로 전개되었다. 동시에 온갖 종류의 동물 산업 또한 급속도로 팽창했다. 구매가격 10만 원에 택배비만 부담하면 집에서 받을 수 있는 파충류 플라잉게코부터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유전자 편집이 이루어진 돼지까지, 인간의 쓸모를 위해 만들어진 동물 개체와 품종은 100년 전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많아졌다. 현재 지구에서 인간이 반려와 가축으로 사육하는 포유류의 전체 무게는 야생 포유류의 10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한반도에서만 적어도 1억 7,000만 마리의 닭과 1,000만 마리의 돼지와 300만 마리의 소가 같이 숨 쉬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러 동물의 삶에 관심이 넓은 사람이라면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국의 저명한 도덕철학자 셸리 케이건은 그의 책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How to Count Animals, more or less)에서 세계적으로 동물복지에 관한 논의가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여러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사고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냈다. 다양한 동물을 한 범주처럼 여겨 도덕적으로 고려하려니 논리적·실천적 한계가 생긴다는 뜻이다.
“나는 어떤 동물에게 더 큰 도덕적 관심을 두는가?” 이 질문은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지만 동시에 도덕철학의 흥미를 돋운다. 가령 여름에 길을 걷다가 길바닥에서 괴롭게 꿈틀거리고 있는 환형동물 지렁이를 볼 때 그렇다. 지렁이의 촉촉한 피부가 내 피부처럼 느껴져 그 고통이 나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난 시선을 잠시 고정하고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린다. 고통이 상상될뿐더러 지렁이는 환경에 이로운 생명체가 아닌가? 난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손으로 쉽게 집어낼 정도의 작은 크기가 아니면 외면한다. 아무래도 몸집이 크고 굵으면 손으로 집어 들기에 꺼림칙하다. 몸부림치는 지렁이를 휙 지나쳐버리는 나 자신이 다소 야속하게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양심에 찔릴 정도는 아니다.
만약에 지렁이가 아니라 도시에 서식하는 생쥐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최소한 조금이라도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풀숲에 옮겨줄 것 같다. 내가 아는 분도 그렇게 했다. 그 모습을 SNS에 짧은 영상으로 올렸더니, 조회 수와 하트 수가 폭발했다. 그렇게 더러운 쥐가 좋으면 같이 살라는 댓글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잘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2022년 4월, 영국 상원은 ‘접착제 쥐덫 금지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2025년 8월, 동물자유연대가 ‘쥐 끈끈이 덫의 문제점과 규제 필요성’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돌고래의 경험을 존중하는 제주도
우선 인간의 도덕적 지위가 다른 비인간 동물의 도덕적 지위보다 월등히 높다고 가정하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도덕적 지위를 구분하지 않는 단일주의가 아니라 도덕적 지위를 구분하는 계층주의로 얘기를 풀어가려 한다. 나의 경우 어떤 특성을 가진 동물의 괴로움에 더욱 연민을 느끼는가? 자기만의 경험이 풍부하다고 여겨지는 동물일수록 나의 연민을 잡아끈다. 어떤 개체가 자기만의 경험을 조금이라도 하는 존재로 여겨지려면, 최소한 ‘지각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영어로는 ‘sentience’라고 하는데, 1975년에 『동물해방』을 집필한 도덕철학자 피터 싱어는 지각 능력을 ‘쾌고감수능력’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틈틈이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지각 능력을 정의한 글들을 살펴보고 있지만, 여전히 이 용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망설여진다. 일단 나름대로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지각 능력이란 즐거움과 괴로움을 자기만의 감각으로 (주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오늘날 도덕철학의 주된 흐름에서는, 과학적으로 지각 능력이 있다고 추정되는 존재만이 도덕적 입장을 가질 수 있고 최소한의 도덕적 지위도 얻을 수 있다. 이 지각 능력에 더해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능력’(agency, 목표를 세우고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까지 풍부해 보이는 동물이라면, 자기만의 경험이 더욱 다양할 터이니 나 같은 인간에게 더 높은 도덕적 지위를 얻을 승산이 높다. 돌고래가 그렇다. “제돌이 방류 7주년, 한국의 돌고래들 안녕하십니까”라는 신문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해양생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에 따르면 마린파크나 퍼시픽랜드 양쪽 모두 돌고래들이 쇼 도중 사육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모습이 확인되기도 했다. 지능이 높은 돌고래들이 먹이를 이용한 조련을 거부하고 ‘파업’을 벌인 셈이다." 「10년간 절반이 죽어갔다… 돌고래 수족관은 ‘잔인한 수용소’」, 《경향신문》, 2020.7.20.
도덕적 지위가 다르다는 가정이 불편하다면,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특정 동물의 주체적인 선택에 주목할수록, 그 동물의 사회적 지위는 더 높게 평가될 수 있다고.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은 동물 집단은 돌고래다. 아직 답답한 수족관에 갇혀 있는 돌고래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에 따라 2023년 12월 14일부터 국내의 모든 수족관은 전시 목적으로 ‘고래목’ 동물을 신규 보유할 수 없다.
돌고래쇼에 동원되다 2013년에 제주 바다로 돌아간 암컷 남방큰돌고래 ‘춘삼이’는 2025년 가을에 세 번째 새끼를 출산해 화제가 됐다. 제주도는 더 나아가 남방큰돌고래를 국내 1호 생태법인으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만약 남방큰돌고래가 생태법인으로 지정되면 법인격을 부여받아 후견인 또는 대리인을 통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주체가 된다. 현재 남방큰돌고래의 생태법인 지정을 촉구하는 제주도의 서포터즈단은 해녀와 청소년 등 1,548명에 달한다. 이 서포즈단을 대표하는 한 청소년은 마이크 앞에서 “너희가 겪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라는 표현을 썼다. 많은 이들이 돌고래의 주관적인 경험에 감정을 이입하기에 멸종위기종 돌고래 보호를 둘러싼 논의들은 다른 동물에 비해 활발히 진척 중이다. 버려진 낚싯줄에 엉켜 고통받고 목숨을 잃는 돌고래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뉴스 인터뷰에 응한 한 낚시 애호가도 돌고래 보호를 위한 정책에는 흔쾌히 따르겠다고 얘기했다. 다른 수많은 낚시 애호가들도 그렇게 똑 부러지게 답해준다면 돌고래들의 삶은 한결 나아질 것이다. 한편 나는 궁금하다. 인터뷰에서 본 그 낚시 애호가가 ‘어류 복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식용 어류에게도 복지가 필요해
2025년 9월, 타이베이시에서는 대만 농업부 주관으로 ‘제14회 아시아 포 애니멀스 콘퍼런스’가 2박 3일간 진행되었다. 이 국제회의에는 30여 개 나라에서 온 600여 명의 활동가가 참여했는데, 폐막 연설은 어류 및 기타 수생동물의 복지 분야를 이끄는 신경생물학자 린 스네든이 맡았다.
"어류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진화적 맥락 속에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도 ‘감응력’(Sentience)을 지닌 존재라는 증거를 찾고자 합니다." 「물고기도 고통 느끼고 감응력… ‘어류 복지’ 법에 담아야 」, 《한겨레》, 2025.9.10.
현재 식용 어류에 동물복지 기준을 적용하는 국가는 드물지만, 호주와 노르웨이에서는 연어 양식에서 과도한 밀집 사육을 금지하고, 인도적 도살을 규정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이미 2017년도에 양식 연어의 복지를 평가하는 305쪽 분량의 지침서가 발간되었다. 양식 연어의 복지를 평가하는 지표의 예를 들자면 아가미 상태, 지느러미 손상, 골격 상태, 온도, 물의 흐름 속도 등이 있다. 현대의 동물보호·복지법은 기본적으로 ‘척추동물’을 대상으로 삼는다. 아무리 작은 물고기라도 척추가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도 당연히 법의 적용 대상에 어류를 포함한다. 하지만 식용은 제외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국민 대부분 물고기의 경험에 별 관심이 없어서일까?
설문조사를 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가 2021년에 발간한 ‘어류 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무려 81.5%가 ‘식용 어류도 다른 농장 동물과 마찬가지로 운송과 도살 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행사도 지금은 식용이 목적이라는 이유로 동물보호법의 규제를 피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세부적인 내용은 규제될 확률이 높다. 그러니 축제 기획자들은 미리 어류 복지에 대해 알아두도록 하자.
더 나아가 척추가 없지만, 최근 과학계가 지각 능력을 인정하고 있는 무척추동물 종류도 몇 가지 알아두면 더욱 좋다. 화제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감이 올 것이다. 우선 문어, 오징어 등 두족류가 그렇고 거기에 더해 바닷가재, 게 등 다리가 열 개인 십각류가 그렇다. 영국의 해산물 유통기업 ‘맥더프 셀피쉬’는 2023년 7월부터 모든 갈색 게를 가공 전에 전기 충격으로 도살했다는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서울의 수산시장에서 문어과에 속하는 세발낙지를 구매해 피아노 모양의 악기를 작동시킬 수 있도록 훈련한 유튜버도 있다. 훈련에는 총 6개월이 걸렸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해 2025년 11월에 올렸다. 만약 낙지 요리점 사장님이 이 글을 읽는다면, 우리나라에서 낙지의 복지를 고려한 요리 방침을 연구하고 손님들에게 알리는 데 앞장서보시라 권유하고 싶다. 당장은 핀잔을 들을 수 있으나, 널리 칭찬받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사육 환경 4번 달걀이 사라지는 이유
동물이 지닌 다양한 지각 능력을 탐구하는 연구자들이 하고 싶은 얘기가 ‘먹지 말라!’는 건 아니다. 인간의 이익이 보장되는 선에서 동물복지를 챙겨주자는 것뿐이다. 동물복지 제도는 동물에게 돌아가는 이익보다 온갖 동물을 이용하는 우리가 “그래도 이 정도는 챙겨줬잖아.”라며 양심의 안위를 얻는 이익을 더 보장한다. 2025년 11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산란계 농장에 적용할 ‘동물복지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이 가이드 라인에서 병아리의 ‘부리 다듬기’는 부화 후 24시간 이내 실시를 권장한다. 태어난 지 10일 이후에 부리를 자르면 부리 기형, 만성 통증 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인데, 아직은 권장에 그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또 우리나라에서 2027년 9월부터 사육 환경 4번 달걀을 영원히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 예고했다.(달걀 표면에 새겨진 10자리의 난각번호 중 마지막 자리의 숫자는 사육 환경을 의미한다) 4번 달걀의 사육 면적은 마리당 0.05㎡에 불과하다. 3번 달걀은 마리당 최소 0.075㎡의 면적을 제공하니, 1㎡ 면적에 13-14마리를 사육한다. 2번 달걀은 1㎡에 최대 9-10마리고, 당당히 동물복지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사육 환경이 2번이라 해도 층층이 쌓아놓은 케이지를 들락날락하며 사는 정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쾌적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동물복지 인증을 받으려면 부리 다듬기는 금지다.
산란계 농장에서 하루라도 일해보면 알 것이다. 비슷한 노동 조건이라면 누구든지 사육 환경 1번이나 2번 농장에서 일하고 싶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동물복지는 대단한 기준이 아니다. 누군가 2040년까지 동물복지 인증이 없는 축산물은 아예 생산과 유통이 되지 않도록 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저 상식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최근 한 유명 희극인은 사육 환경 4번 달걀을 고품질로 포장해, 동물복지 달걀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하다 큰 곤욕을 치렀다. 동물성 식품을 다루는 사업을 하는 사람일수록 시시각각 변화하는 동물복지 정책에 관심을 쏟는 것이 본인에게도 이익이다.
동물복지는 소, 돼지, 닭으로 대표되는 농장 동물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혼란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집약적 축산이 도래해 극심한 밀집 사육, 무자비한 대량 도살 등이 사람들의 양심을 괴롭히며 동물복지 정책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농장에서 동물이 태어나서 도축을 당할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경험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1974년 미국의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은 소들이 도축 과정에서 겪는 두려움과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곡선형 통로를 설계했다. 1979년 영국 농장 동물복지 위원회는 ‘동물의 5대 자유’를 제시했다. [(1) 굶주림과 갈증으로부터의 자유, (2)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3) 통증·상해·질병으로부터의 자유, (4)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5) 공포와 극심한 불안으로부터의 자유] 이후 이 기본 원칙은 모든 동물복지 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지금 당장 머릿속에 농장 동물을 하나 떠올려보자. 내가 농장주라면 그 동물에게 어느 정도의 사육 환경을 제공해야 동물복지 인증을 받을 수 있을까? 동물마다 그 종의 기질에 맞춰 과학적으로 어떤 복지 요소가 필요한지 요모조모 따져볼 수 있다. 이렇게 따져보면, 식용으로 개를 사육하는 개 농장에 ‘동물복지 인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동물복지를 전제로 하는 현대 축산업의 틀에서 식용 목적의 개 사육은 인정될 수 없으니 개고기를 먹는 것 자체가 옳냐, 그르냐 언쟁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개 식용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에 질의하라고 조언하자. 세계동물보건기구는 전 세계 가축들의 위생 향상과 동물복지 증진을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다.
각자가 어떤 동물의 처지를 염려하건 간에
동물복지를 논할 때, 사람마다 기꺼이 호감을 내주는 동물이 제각각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어떤 이들은 몽골에서 한반도까지 3,000km를 비행하는 독수리에게, 어떤 이들은 서식지가 위태로운 서해의 점박이물범에게, 어떤 이들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파충류에게, 어떤 이들은 동네를 배회하는 고독한 길고양이에게 마음을 내준다. 나는 길고양이에 특별한 관심은 없지만, 열악한 시설에 방치된 사육 곰은 문득문득 생각날 정도로 늘 안쓰럽다. 요 몇 년간 기부금도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에 가장 많이 냈다. 그 배경에는 어릴 적 즐겁게 보았던 그림책이나 지금은 떠올릴 수 없는 특수한 기억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물의 겉모습에 따라 평가와 태도가 달라지는 외모 중심적 편향도 동물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친다. 돼지와 거북이를 예로 든다면, 보통 돼지보다 거북이가 사람들의 온정을 폭넓게 얻는다. 거북이는 사람이 보기에 온순한 외모와 행동 특징을 가지고 있고, 수명이 길어 돼지보다 풍부한 경험이 가능할 거라 상상되기 때문이다. 돼지의 경험에는 무관심하고, 거북이만 좋다는 사람에게 뭐라 나무랄 수는 없다. 단지, 각자가 어떤 동물의 처지를 염려하건 간에 동물복지의 개념을 생각할 때 만큼은 농장 동물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농장 동물의 복지를 외면하는 동물복지는 농민을 배제하는 농촌살리기와 비슷하다. 자신이 어떤 동물을 책임지고 있다면, 이렇게 묻도록 하자. “농장 동물에게 이런 복지가 필요하다면, 내가 돌보는 이 동물에게는 어느 정도의 복지가 필요한 것일까?”
한편, 나는 동물복지의 목적을 얘기할 때 ‘권리’라는 표현을 매우 조심해서 사용한다. 자칫 동물복지라는 개념을 ‘동물해방’처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복지는 동물복지대로 이해하고, 일상에서 100% 식물성 식습관(비건)을 기본으로 실천하는 동물해방은 동물해방대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 둘은 서로를 경계하면서 동시에 상호보완적이다. 도덕철학의 하위 분야인 동물윤리에서 동물해방은 원칙주의, 동물복지는 개혁주의라 할 수 있다. 가끔 동물해방론자가 ‘비거니즘이야말로 동물복지를 위한 실천’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반은 어긋나고 반은 맞는 말이다. 동물해방은 궁극적으로 전 세계 축산업과 어업의 종말을 꿈꾸지만, 동물복지는 동물복지 정책을 준수하고 개선하는 데 동참하는 축산 및 어업 종사자들을 응원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 산란계 동물복지 농장주가 내가 쓴 책 『동물복지의 시대가 열렸다』를 감명 깊게 읽었다는 후기를 보내주어서, 난 그 농장에서 판매하는 난각번호 1번 달걀을 주문해 몇몇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제 규모 상위국들은 국민 식단을 식물성 위주로 서둘러 전환해야 한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30-40%가 가축 사료로 사용될뿐더러, 과도한 가축 수를 대폭 줄여야만 동물복지도 두루두루 구현될 수 있으니까. 나 또한 비건은 아니지만, 낯선 지역을 방문하면 비건 메뉴가 있는 식당을 검색해보고, 평소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즐겨 마시다가도 카페에서 우유 대신 두유나 귀리 음료로 바꿔 주문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한다.
5년 전 즈음부터는 배양육 뉴스에 관심이 많다. 만약 10년 후, 동물의 세포를 식물처럼 키운 배양육 식품이 출시된다면 나는 사 먹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나는 전 세계 육류 소비 감소의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배양육이 아니라면, 현재의 가축 사육 규모를 줄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고소득 국가의 1인당 육류 소비는 정체되거나 조금씩 감소하고 있기는 하나, 중·저소득 국가들의 육류 소비는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소득 국가에서는 개와 고양이에게 육류의 부산물이 아니라, 사람이 선호하는 육류 부위를 똑같이 제공하려는 보호자가 늘어날 것이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동물성 식품 총 칼로리의 약 25%가 개와 고양이의 몫이라는 분석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영양 균형과는 무관하게 ‘신선한 생육’을 강조하는 반려동물 먹거리 유행이 눈에 띈다. 농촌진흥청은 흑염소 고기를 노령견 건강식으로 상품화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일명 ‘펫 휴머니제이션’(반려동물의 생활 수준을 ‘사람 기준’으로 끌어올리는 현상) 때문이다.
우리와 밀접하게 살아가는 동물들을 위하여 나는 배우 김혜자가 배역을 맡아 천국 생활의 에피소드를 그린 화제의 드라마를 보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펫 휴머니제이션’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천국에서는 보호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개와 고양이들이 사람으로 변해 살고 있었다. 반면, 소와 닭은 그곳에 코끝도 들일 수 없다. 반려동물과 이별을 겪은 시청자들의 호응은 열렬했다. ‘아, 반려견과 반려묘 보호자의 다수는 자기 반려동물을 다른 동물과 철저하게 구분해 사람 편에 들이고 싶은 것이지, 반려동물을 통해 그 외의 다양한 동물로 이해를 넓히고 싶어 하지는 않는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삶에서 자율성이 희박한 반려동물을 사람으로 만든 설정 또한 마뜩잖았다. 그렇다고 보호자들의 애틋한 심정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동물복지 정책은 가축 동물을 기준으로 인간과 밀접하게 살아가는 모든 동물에게 골고루 혜택을 나눌 때 의미가 있다는 점은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반려동물 학대자의 사육금지 방안, 사육장에 갇혀 피를 뽑히며 사는 공혈견의 비극 등 반려동물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더미 같지만, 그 또한 우리 사회가 넉넉한 동물윤리의 품에서 동물복지 정책을 껴안아야만 차근차근 해결되지 않을까.
박하재홍 동물에게 친절한 인류를 꿈꾸는 프리스타일 래퍼다. 래퍼가 되기로 결심한 2001년부터 꾸준히 동물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고,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가게’에서 6년간 일했다. 지은 책으로 『랩으로 인문학 하기』, 『동물복지의 시대가 열렸다』 등이 있다. 힙합, 대중음악, 인문학을 버무려 다양한 교양수업을 만들고 전국을 누비며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