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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일상: 92세 작은아버지의 농담

   오랜만에 가족 모임이 있었다.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우리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은 작은아버지이시다. 연세는 92세이며 평생을 부안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지금은 연세가 드셔서 농사일을 못하시지만 소일거리로 텃밭을 가꾸시거나 집 뒤뜰의 감나무를 돌보신다. 나는 작은 아버지님의 농담과 잡담이 좋다.  연세가 있으신데도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농담을 하신다. 듣고 있으면 웃기고 정답다. 


   모임에서 작은 아버지의 화두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작은 아버지 집에 들어와서 집고양이가 된 이야기를 하신다. 몇 달 전부터 길고양이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와서 작은 아버지가 길고양이에게 밥이랑 고기를 조금씩 주셨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놈이 언제부터인가 떡 하니 집 마당에 자리 잡고 놀고 있어서 처음에는 집에서 쫓아내기도 했는데 하는 짓이 이뻐서 집 마당에 박스를 놓아주셨다고 하신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마당을 벗어나 이제는 집안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 내가 누워있는데 이불 밑에서 누가 내 발을 자꾸 건드리는 거여. 그래서 속으로 이 할망구가 노망이 났나? 왜 발을 건드리고 그런데 생각은 했는데. 나를 건드려주니 기분은 좋더라고. 조금 있더니 이제는 발이 아니라 중요한 부위를 건드리는 거여. 그러니 기분이 더 좋더라고. ‘할망구야. 뭐 하는 거야?’ 하고 옆을 돌아봤더니 옆에 누워있는 줄 알았던 할망구가 없는 거야. 엄청 실망하면서 이불을 젖혀보았더니 이놈의 고양이가 발로 내 중요 부위를 건드리면서 ' 야옹야옹' 하고 배 위로 올라타고 나한테 뽀뽀하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할망구가 아니어서 실망했는데. 고양이가 나 같은 목석을 건드려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 하하. ”

    밖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작은 아버지는 집으로 들여오게 하려고 하고, 작은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려는 고양이를 밖으로 내보려고 해서 서로 옥신각신 싸우신다고 하신다. 

 

   92세 작은아버지는 평생 농사짓느라고 허리가 굽어서 제대로 펴지도 못하신다. 그래도 상시 신문이며, 책을 놓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나이가 들면 몸도 아프니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신다고 하시는데 작은아버지는 몸이 아프니 더 자신을 가꾸어야 한다고 하신다. 

 

행복한 사람은 여유가 있다고 한다. 주변을 볼 줄도 알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잘 나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는 작은아버지는 친척들, 이웃들을 돌아보실 줄도 알고,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인생의 후배들과도 이야기를 잘 나누시는 것을 보시면 여유가 있으신 분임에 틀림없다. 


   작은아버지는 농담을 곧잘 하신다. 어르신이라고 해서 진지하지 않으시다. 너무 진지하면 

다가가기 힘들 텐데 너무 엄숙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으셔서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나도 나이 들수록 너무 엄숙하거나 진지해서 주변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노인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삶에 여유가 있어서 잡담과 농담도 하고, 시시껄렁한 농담도 젊은이들에게 던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의 책상 앞에 붙어있는 키플링이 말한 진정한 어른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본다. 

‘ 너무 선한체하지 않으며,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고,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상식을 잃지 않으며, 모두가 도움을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너무 의존하지 않게 만드는 어른이 진정한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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