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구달 선생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

가톨릭평론 2025 겨울 호 기고문

by 박하재홍
가톨릭평론 | 제50호


10월 2일, 오전 4시 40분. 잠을 청하기 직전이었다. 수시로 동물복지 관련 뉴스를 살펴보는 습관 때문에 잠들기 전 한 번 더 검색창에 ‘동물’을 써넣었다. 제인 구달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 최신 기사로 떠올랐다. 향년 91세. 난 생각했다. ‘제인 구달 선생님을 처음 실물로 보았을 때가 2006년이었으니,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구나…….’


2014년 겨울에는 제인 구달과 만나는 서울의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어, 제주도 아이들과 상경해 짧은 랩을 불러드렸던 적도 있다. 그 랩 가사의 처음은 이랬다. “얘기해 봐, 제주 뿌리와 새싹. 우린 4월부터 시작.” 뿌리와 새싹은 제인 구달 연구소를 중심으로 하는 전 세계 풀뿌리 환경운동 모임이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기억을 붙들며, 오전 4시 50분, 나는 다섯 글자와 말 줄임표를 천천히 눌러썼다.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제인 구달의 단아한 인물 사진을 SNS에 공유하고 조심스럽게 이모티콘 3개를 덧붙였다. 별과 기도하는 손, 그리고 지구.


내가 제인 구달에게 빠져든 계기는 2003년에 출간된 책 『제인 구달의 생명 사랑 십계명』(바다출판사, 2003) 덕분이었다. 당시 나는 ‘아름다운가게’에 활동가로 취업해 2.5톤 트럭을 모며 서울과 전국 각지로 중고 물품을 싣고 다니고, 나눔장터를 열고 있었다. 일이 얼마나 재밌던지, 피곤한 줄 모르고 일하고 퇴근 후에는 길거리 래퍼로 쏘다녔다.


이런 신나는 생활에도 불구하고 동물복지 문제에 적지 않은 관심을 두었던 나는 날마다 허전함을 느꼈다. 아름다운가게의 비영리 자선 사업은 재사용을 기반으로 환경 문제를 줄이는 데 보탬이 되었지만, 동물복지까지 별도의 관심을 쏟기에는 버거웠기 때문이다.


나는 2001년 겨울에 영국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가 서울에서 진행하는 ‘환경 및 동물보호를 위한 캠페인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군대를 전역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 운 좋게도 워크숍을 담당한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와 연이 닿아 이 놀라운 행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무려 2박 3일 동안 개인 수신기를 통해 동시통역이 이루어졌고 식물성 기반의 식사까지 무료로 제공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동물 운동가와 환경 운동가를 두루두루 살펴보며 인사를 나누었다. 매우 의미 있고 즐거운 연대의 시간이었지만, 이후에 내가 양쪽을 기웃거리며 관심을 기울인 바로는 동물 운동가와 환경 운동가 사이에는 친밀한 접점이 부족했다. 동물 운동가들은 무엇보다 시급하게 개 식용 종식을 앞당기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고, 환경 운동가들은 멸종위기종 중심의 야생동물 보호에만 힘을 쏟아도 여력이 없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에 대한 도덕철학의 이해에도 차이가 있다 보니, 그 많은 동물 중에서 어떤 동물부터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과 실천이 다르기도 했다. 나 또한 한 번은 야생동물을 잡는 불법 올가미를 제거하는 캠프에 참여했다가 저녁 식사로 푸짐하게 삼겹살을 구워 먹는 바람에 난처한 적이 있다. 밥에 고기를 곁들여 먹는 정도면 모르겠지만, 거의 잔치를 벌이듯 축산 동물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난 마음 편히 식사를 즐기지 못하고 웅크리듯 시간을 흘려보냈다.


물론, 아름다운가게는 이런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직장이었다. 면접을 볼 때부터 이력서에 학력이나 나이는 쓰지 않았고, 이러쿵저러쿵 내 관심사를 늘어놨는데 적지 않은 지원자 사이로 합격했으니 말이다.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한 주역들이 ‘기증받은 값비싼 모피 옷을 판매할 것인가, 팔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공개적으로 토론했던 기억도 난다.


한번은 사무국에서 활동가들의 교양을 늘리기 위해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박사를 사무실에 초대해 퇴근 후 강연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난 최재천 박사가 번역한 『생명 사랑 십계명』이라는 책을 손에 쥐었고, 책 속에 빨려 들어가듯이 문장을 삼켰다. 전 세계 곳곳에 동물·이웃·환경’을 아울러 생각하고 실천하는 풀뿌리 환경 모임이 있다니!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성격의 사회운동 아닌가? 책장을 덮자 두근거림이 머리끝까지 요동쳤다. 그 모임의 이름이 영어로 ‘루츠 앤 슈츠Roots and Shoots’ 우리말로는 ‘뿌리와 새싹’이다. 북한에서는 ‘뿌리와 싹’으로 번역한 것으로 기억한다. 1991년 탄자니아에서 제인 구달을 만난 16명의 청소년으로 시작해 여러 나라에 그물코를 형성한 뿌리와 새싹이 아직 한국에는 없었다. 내 기분은 마치 ‘나만 없어, 고양이’랑 흡사했다.


헌책방을 통해 시작한 ‘뿌리와 새싹’ 모임


난 혼자서 골몰하며 아름다운가게 사업에 뿌리와 새싹 활동을 접목할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해봤다. 우선은 ‘뿌리와 새싹’이라는 이름의 특화 매장을 넌지시 제안해봤다. 제인 구달을 주제로 삼은 매장을 만들어 그 수익금은 청년·청소년의 자발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난 설레발을 떨며 최재천 박사에게 이런 매장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보냈고, 그는 나에게 함께 논의할 대학원생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러나 아름다운가게 정책 담당자는 괜찮은 발상이라며 칭찬하는 정도로 그쳤다. 대학원생들과의 의논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후에도 나는 낮에는 활동가, 밤에는 길거리 래퍼로 ‘주경야랩’을 하면서, 틈틈이 뿌리와 새싹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러다 2005년에 기회가 왔다. 아름다운가게에서 헌책방 특화 매장만을 위한 부서를 새로 만들었는데, 내가 발탁된 것이다. 난 내가 맡을 헌책방의 이름을 ‘뿌리와 새싹’으로 짓겠노라고 제안했고, 허락을 받아냈다.

헌책방 '뿌리와 새싹' (2009)


새로 만들 헌책방의 위치는 서울 신촌 기차역 삼거리 근방의 후미진 골목이었다. 좁은 골목 밖에서 7미터 끝을 빼꼼히 눈여겨봐야 저 속에 뭔가 책방 같은 게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는 그런 장소였다. 내부로 들어서면 전체적으로 한옥 구조의 독채 건물이었다. ‘뿌리와 새싹이라는 이름의 헌책방인 장소로 안성맞춤이군!’ 난 그곳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홍대 앞 비주류 예술가들의 마당발인 분을 섭외해 가능한 재활용 소재로 내부를 꾸며보기로 의기투합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이루어졌고, 비효율적인 작업은 갈수록 더디었다. 개업 첫날 아침, 꼴딱 밤을 지새우고 녹초가 되어 문을 열었지만, 아뿔싸! 골목 입구에 세워둘 간판을 만들지 못했다. 나는 뒤늦게 자투리 판자를 잘라 초록색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하얀색으로 글씨를 썼다. 아름다운 책방 ‘뿌리와 새싹.’ 바로 다음 달인 2006년 1월에는 최재천 박사가 책방과 가까운 이화여대로 교수직을 옮겼다. 너무나 절묘한 일이었다.우리나라 최초로 뿌리와 새싹이라는 이름을 알린다는 보람으로 난 책방에서 온갖 행사를 기획했다. 인디 음악가 공연, 시인과의 만남, 활동가들에게 저녁 모임터 제공, 소규모 모퉁이 전시 등 그 후미진 책방은 썰렁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1년이 흘러 2006년 11월, 최재천 박사는 일흔두 살의 제인 구달 선생님을 모시고 연세대학교에 공개 강연을 열었다. 기사에 따르면 무려 1,500여 명이 제인 구달을 보기 위해 몰려왔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제인 구달이 강연장에 등장하자 청중은 일제히 조용한 목소리로 탄성을 냈고, 그는 침팬지의 소리로 요란한 인사를 건넸다. “오호 호호 오호호.” 이어진 강연 내용에서 가장 두드러진 단어는 ‘뿌리와 새싹’과 ‘희망’이었다.


"나의 강연, 내가 쓴 책, 제인 구달 연구소와 ‘뿌리와 새싹’ 운동이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희망은 젊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들이 좀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우리가 한 실수와 실패를 배우고,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드는 행동을 한다면 세상은 변합니다." 「제인 구달, 21세기의 희망을 이야기하다」, 《채널예스》 2006.11.16.


『생명 사랑 십계명』에 사인을 받기 위해 1시간 가까이 줄을 섰지 싶다.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었는데, 옅은 미소를 짓고 내 쪽으로 살짝 고개까지 기울여 주셔서 생면부지인 나와 친근해 보이는 사진을 간직하게 됐다. 난 홀로 짐작했다. ‘이 넓은 강연장을 꽉 채운 청중 중에서 당장 뿌리와 새싹 모임을 시작할 사람은 어쩌면 나 하나일 듯하다.’ 이미 헌책방을 통해 동물·이웃·환경’을 아울러 생각하고 실천하자는 제인 구달의 메시지를 전하고는 있었지만, 별도의 모임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모임을 이끄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뿌리와 새싹은 유스Youth 연령대가 중심인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난 우리나라 최초의 뿌리와 새싹 모임에 기꺼이 참여할 청년을 서둘러 찾기로 했다. 1년 후 제인 구달이 다시 한국을 방문할 때는 뿌리와 새싹 청년들이 직접 반기는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제인 구달의 뿌리와 새싹 여기 모여라!”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응답이 없었다. 책방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에게 권유해봤지만, 다들 24시간이 부족하게 바쁜지라 나서는 이들은 없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별도의 모임을 만들기보다는 이미 활동 중인 환경 동아리가 뿌리와 새싹 운동에 동참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낫겠다!’ 겨울이 지나 새 학기가 시작한 봄, 이화여대의 한 환경동아리에 직접 찾아가 설명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최재천 박사가 교수로 있는 대학이니 다들 이 제안을 반겨주겠지?’ 내 섣부른 기대는 와그작 어긋났다. 딱 한 명의 학생만 진심으로 나섰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는 헌책방을 아지트로 삼아 뿌리와 새싹 모임을 꾸리기로 했고, 차근차근 동참할 청년들을 하나둘 모집할 수 있었다.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이자, 어느덧 제인 구달의 방한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 이번 제인 구달의 환영식 준비는 내가 도맡기로 했다. 전체적인 진행 순서를 짜고, 공연팀을 섭외하고, 전체적인 비용을 후 원해줄 기업까지 물색하는 아주 막중한 임무를 헌책방에서 책을 정리하고 파는 틈틈이 신속하게 해냈다. 제인 구달 환영식의 장소는 인사동 쌈지길로 정했다. 무엇보다 전기를 최소화하는 행사를 만들 참이었다. 섭외하고 싶은 공연팀은 0순위가 있었다. 재활용 소재로 폭이 3~4미터씩은 되는 커다란 타악기를 만들고, 연주자가 춤추듯이 두드리며 공연을 펼치는 ‘노리단’이었다. 노리단은 페달을 굴려 움직이는 4인승 악기 자전거도 가지고 있었다. 그 모양새는 마치 영화 〈매드맥스〉에 나올 법한 특이한 디자인이어서 수백 명의 눈과 귀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제인 구달 선생님이 사용할 마이크와 스피커였다. 당시에는 야외용 음향기기가 다양하지 않았던 때라, 나 혼자서는 옮기기 힘들 규모의 스피커를 설치하고 전기선을 끌어 사용해야 할 판이었다. 적어도 300명 이상은 환영식에 있을 테니, 스피커를 허리에 차는 강의용 마이크 같은 것으로는 턱도 없었다. 내가 길거리에서 랩을 할 때 사용하려고 사놓은 3킬로그램 무게의 충전식 앰프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낙원상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세상에 이런 아담한 크기에 무선 마이크까지 있다니!’ 깜짝 놀라 구매했던 음향기기였다. 소리 출력이 대단하진 않지만, 쌈지길은 건물 중앙이 뚫려 있고, 층층이 계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조라서 사람들이 계단 난간에 모여 있다면 소리가 공간 안에 갇혀 있을 것 같았다. 잘 들릴지 확신은 없었다. 그래서 앰프를 내 어깨 한쪽에 짊어지고 상황에 따라 앰프의 방향을 조정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뿌리와 새싹 모임 청년들이 챙겨줄 테니 걱정이 없었다.

인사동에서 제인 구달 환영식 (2007)


내가 할 수 있는 제인 구달을 기리는 일


2007년 11월 15일, 인사동 쌈지길. 2층 계단 난간에는 광목천으로 만든 현수막이 붙었다. 당시 국민대학교에서 그린디자인을 개척했던 윤호섭 교수의 선물이었다. 손수 붓을 들어 광목천 위에 초록색 천연물감으로 ‘뿌리와 새싹’을 쓰고, 한쪽에 분홍색 하트를 하나 그려넣은 수제 현수막이었다. 자세히 보면 왼쪽 아래에 웃고 있는 애벌레 모양의 귀여운 서명도 보였다.


환영식 시간이 째깍째깍 다가오자 나의 긴장감은 극도에 달했다. 평소에 꼼꼼한 성격은 아닌 터라, 무언가 예상치 못한 차질이 생길지도 몰랐다. 다행히 노리단의 통통 튀는 연주가 시작되자, 행사는 리듬을 따라가듯 순조롭게 흘러갔다. 놀랍게도 4명의 연주자가 타고 있는 노리단의 악기 자전거 앞부분에는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최재천 박사와 함께 자전거 앞에 올라탄 제인 구달 선생님은 연신 즐거워했고, 그 모습에 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제인 구달과의 거리 행진까지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두 발 뻗고 편안히 잠을 청했다.


제인 구달 박사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나에게 편지를 써두었다. 무려 편지지를 2장이나 채운! 나는 2011년에 제주도로 이주하면서 부모님 집에 있던 그 편지를 챙겨갔다. 이듬해 3월. 서울시는 서울대공원의 쇼 돌고래 ‘제돌이’를 제주도 바다에 돌려보내기로 결정을 내렸고, 같은 해 11월 제인 구달 박사는 야생 방류 훈련 중인 제돌이를 찾아가 방류의 성공을 기원했다. 다행히 제돌이는 2013년 여름, 제주도 바다에 성공적으로 이주했다. 그해 제주도로 이주한 지 3년 차를 맞이한 나는 제주 뿌리와 새싹 모임을 만들 궁리를 하고 있었다. 처음 뿌리와 새싹 모임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무작정 함께할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마침 매주 수업을 맡고 있었던 서귀포 대정골 지역 아동센터의 센터장님이 관심을 보여, 그곳의 아이들과 2014년 봄에 모임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고맙게도 제인 구달 박사는 제주 뿌리와 새싹 모임의 시작을 축하한다는 영상도 찍어 보내주셨다. 게다가 2014년 겨울엔 제주의 아이들과 서울에 서 직접 뵐 기회도 얻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린 짧은 랩을 지어 제인 구달 앞에서 흥겹게 불러드렸다. 여기까지가 내가 제인 구달을 직접 만났던 기억의 마지막이다.


아, 빼먹은 이야기가 있다. 인사동 환영 행사를 하기 바로 전날, 제인 구달 선생님은 기자회견을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뿌리와 새싹에서 진행했다. 책방 골목에 들어설 때 동네 백구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제인 구달을 반겼는데, 디지털 사진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헌책방 한가운데에 앉아 기자회견을 한 제인 구달 선생님! 돌아보니 꿈만 같은 순간이다.

헌책방 '뿌리와 새싹'에서 제인 구달 기자회견 (2007)

지금 나는 뿌리와 새싹 활동을 안 하고 있지만, 최재천 박사가 2013년에 설립한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전국의 뿌리와 새싹을 지원하는 사업을 한결같이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 11월, 생명다양성재단에서는 뿌리와 새싹 회원들과 제인 구달 추모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나도 깍두기로 끼워줄 것 같아서 신청하려 했으나, 다른 중요한 업무가 겹쳐 아쉽게도 포기했다. 그 대신 그의 『생명 사랑 십계명』을 찬찬히 되읽어봤다. 당장 할 수 있는 실천은 언제나 아홉 번째 계명이다. ‘동물과 자연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돕자’ 통장에 약간의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동물·이웃·환경을 위해 일하는 분들에게 두루두루 몇만 원이라도 더 후원하는 것이 지금의 내가 제인 구달을 기리는 일이다.



제인 구달의 생명 사랑 십계명


첫째, 우리가 동물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기뻐하자

둘째, 모든 생명을 존중하자

셋째, 마음을 열고 겸손히 동물들에게서 배우자

넷째, 아이들이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도록 가르치자

다섯째, 현명한 생명지킴이가 되자

여섯째, 자연의 소리를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자

일곱째, 자연을 해치지 말고 자연으로부터 배우자

여덟째, 우리 믿음에 자신을 갖자

아홉째, 동물과 자연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돕자

열째,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희망을 갖고 살자



박하재홍 동물에게 친절한 인류를 꿈꾸는 프리스타일 래퍼다. 힙합, 대중음악, 인문학을 버무려 다양한 교양수업을 만들고 전국을 누비며 강의한다. 지은 책으로 『랩으로 인문학 하기』, 『동물복지의 시대가 열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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