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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단상: 공부할 권리

- 공부할 권리(정여울 저) 를 읽고 -

   직장 생활이 바쁜 것인지 아니면 게을러졌는지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책과 글쓰기에서 소원해졌다.  오랜만에 글도 쓰고, 책도 읽었다.  며칠 전에 읽은 도서로는  ’공부할 권리‘라고 정여율 작가가 쓴 인문학 서적이었다. 

 ’공부할 권리‘는 2016년 발간되었지만 2020년 13쇄가 인쇄될 만큼 스테디셀러로 느껴졌다. 

정여울 작가가 10년 동안 시간표도 선생님도 없는 나만의 작은 마음의 학교에서 스스로 배우고 익힌  배움의 기술을 담아온 글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책이었다. 

 

출처: 교보문고( 공부할 권리, 저자: 정여울, 출판 민음사, 발매 2016.3.10.)


        지금까지 헤벨이 한 번도 책을 읽으면서도 ’필사‘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공부할 권리‘라는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필사‘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가기게 한 책이었다. 

   이 길 없는 길 위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많은 사람들과 이별했고, 그 길 끝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는데 용감하게 두 주먹을 꽉 쥔 아이, 마음이 단단한 작은 아이을 만났는데 그 작은 아이가 바로 정여율작가라고 한 것처럼, 이 책은 헤벨에게도 ’나‘라는 껍질을 깨고 온 세상을 헤매다 비로소 나만의 소중한 깨달음을 얻는 내면아이인 나를 만나게 해주었다. 

   ’공부‘라는 것은 헤벨에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수단, 돈을 벌고 직장을 가지기 위한 통과의례,  지적인 자랑질도 조금 필요한 부분들이 있어서 ’공부‘라는 것을 해왔다. 정여율작가는 왜 우리가 공부할 권리가 있어야 하는지를 5부로 나누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제1부는 인간의 조건, 제2부는 창조의 불꽃, 제3부는 인생의 품격, 제4부는 마음의 확장, 제5부는 가치 창조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다운 삶을 살아기가 위해 공부를 해야 하고, 창조의 불꽃을 위해 내면의 황금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공부할 권리를 통해 인생의 품격은 개인의 상처를 인식하고 인간다움을 회복시키는 자아의 확장을 위한 작은 공동체를 만들 것을 어필하였다. 


인간이 공부하는 이유는 자신의 영혼의 대화와 질문의 시작을 통해 나의 존엄을 지켜주는 최고의 멘트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헤벨이 필사할 욕구를 가지게 한  울림의 주는 문장들이다. 

  - 고통으로부터의 도피 -
여기저기서 힐링 열품이 거센 요즘. 이 요란한 힐링 열풍에는 뭔가 불편한 광기가 스며있습니다. 그 불편함의 정체는 뭘까요? 아픔에 대한 성급한 알레르기 반응이 아닐까요? 아픈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듯한 조바심, 아픔은 무조건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 믿는 조급증, 아픔의 의미를 곱씹어 보기도 전에 아픔을 무차별적으로 퇴치하려는 성급한 통제의 욕망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같습니다. 통증은 공포를 자아내지만 분명 우리에게 어떤 절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 통증의 메시지를 우선 가만히 들어보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중략- 우리가 쉽고 빠른 진통제만 찾다가 놓치는 것 뭘까요? 바로 고뇌하고 진통하는 능력입니다.  현대인은 아픔에서 도망치느라 아픔이 가르쳐 주는 진실을 외면해 온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 공부할 권리(정여울 저)-

    이 문장을 읽으면서 누군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인생의 디폴트 값은 ‘고통’이다. 고통이라는 기본값인 인생을 고통이라고 여기지 말고, 그 위에서 행복을 찾아가고, 고통은 기본으로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머리로는 알지만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감정적으로 쉽게 적응이 되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생을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우리가 놓치는 것들이 무엇인가? 너무 고민하지 않고, 쉽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찾는 행위, 고뇌하고 진통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빠르고 순간적인 쾌락을 쫓아가는 현대인들이다. 헤벨도 예전에는 힘든 일들이 있으면 우선 피하려고 했다. 고민하고 싶지 않다 쉬운 길들을 찾아가려고 했다. 직장에서의 업무도 그렇고 사람 관계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이상하게 쉽고 쉬운 길, 편한 길을 찾으려고 하면 일이든, 사람 관계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경험들이 있었다. 

   올 초에 헤벨은 직장에서 승진할 줄 알았고, 승진할 순번이었서 승진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승진하지 못한 뼈아픈 경험을 했다. 그때는 세상에 정의라는 것이 있을까? 노력, 열심보다는 다른 부수적인 정치적인 그 무엇, 인맥, 학연 등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승진하지 못하니 주위 시선들도 불편했다. 나만 뒤떨어진 것 같고, 능력이 없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 승진이 뭐 대수냐고 ?' 누군가 위로라고 말하는 사람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당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함부로 위로라는 허울 속에서 꺼내지도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아팠고, 힘들었다.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헤벨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안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는 것을 알기에 마음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할 방법으로 헤벨이 선택한 것은 ‘글쓰기’였다. 블로그를 시작한 시점도 승진하지 못한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시기와 맞물렸고, 한 번도 배우적이 없으며, 세상에 내어본 적이 없는 글쓰기를 통해 나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였다. 글쓰기를 통해 아픔에서 도망치지 않고, 아픔이 가르쳐 주는 진실,  신이 나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죄와 벌'에서 포르피리가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자수를 권하지만 자신이 자수하지 않고 도망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자 포르 피리는 ” 당신은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괴로움이란 위대한 것이니까요. 괴로움에는 사상이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승진하지 못한 아픔과 괴로움이라는 것이 헤벨에게는 삶을 돌아보고, 삶을 겸허하게 살아야 하는 사상을 주었고, 이러한 기회가 나를 돌아보고 성장시킬 수 있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순간적인 아픔이나 고통을 치유하는 항생제나 진통제는 고통을 대처하는 면역력을 떨어트릴 수 있으며, 우리가 쉽고 빠른 진통제만 찾다가 놓치는 것이 바로 고뇌하고 진통하는 능력이며 우리들이 아픔에서 도망치느라 아픔이 가르쳐 주는 진실을 외면해 온 것을 아닐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작가는 제2부에서 창조의 불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고독할 자유'에게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철학자 기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각종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왜 자신이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할까? 혼자 있을 때조차 휴대폰을 만지막 거리며 세상과 연결된 느낌을 갈망하는 현대인은 고독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린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수백 명의 페이스북 친구들을 알고 있지만 정작 가장 힘들고 지쳤을 때 진심으로 전화하고 싶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지, 멀리 있는 친구들과는 기꺼이 연결되기 위해 '좋아요' 버튼을 누르면서 가까이 있는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지 않았는지  우리가 페이스북 친구를 수백 명씩 늘려가고 트위터 팔로워를 늘리려 애쓰는 동안 우리도 모르게 점점 잃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타이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느라 타인이 보기 힘든 것, 나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그 무엇을 조금씩 잃어갑니다. - 공부할 권리(정여울 저)- 

     이  문장을 읽으면서 헤벨도 고민에 빠진다.  처음에는 블로그 혹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가 ' 글쓰기'를 통해 나의 일상의 기록이나 생각을 적다보면 나의 성장을 꾀하고 인생에서 내가 경험하는 고통과 아픔이 희석되거나 치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브런치를 용기 위해 시작했다.


    블로그 이웃 및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좋아요’ 숫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저렇게 많은 이웃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좋아요 표시가 이백 명이 넘어가는 것’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블로그의 ‘좋아요’ 숫자를 늘리는 방법을 상고하기 시작하니 정작 처음에 헤벨이 시작했던 글쓰기의 목적이었던 나만의 슬픔, 상처, 희망, 몰입하는 시간의 기쁨 등을 가꿀 시간이나 생각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에 빠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 이웃과 브런치 구독자 수를 늘리고 싶다. 어쩔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위로한다.

   작가는 고독을 통해 소년은 자란다는 말을 하고 있으며,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며, 우리들의 결핍을 채워 줄 수 있는 대상을 바깥에서만 구하지 말고 우리 마음속에서 찾을 때 고독은 고통이 아니라 구원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헤벨은 군중 속에서도 외로움, 고독을 느낄 수 있음을 알기에 어떤 순간에도 혼자 있음을 자각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며, 어떤 소문이나 새파 속에서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헤벨이 아닌 진정 헤벨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스쿨존에서는 어린이가 주인공이다'라는 플래카드 문구를 볼때마다  ‘ 헤벨 존에서는 나 자신이 주인공이다’를 외치면서  헤벨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헤벨 존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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