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누군가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정치적인 글을 가급적이면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지나가던 역사학도의 역린을 건드리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12일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 명백한 위서인 "환단고기"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저 '환단고기'와 관련된 논쟁을 언급한 정도였으면 이렇게까지 글을 쓰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은 정확하게 "동북아 역사재단은 고대 역사 연구를 안 합니까?"라고 했다. 그 말은 즉, 환단고기를 연구하지 않는 것은 고대사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더 나아가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라는 질문은 학계의 사료 검증 자체를 무시하는 언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날카로운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동안 역사학계가 2010년을 전후하여 당시의 정치 세력을 등에 업고 등장했던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위서 "환단고기"로 대표되는 '사이비 역사학'의 난립을 극복하기 시작한 것이 채 몇 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건한 표현으로는 '재야 사학자'로 불리는 그들은 왜 한민족의 강역을 '한반도 내'로 국한시키는가,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을 단재 신채호에 뿌리를 둔 자주적이고 애국적인 '민족주의 역사학'이고, 그 반대편의 '강단 사학자'들은 두계 이병도에 뿌리를 둔 수구적이고 친일적인 '식민주의 역사학'으로 칭했다. (웃긴 점은, 당시 그들이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았기에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교과서 사업을 반대했던 이들을 '식민 좌파'라고 칭했다)
이는 명백히 '민족'의 개념에 대한 어긋난 사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에 '민족'과 '국민'에 대한 개념이 처음 소개된 것은 구한말부터였다. 유럽에서 다수의 학설이 nation(민족)이 '정치적 결사체'의 의미로, volk(국민)이 '문화적 결사체'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것과 달리, 동양권에는 소수 의견에 불과했던 독일의 블룬츌리의 의견이 널리 사용되었다. 즉, 민족이 문화적 결사체의 의미로, 국민이 정치적 결사체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국민을 민족의 상위 개념으로 둠으로써, "모든 민족이 국가를 이루어 국민이 될 권리는 갖는 것은 아니며, 스스로를 통치할 만한 지혜와 덕을 겸비하지 못한 민족은 국민이 될 수 없다"라는 국가론을 반영한 것이었다. 일제는 국가 중심적인 이 개념을 수용해 제국주의적 문맥으로 민족과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중국에서도 량치차오가 이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고, 그 용례가 한국에까지 퍼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단재 신채호 역시 이 개념을 그대로 인용했고, 그가 주필로 있던 "대한매일신보"에는 민족과 국민을 구분함과 동시에, 국민 자격이 없는 민족에게는 발 디디고 살 땅도 없을 것이라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다만, 신채호는 국가 찬탈의 위기 속에서 국가와 민족을 분리하는 것에서 그 의의를 찾았다. 즉, 설령 국가가 없는 상황이더라도 '민족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독립운동의 근거를 찾았던 것이다. 신채호는 한민족이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근대국가 설립을 위해 주체적인 입장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민족주의 사학'의 대표 격으로 단재 신채호를 꼽는 것이다.
다만, 식민통치는 역사 연구에 있어서도 작지 않은 상흔을 남겼고, 해방 후 1960~70년대의 역사 연구는 상기한 '민족주의 사학'을 배경으로 식민사학을 극복하는 것에 대부분을 할애했다. 이에 대해 80년대 이후, 식민사학의 극복에만 몰두하고 있는 연구 흐름에 대한 자성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즉, 학계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식민주의의 극복이자 새로운 연구 흐름의 도래에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주의 사학'의 레토릭을 '재야 사학자'들이 독점하는 것은 말이 안 될뿐더러, 오히려 이분법적 사고로 학계의 연구자들을 비난했던 것은 그들이다. 그렇기에 '환빠'라는 멸칭을 재야 사학자들에게 사용하고 있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언행이 더 비판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연구 주체가 '강단 사학자'든, '재야 사학자'든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객관적인 사료 검증을 통해 비판적인 자세로 과거를 읽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닌가. 하지만 대통령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환빠'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며 연구자들을 양분시키는 언동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해묵은 논쟁의 뿌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것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부디 나의 이런 걱정이 우려에서 그치길 바란다.
참고문헌)
젊은역사학자모임,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역사비평사, 2017
젊은역사학자모임,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서해문집, 2019
박상기 기자, "李대통령 "환빠 논쟁 모르나"... 업무보고에 등장한 '환단고기'", 조선일보, 2025.12.12,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5/12/12/TZCSZ44LABHI3BBJPOXQO4SQ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