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의 포장마차
우습지만, 예전부터 늦은 밤 혼자 포장마차에 들러 오돌뼈 같은 안주 한 접시 시켜 놓고 ‘쏘주’ 딱 한 병만 마시고 가야지, 하는 것에 로망이 있었다. 이십 대를 전부 미국에서 보내는 통에 서른 넘어까지 그 경험을 못 해본 차였는데, 몇 해 전 삼월 초 어느 바람 차던 날 실천에 옮길 기회가 있어 기록해 두었다.
큰길에서 주택가로 들어가는 골목에 붉은 천막을 둘러 차려 놓은 포차다. 길에 놓인 대형 조경 화분이 천막 안에서는 포차의 인테리어 오브제다. 굵게 만 파마머리, 다홍색 목폴라에 공작새 깃털 같은 무늬가 프린트된 검은 조끼를 걸친 주인아주머니는 “왜 혼자 와? 무슨 고민 있어? 여기 난로 옆에 앉아.”라며 쭈뼛쭈뼛 들어서는 내게 따뜻한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는 묻기도 전에 “오돌뼈 한 접시 줘?” 하신다.
“추니까 미역국에 석화 먹고 있어.” 하며 초장과 얇게 저민 고추에 통깨까지 얹은 반각굴 두 개, 미역 듬뿍 넣고 끓인 미역국 한 그릇, 그리고 소주 한 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아주머니는 금세 몸을 돌려 안주를 만들러 가신다. 그사이 포차 안에 틀어 놓은 라디오에선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 문득 혼자 들어온 포장마차에서 밤 열 시가 넘은 시각, 초록색 소주 한 병을 앞에 놓고 첫사랑을 떠올리게 될 줄이야.
자주색 커다란 밥솥과 파랗고 빨간 플라스틱 소쿠리들, 해물이 들어 있는 알루미늄 쇼케이스, 채소 등 다른 재료가 들어 있을 하얀 스티로폼 박스, 분홍색 고무장갑과 두어 개의 프라이팬, 그 옆에 놓인 갖은양념들. 그렇게 분주한 주방에서 만들어진 오돌뼈가 드디어 나왔다. 반달 모양으로 얇게 자른 당근과 길게 툭툭 썰어 넣은 쪽파 사이로 보이는 빨간 양념 입은 오돌뼈가 먹음직스럽다. 여기도 흩뿌려진 통깨는 빠지지 않았다. 메인 요리가 나오고 나는 세 번째 잔을 따른다.
나 말고도 혼자 온 손님이 저만치 앉았고, 둘이서 온 손님들도 보인다. 잔치국수나 한 사발 먹으려고 기웃거리던 또 다른 사내는 들어와 마음이 바뀌었는지 결국 꼼장어에 소주를 시킨다. 밖은 꽃샘추위라는데 이 안은 그다지 춥지 않다.
그 안에선 모두 이모라고 부르기에 나 역시 이모라고 부르게 된 포장마차 사장님은, “도와주는 것도 봐 가며 해야지.” 하며 저마다 술잔을 기울이는 손님들에 대고 혀를 끌끌 찬다.
“한 번은 폐지 줍는 동생이,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누나래. 하여튼 꼭 오면 소주 한 병 달래. ‘돈 있어’ 해가매. 그래, 소주 내주면 꼭 안주도 달래. 그래, 우동 말아 주면 꼭 돈이 없다네? 아, 그래도 한 끼 준 셈 치고 주는데, 그럼 꼭 또 와서 그냥 달라고 그래. 어쩔 땐 고양이도 생선만 구우면 요 앞에 와. 접시에 담아 갖고 그 앞에 놔주면 먹고는, 왜 거기다 생선 가시를 흩뿌려 놔, 놓기를? 치워야 되잖아.”
하면서도 이모는, 리어카를 끌고 온 어르신에게 사천 원 하는 우동 “배고프면 오셔요, 삼천 원만 받을게.” 하신다. 그러고는 왔다 간 사람 흉을 본 게 내심 마음에 걸렸던지 “그래도 장사 해 보면 사람 사는 냄새 나. 나쁜 사람보다도 좋은 사람이 훨씬 많아.”하며 재미가 있으시단다.
어느덧 접시가 비었고, 소주병이 비었다. 아뿔싸. 만 삼천 원어치를 먹었는데 지갑 속에는 만 원짜리가 딱 한 장. 요 앞 ATM에 얼른 갔다 온다는 나에게도 “됐어, 수수료 비싸. 고놈만 주고 다음에 오며 가며 들러~” 해 버리시는 이모. 미안함과 고마움에 나는 나올 때도 쭈뼛쭈뼛.
빚진 삼천 원을 가지고 골목을 다시 찾은 날에는 길 위에 대형 조경 화분 세 개만이 원래 자리에 놓여 있었다. 가만. 그 포장마차는 원래 없었던 것일까. 그 삼월 초 바람 차던 날에, 내 로망의 모습을 보여 주려고 잠깐, 붉은 천막을 쳤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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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돌뼈의 표준어는 '오도독뼈', 꼼장어의 표준어는 '곰장어', '우동'의 우리말은 '가락국수'.
그리고 쏘주의 표준어는 '소주'라는 것을 안다.
Seine
2020 브런치북『하루치의 용기』에 이어지는 푸드 & 그림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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