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의 유산
한국에 돌아와 한동안은 미국 살 때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있을 때면 적당히 발췌한 에피소드를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썼지만, 발췌 작업을 마친 나는 돌아오는 길 하는 수 없이 같이 딸려 나온 미국에서의 나머지 기억을 도로 집어넣는 작업도 해야 했다. 일련의 안 좋은 일들로 인한, 그러니까 비자발적 귀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정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십 년 살았다는 얘길 하면 열이면 아홉이 "한국엔 왜 돌아왔어?"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언제나 '그냥 거기서 살지, 여긴 왜….'라는 안타까운 표정이 따라붙었다. 그 질문에 둘러대는 일에는 차츰 인이 박여 갔지만 마음 한편에는 "그럼 너는 왜 한국에서 살아?"라고 되받아치고 싶은 비뚤어진 심사도 있었다. 물론 그들의 질문에는 악의가 없고, 그보다는 (이제 나도 알 만큼 알게 된) 한국에서의 삶이 주는 고단함이 더 그득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이제 그 물음에는 "그러게" 정도의 답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한창 그 질문을 많이 받던 시기 내 답변은 여러 버전이 있었다. "우연히 한국에 왔는데 재미있어 보여서"라는 천진난만한 버전이 첫 번째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오고 싶어 온 건 아니고 일이 잘 안 풀렸는데 그런 김에 한번 살아 보고 싶어서"라는 반쯤 솔직해진 버전. 그리고 비뚠 마음이 최대치일 때는 "어느 나라에서 사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단 생각이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와 같은, 질문 자체를 무력화하는 해탈한 버전이 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비교적 최근에서야, 나는 내가 살았던 애리조나를 고스란히 추억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그리워해서는 안 될 대상이라도 되는 양 몰래 조금씩 꺼내 만져 보다 다시 서랍에 넣는 식의 추억을 하곤 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 십 년도 넘어서야 당당하게 추억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뭐 그렇다고 미국의 기억이 내 안에서 내내 어떤 고통을 양산하거나 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누가 건드리지만 않으면 가만히 잘 있었다. '도로 집어넣는 작업'을 반복한 만큼 그 시간도 자연스레 기억 저편으로 물러나 있었을 뿐.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한 곳은 애리조나주다. 그곳에서 7년 남짓 살았고, 이후 캘리포니아주로 건너가 3년 좀 안 되게 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애리조나 하면 카우보이를 연상할 뿐 막상 위치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언제나 다섯 손가락을 붙인 왼손바닥을 가로로 길게 들어 보이며 설명한다. "자, 이게 미국이야." 누운 손바닥의 왼편 가장자리 중간부터 맨 아래까지가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주, 그리고 오른편 가운뎃손가락 맨 끝부분쯤이 동부의 뉴욕이라 치면, 애리조나주는 방금 전 짚었던 캘리포니아 남단의 바로 오른쪽에 붙어 있다고. 아래로는 멕시코 국경과 인접하고,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가 만나는 곳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라스베이거스라고. 그렇게 설명한다.
그곳에서 살게 된 초반에 흔히 전해 들었던 말, 그리고 나중에 그곳을 잘 모르는 이에게 설명해야 할 때 가장 자주 하게 된 말은, "일 년에 300일 이상이 맑은 날인 곳이야"였다. 애리조나는 내게 '카우보이'가 아니라 '태양'이다. 태양, 노을, 사막, 선인장, 그리고 그 뜨거운 날씨. 전체 면적이 한반도보다 넓어서 북부로 올라가면 기온이 떨어지는 지역도 있지만, 내가 학교와 직장을 다닌 피닉스 근방은 여름이면 평균기온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이글거리는 도시다. 그나마 습도가 낮은 사막 기후라 햇빛을 피하면 견딜 만은 하지만, 그냥 막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한 정도의 기온이다. 겨울 역시 영하 근처로 떨어지는 일은 없어서, 눈 볼 일 없는 따뜻한 곳이기도 하다.
처음 어학연수를 할 때는 오래전 이민하여 세탁소를 운영하던 친척 어른의 집에 머물렀고, 몇개월 만이었는지 정확하진 않으나 곧 아파트를 얻어 나와 살았다. 사촌오빠, 언니, 나 이렇게 셋이 살다가, 오빠가 먼저 귀국하고는 언니와 둘이 한참 더 살았다. 우리 둘 다 학생이니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는 날도 많았지만, 집에서도 곧잘 해 먹는 편이었다(그렇게 된 계기는 '이거 사다가 조려 먹을까' 편에서 다루었다). 우선 밥은 한 번에 몇 끼분을 해서 1인분씩 랩으로 잘 싼 뒤 냉동 보관했고, 식재료도 바로 꺼내 조리하기 편하도록 소분해 저장하곤 했다. 또는 한 번 할 때 넉넉히 해서 며칠 간단히 챙겨 먹을 수 있게 준비하는 요리도 있었다. 국이나 카레 같은 메뉴 말이다.
그날도 카레를 했다. 애리조나는 이미 한여름에 접어든 6월 21일이었다. 날짜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이 언니의 생일 전날이자 그날 밤 바로 2002년 월드컵 8강전이 열릴 터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낮에 카레를 한 솥 해서 점심으로 먹었던 것 같고, 저녁에는 친구 집에 가서 여럿이 함께 스페인전을 보기로 돼 있었다. 언니와 나, 그리고 몇몇 한국인 친구들은 학교 근처 누군가의 집으로 다 같이 'Be the Reds'가 쓰인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우르르 몰려가 TV 앞에 모였다. 시차 때문에 늦은 밤에야 한국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새벽이었다. 한국이 승부차기 끝에 4강에 진출하는 기적이 정말로 눈앞에서 일어나 버렸다. 우리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도 소리를 지르는 통에 아래층에 살던 미국인 학생이 쫒아 올라와 문을 두드리기까지 했다. "저기, 너희 지금 흥분한 건 이해하지만, 조금 조용히 해 줘." 진심으로 미안했지만 우리는 사과하면서도 터져 나오는 함박웃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암 륄리 쏘리, 맨….
날이 밝고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한 차에 모여 탄 우리는 '빵빵빵 빵빵' 경적을 울리고 차 안에서 "대~한민국"을 외쳤다. 운전하던 친구에게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그 리듬을 들은 이상 대~한민국을 외치지 않을 수는 또 없는 노릇이었다(이것은 내 기억으로 딱 한 번 했던 것 같다. 넓은 도로였고 주변 건물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으니까 큰 민폐는 아니었길). 언니는 아직도 2002 월드컵을 한국에서 못 본 게 한이라고 한다. 아. 한국에 있었다면. 모두가 함께 미쳐 버린 거리를 나도 느껴볼 수 있었다면.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차. 그리고 이 뜨거운 날씨. 집에 들어선 내가 발견한 것은 바로 그 카레 한 솥이었다. 아아, 나는 왜 카레를 스토브에 올려둔 채 집을 비운 것일까. 워낙 솥이 커서 좀 식힌 후에 냉장고에 넣으려고 스토브 위에 둔 채 까맣게 잊은 것일 테다. 뚜껑을 열기가 무서웠다. 이 글을 쓰며 그날의 날씨를 조회해 보니 최고기온이 화씨 105도, 섭씨로는 40도를 웃도는 날이었다. 카레는 통째로 이상한 쇠 냄새 같은 것을 풍기며 상해 있었다. 나는 솥을 들고 울상이 되어 싱크대 배수구의 음식물 처리기에 카레를 부었다. 한국의 4강 진출이 아니었다면 자책감을 이겨낼 수 없었으리라.
그때부터 남은 요리는 언제나 스토브나 조리대가 아닌, 식자마자 냉장고에 넣는 습관이 생겼다. 습관이라기보단 노이로제에 가까울 것이다. 한국에 와서도 한동안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더운 날이 아니어도 병적으로 음식이 남은 냄비는 식는 대로 바로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카레를 버리던 어린 날의 실망감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컸다. 요즘은 음식을 한꺼번에 많이씩 하는 일이 없기도 하지만, 내 강박은 이제 여간해서는 나를 깜빡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그날의 카레가 나에게 남긴 유산이다.
그 뜨거운 날들의 기억은 이제 그리움의 모습을 하고 떠오른다. 특히 한국의 축축한 여름을 날 때면 모든 걸 바싹 태워버릴 듯한 애리조나의 작열하는 태양을 빌려와 공중의 습기란 습기를 다 말려 버리고 싶은 심정이 된다. 반팔 티를 입고 사막에서 말타기 체험을 하고 돌아온 날 팔에 탄 자국이 빼빼로처럼 남아 한동안 민소매를 입지 못했던 기억이. 언니 오빠와 차 한 대를 같이 타던 시절 서로 다른 건물에서 수업을 마치고 중간 어디쯤의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 날 그 뙤약볕은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는 것을 다 걸어 와 일사병에 걸려 버리고서야 깨달았던 기억도. 지붕 없는 곳에 낮 동안 대 놨던 차에 탔을 때 달아오른 핸들을 차마 두 손으로 감싸 쥘 수 없어 뜨거운 국그릇 잡듯 손끝을 세워 손톱으로만 짧게 잡고 떼기를 반복하며 겨우 주차장을 빠져나갔던 기억들이.
비로 바뀐 눈이 녹은 빙수처럼 질척거리는 오늘 같은 겨울날에도, 그 태양은 이렇게 불현듯 마음속에 떠오른다.
Seine
2020 브런치북 『하루치의 용기』에 이어지는 푸드 & 그림에세이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aruchi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