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엔 티라미수
요즘 듣는 모 인터넷 강의의 글쓰기 과제 때문에 지난주에 짧은 글을 한 편 썼다. 과제였지만, 마침 글쓰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시점이라 기꺼운 마음으로 쓸 수 있었다. 행복, 사랑, 직업과 같은 일반적인 단어 중 하나를 골라 1,000자 정도를 쓰면 되는 거였다.
주어진 단어 중에는 선뜻 고르고 싶은 것이 없었지만 나는 ‘행복’을 골랐다. 글을 쓰면서는 행복을 예찬하기보다는 끌어내리려고 어지간히 힘을 썼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살고 싶지 않고, 손에 넣으려고 할수록 더 멀어진다는 쪽으로 생각이 흘렀다. 몇 해 전부터 에세이를 써 보니 의도하지 않아도 그때의 상황이 글에 반영되기 마련이던데, 근래 내가 행복에 대해 조금은 뾰로통한 상태인 것일까.
나는 그렇다.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 같은 키워드를 나에게 던져 주고 떠올려 보라고 하면 몹시 짤막한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예를 들면, ‘낙서하고 놀던 노트 한 바닥에 사인펜으로 그려 넣은 외계인에게 이름을 붙여 넣었을 때’와 같은, 눈 깜빡할 순간에 스치는 장면이다.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다. 일곱 살이라고 가정하면, 내가 일곱 살이던 1년의 기간, 총 8,760시간 내내 행복했던 것이 아니라 고작 어느 짧은 순간들을 행복으로 저장했을 거라는 뜻이다. 외계인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재미야 있었겠지만, 사전에서 말하는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한’ 감정은 비로소 이름을 써넣고 나서 잠깐 왔던 것 같다. 또한, 그림을 완성했다고 하여 그 행복감이 오래 유지되거나 더 발전하지도 않았다. 그 정도 레벨의 행복감은 새로운 뭔가를 또 해내야지만, 때로 지루하기도 험난하기도 한 과정을 또 지나야지만 다시 도달할 수 있었다.
예를 20대로 잡더라도 비슷하다. ‘20대에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식으로 뭉뚱그릴 수는 있더라도 그 10년 동안, 그러니까 87,600시간이 줄곧 행복했을 리 없다. 시험을 잘 보거나 좋아하던 사람과 연애하게 되는 등, 소위 기억에 남을만한 행복한 일을 겪는 시기에도, 행복한 기분이라는 것은 길어야 며칠, 대부분은 몇 시간에서 몇 분 정도 유지될 뿐 아닌가. 행복을 ‘빛’이라고 한다면, 내 인생에 있어 그것은 햇빛이나 달빛보다는 섬광이나 별똥별의 꼬리에 가까웠다. 그러니 삶을 돌아볼 때 더 무게가 실리는 쪽은 ‘행복한’ 순간이 아니다. 그걸 뺀 나머지다. 나머지의 긴 시간이다.
하고 많은 주제 중에 ‘음식’을 골라 그림 에세이를 쓰기로 했을 때는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까지 먹는 걸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고 요리를 즐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살다 보니 먹는 것은 매일 하는 일이고 그만큼 쓸거리 찾기가 수월하겠다는 이유. 본래 음악에 관해 쓰고 싶었지만, 당시 음악은 나에게 이미 한 차례 소멸해 버리고 만 별똥별과 같아서 쓰면서도 속이 쓰릴 것 같아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얼마 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음식 에세이를 다시 연재하기로 마음먹고 한 편을 썼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편부터가 난관이었다. 요즘 딱히 잘 먹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침은 시리얼이나 견과류, 점심은 간편식이나 크래커 같은 걸로 때우기 일쑤다.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 얼마 전에 사 온 것은 다름 아닌 황태채. 반려동물 키우는 집사 친구들이 자기 반려동물에게 줄 간식으로 황태채를 이용하길래 나도 나에게 그 간식을 주기로 한 것이다. 동물한테 좋은데 나한테도 좋지 않을까? 간식이 아니라 끼니로 활용하게 되어 버렸지만. 게다가 셀프인테리어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주방도 제대로 가동이 안 된 상태라, 요리 얘기를 쓸 수도 없다. 요리를 할 수가 없다. 마땅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침 생일 즈음이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언니가 내 생일 케이크로 티라미수를 사 가지고 오던 기억이 났다. 그래 맞아. 생일 하면 티라미수지. 난 생일이면 티라미수를 먹었으니까. 하고 생각했다. 이걸 써야겠다. 미국에 산 10년 동안 언니와 같이 산 게 6년 정도이니, 언니가 생일상을 차려줄 때마다 먹은 티라미수만 하더라도 최소한 다섯 번은 될 것 같았다. 그림도 그려야 하니까 티라미수 케이크 사진을 찾자. 예전 사진 폴더에 들어가 생일 날짜가 포함된 폴더들을 열어 사진을 훑었다.
한 번은 아이스크림 케이크, 한 번은 초콜릿케이크, 또 다른 한 번은 과일 생크림 케이크…. 어라. 티라미수를 먹은 기억이 분명히 있는데. 몇 년 치의 생일 사진을 다 훑는 동안, 한국으로 돌아오기 바로 전 해 딱 한 번 티라미수가 등장했다. 미처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해가 한 번쯤 더 있었다고 해도, 어쩌다 생일에 한두 번 티라미수를 먹은 걸 가지고 나는 왜 ‘생일 하면 티라미수’라고 생각한 것일까. 내 기억에 무슨 왜곡이 일어난 거지. 막막해져 버렸다. 생일마다 먹었다고 얘기를 지어낼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새로 한 번 먹고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카페에 나간 길에 티라미수를 주문했다.
씨앗을 심어도 될 것 같은 고운 밤색의 코코아 파우더가 케이크를 덮고 있었다. 그 위로 포크를 조심히 밀어 넣어 아래층의 마스카르포네 치즈 크림까지 한 입 분량을 떠 올렸다. 입에 넣고 혀로 뭉개 가며 맛을 보았다. 보송하던 코코아 가루가 구름 같은 치즈 크림과 섞이면서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이번에는 포크를 더 깊숙이 찔러 넣고, 리큐어가 섞인 에스프레소 시럽을 적당히 머금어 폭신해진 쿠키 시트까지 크림과 함께 떠 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여전히 몽글몽글 달콤하고 고소하다가도, 동시에 촉촉하게 퍼지는 쌉쌀한 풍미가 코끝까지 오르는 것 같았다. 몇 입 먹다 커피를 마시려고 잠시 포크를 내려놓았을 때, 혀는 조금 안달이 났다.
한 번 혹은 두 번 뿐이었더라도, 그래. 이 정도면 다른 케이크들을 잊었을 법하다.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에 티라미수 한 조각의 절반이 사라졌다. 어쩌면 지나간 행복에 관한 나의 셈법이 조금 틀렸을지 모른다. 강렬한 빛은 짧게 번쩍 하고 사라지는 것 같지만, 사라지고도 한동안은 앞뒤로 이어지는 시간까지 장악해 버리는지도 모른다. 행복의 기억으로 떠오르지 않은 나머지의 긴 시간도 얼마간은, 지루함이나 험난함이 아닌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은 케이크를 마저 먹어 치우고는 완전히 포크를 내려놓았다.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릴랙-스, 맨. 행복이 별거야?”라는 것처럼 들렸다.
Seine
2020 브런치북 『하루치의 용기』에 이어지는 푸드 & 그림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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