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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단상: 나약함이라는 무기

-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 

   나의 삶에서, 직장에서, 인간관계에서 해방되고 싶은 감정이 소용돌이 칠 때 내 손에 들어온 책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였다.  직장에서 다수의 민원들로 인한 감정적 소진과 개인적으로 해결해줄 수 없는 요구들로 자괴감이 패배감으로 엄습해왔고 인간관계에서도 내 맘같지 않은 사람들이 준 상처로 인해 마음이 굳어져가고 있었다. 더욱이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교육지원청의 생활에서  해방하고 싶어지는 욕구로 가득찬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주인공 고상욱씨를 만난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사회주의자, 빨치산의 전력을 가진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주인공인 고상욱씨의 고단한 인생여정을 마무리 하는 삼일 동안의 장례식장에서 마주하는 그분의 삶의 궤적과 주변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접하게 되었다. 역사의 아픔인 전쟁, 이데올리기의 잔재로 인해 고통받았던 시절의 인물들의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고상욱씨의 평생친구 박선생은 강제로 끌려간 학도병일 때, 자신의 총구로 빨치산이었던 형, 누이를 죽였을 수도 있었다는 죄책감으로 ‘하염없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 큰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는 이유로 연좌제에 걸려 꿈을 포기한 채 살아온 길수오빠의 ‘괜챦다, 괜챦아’라는 푸념의 말과 고상욱씨의 빨치산 동지, 친척들의 쉽지 않은 인생여정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 고상욱씨의 주변인물들 보다는 훨씬 좋은 시대, 환경, 시대적 이데올로기의 피해를 보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고상욱씨가 민중을 위해 살아왔던 것처럼 민중까지는 아니어도 나의 미약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거라고 생각이 되며 인생의 시계방향을 다시 힘차게 돌려놓기로 작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다짐뿐만 아니라 오랜 숙변처럼 나의 내면의 깊은 곳에 묵혀두었고, 나에게 금기어로 여겨졌던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 분의 인생에 공감할 수 있었다. 

   고상욱씨의 동생이며 주인공의 작은아버지는 항상 술에 취해 자신의 인생 실패를 형탓으로 돌리는 이야기의 책 초반부를 읽을 때 만해도 나는 작은아버지라는 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책장을 넘기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작은아버지가 술에 취해 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읽게 되는 순간 작은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할수 있었다.  여순사건이 나고 한 열흘 뒤, 수배 중이던 고상욱씨가 14연대를 끌고 반내골에 나타탔으며, 작은 아버지와 동네 아이들은 젊은 군인들이 훈련하는 모습에 홀린 듯 구경하였고, 반내골 주민들은 빨치산 14연대를 위해 돼지도 잡아주고 환대해주었다. 어느날, 빨치산을 잡으러온 군인들이 학교 교실로 들이닥쳐 ‘고상욱을 본 사람’을 물어보았을 때 작은 아버지는 자신의 형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고상욱이 우리 짝은 성인디요! 짝은 성이 문척멘당위원장잉마요” 라는 말 한마디로 군인들은 할아버지를 죽였고 할아버지의 주검 곁에서 오줌을 질린 채 혼절한 작은 아버지는 그 뒤부터 입에 돌멩이를 문 것처럼 말이 없어졌고 평생을 술에 취해 살게 된 작은 아버지의 사정은 나의 기억에서 소환시키기를 금기시켰던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고상욱씨의 동생분처럼 ‘ 나의 아버지’의 삶도 차마 자식들에게 말 못했을 사정이 있었을 것이며, 아버지 만의 사정으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무게와 아픔으로 아버지의 삶도 쉽지는 않았으리라. 

출처: 교보문고, 아버지의 해발일지, 저자: 정지아, 2022.9.2.

   성장기였던 나의 청소년기에 ‘아버지’의 존재는 무의미한 존재, 아픔을 주는 존재로 여겨졌고, 아버지라는 이름은 생리학적인 DNA를 물려주신 분으로만 생각되어졌다. 나는 특별한 집안에서 자랐다. 그러한 특별한 가정을 만드신 분이 아버지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나의 집이 평범과 정상의 범주에서 과도하게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 나서였다. 나에게는 어머니가 두 명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들어갈 때쯤 할머니 제삿날에 고모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고 나서야 우리 집에 어머니가 둘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의 큰 어머니는 우리 마을에서 최고로 미인으로 손꼽힐만큼 어여쁜 처자였고, 아버지와 결혼한지 10년 가까이 되어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손이 귀한 집안이어서 할머니는 자손을 봐야된다고 아버지를 닦달하셨고, 아버지는 논마지기를 주고 가난한 농삿꾼의 첫째딸이었던 우리 어머니를 데려왔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는 큰어머니와는 외모부터 완전히 달랐다. 거무잡잡한 큰 얼굴, 단단한 어깨, 펑퍼짐한 엉덩이의 신체 조건을 가진 나의 어머니는 친할머니가 가장 우선으로 꼽았던 자손을 잘 낳을 수 있는 선호하는 체격이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소원했던 자식을 나의 어머니로부터 여섯명이나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어머니의 지위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큰 어머니에게는 자주 옷이며 핸드백이며 화장품 등을 사다주곤 하셨지만 어머니에게는 그런 물건이 필요없는 여자 취급을 하였다. 유년시절부터 봐았던 아버지는 자식을 여섯 명이나 낳아준 나의 어머니는 애정하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아버지는 벽돌공장을 하셨는데 나의 어머니는 벽돌공장의 인부들의 삼시세끼를 준비하시고 여덟식구들의 밥까지 책임지시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어머니의 앞치마는 항상 고추장, 된장 국물로 얼룩져 있었다.  아버지는 힘들게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고맙다’ 라는 말이나 살가운 말 한번 하지 않았다. 당연히 어머니는 힘든일을 하는 여자로 여기신 것 같았다. 

  

     머리가 커지면서부터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애정하지도 않으면서 어머니의 삶을 살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한 집안에 두 여자들 중에 한 명만 골라서 살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자식들을 낳아준 여인에게 최소한의 배려, 인간적인 정(精)이 있었다면 어머니의 인생이 그렇게 고달프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아버지라는 보통명사는 나에게는 금기어가 되었다. 아버지는 자식들 중에서 아들들만 공부하도록 등록금을 대주셨고, 여자가 공부해서 뭐하냐면서 큰언니와 둘째언니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직시켰다. 아버지는 여성성을 가진 자식에게는 부성애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의 뜻을 반대하고 나를 대학교에 입학시키셨다. 아버지가 가장 믿고 똑똑했던 둘째 오빠가 허망하게 요절하자 그 다음 해에 아버지도 삶의 희망을 놓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20년이 흘쩍 넘겼다. 아버지의 흔적을 생각이나 이미지로 마음속에 긁는 작업을 통해 그리워하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선 과제를 먼저 풀어야만 했다. 나에게 풀어야하는 과제의 매듭을 풀어준 분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나오는 인물,  고상욱씨의 동생분이었다.  고상욱씨의 동생을 보면서 처음으로 나의 아버지에게도 말못할 사정이 있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과제의 매듭의 끈을 풀었다. 

    시각장애인 홀어머니를 모셔야했던 나의 아버지, 할머니의 소원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나의 어머니를 데려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 집안에 두 명의 여인과 사는 것에 대한 부담감,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뒷담화도 아버지의 빠져나올 수 없는 인생의 십자가였을 것이며 여섯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키워야하고 공부시켰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이 자신의 삶을 짓눌렀을 것이다. 아버지의 배우지 못한 한(限)을 어떤 자식도 풀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 믿고 의지했던 자식을 잃은 상실감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인생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 aaronburden, 출처 Unsplash


    추운 겨울에 초등학교 4학년 막내딸이었던 나의 방학숙제인 방패연을 만들어주시면서 “ 너는 방패연처럼 세상 멀리멀리 자유롭게 날아다녀라” 하셨던 말씀에서 아버지도 자신의 삶을 찾고 자유롭게 날고 싶음을 복선으로 내비치신 것 같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고상욱씨 주변의 인물들이 품은 각자의 사정을 가진 인생들을 만난 나는 비로서 깊는 내면의 금기어였던 아버지와 만나게 되었고, 나의 아버지의 인생의 실패와 가난, 어려움을 통해 배운 것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별한 가정사는 나를 인생의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용기와 끈기를 얻었다. 


   이것들은 아버지가 나에게 주신 인생의 선물이다. 아버지로부터 부성애와 물질적인 풍요를 얻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인생도 쉽지 않고 고통스러우심을 늦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특별한 가정사가 나를 아프게 했지만 그런 특별함 속에서 배운 삶의 교훈은 현재의 헤벨을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고상욱씨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구석이 없었지만 그 분의 인생을 통해 나는 배웠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무기는 타인을 통제하는 부, 명예, 높은 직위를 이용한 ‘강인함’ 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할 수 있는 ‘나약함’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나의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던 ‘나약함’이 이 세상을 스스로 살아갈 용기와 인내심을 나에게 주셨던 것에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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