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후기
가지고 싶었지만 가져보지 못한 것을 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는 일은 누구에게나 기적같은 일일 것이다.
그런 기적같은 사랑 끝에도 누구나 이별은 겪을 수 있고. 여기까지는 사람이라면 다 겪는 인생의 순간이 아닌가. 그럼에도 이별의 이유가 나에게 있다고, 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관계의 부조리함때문에 아연해졌다. 그런 관계의 부조리함이 떠올라서인지, 오히려 클리셰로 가득한 영화도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이별의 이유가 나의 장애때문이라고, 원망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받아들여야하는 한 마음과 당연히 지칠 수 있는 상황에, 그저 평범하게 한 사랑과 이별임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다른 한 마음이 불행이 아닐 수가 있을까.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서로에게 미안함과 죄책감만 느끼는 관계의 불행함때문에 또 휴지산을 쌓았던 영화.
관계의 불행을 담은 영화 속에서 나에게 인상을 남긴 것은 할머니의 일그러진 사랑과 코지의 애정이었다.
사실, 주인공 둘의 사랑 자체는 미디어에서 흔히 보이는 전형적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대단히 인상적이라고는 느끼지 못했다. 장애가, 좋은 어떤 사람을 평가절하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냥 사랑스러운 연애를 보는 느낌이긴 했다. 결말 또한 특별한 극복이나 전환 없이, 그저 사랑하다 헤어진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장애라는 요소가 서사에 신파적인 느낌을 더했을 수는 있지만, 오히려 나는 그 때문에 이들의 사랑보다는 다른 관계들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온전하지 않은 아이가 외부에서 들을 소리가 싫었을까, 아니면 본인이 그런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느끼는 수치가 힘들었을까.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는 조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코지의 애정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온전한 방식의 관계였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조제는 코지를 어쩌면 돌봐줘야하는 안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코지에게 조제는, 코지가 대하는 조제는 그냥 소꿉친구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왜 기죽는지 이해 못 하는.
코지가 결혼하는거냐고 화내는 장면이 이 영화의 순간 중 가장 기억에 남아있다.
그 때부터도 결혼은 무슨, 했던 조제가 안타까웠고,
맨날 그짓하고 부모님 보러가면 그게 결혼이지, 라고 화를 내준 코지에 안심이 되었던 이중적인 감정이 드는 장면. 코지만이 조제를 장애인이 아닌 조제로 대해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러면 결혼해, 너 다른 사람들이랑 하나도 다르지 않아. 왜 기죽어! 하는 화를 내준 것 말이다.
아무튼..이 관계가 사랑이 아니어도 어쨌든 죽을 때까지 볼 관계는 될 것 같은데 조제의 '혼자서 바다 밑바닥을 굴러다니겠지'하는 대사에 뭍힌 느낌이 아쉬웠다. 사랑이 전부냐?!(눈물)
하지만 사람에게는 친구 아닌 사랑이 주는 다른 세계가 있으니까...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면서 어려운 문제구나 생각했다.
사랑이 아니어도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친구 한 명.
그것이 세상에서 보기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걸까.
옛날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 상황 때문에 더 지나치게 비극적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즐거웠다. 이 영화를 보고 남겼던 기록이 3월 달이었는데, 최근에 Beautiful Life 란 일드를 보고 생각이 났다.
그 드라마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먼저 써보자면,
나는 그 드라마가 어쩌면 해피엔딩이 아닌가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조제와 코지의 사랑을 특별하게 묘사하기보다, 아주 현실적인 이별의 순간으로 이야기를 정리해버린다.
장애가 아니어도 이별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사랑이 자연스럽게 식어가는 순간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어떤 한 가지 요소가 그런 순간과 선택들을 '자유롭지 않게' 만드는 순간, 이별은 더이상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사회적인 무게가 되기도 한다는 걸 영화를 통해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둘의 사랑이 극복하지 못한 무언가 때문이라기보다,
비슷한 이유로 사랑을 포기해야 했던 많은 조제들을 떠올리게 되어 더 아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섭섭하고 쓸쓸하면서도, '그게 현실이지'라고 말하게 되는 감정을 남긴다.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좋았고, 그래서 더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