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 3국 여행을 선택한 이유들 중 한 가지는 조지아를 소개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반해서였다.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로 불리는 조지아, 와인으로 유명한 조지아 그리고 조지아 캔커피에 이끌려 코카서스 지역을 여행하기로 맘먹은 헤벨이었다. 기대가 너무 컸을까? 아니면 조지 여행을 소화시키기에 힘든 체력 탓이었을까? 조지아 여행은 헤벨에게 인내가 필요한 여행지였다.
조지아의 풍경이 아름다워서인지 4세기부터 그리스에 침략을 당하고, 1990년대까지 페르시아, 로마,
아랍, 오스만제국, 러시아 등 잇따른 강대국의 침략을 받은 험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세기에 소련에 합병되어 러시아식의 표기인 ‘그루지야’라는 국명으로 살다가 1991년 독립을 했고, 2010년에는 조지아라는 영어를 전 세계에 불릴 것을 공식 요청하였고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조지아를 국명으로 불러서 조지아는 우리나라를 형제국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조지아는 강대국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조지아인들은 사람들과 와인을 마시면서 소통하고 화합하는 방법을 알았다고 한다. 포도주의 역사도 8,0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다른 민족들이 조지아를 침략할 때 제일 먼저 그들의 정신적인 뿌리인 포도밭을 파괴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조지아인들을 더 많은 포도를 심어서 그들의 고향의 뿌리를 찾았다.
조지아 와인이 유명한 이유는 조지아 전통방식의 ‘크베브리 와인’으로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크베브리란 양조, 숙성, 저장에 사용하는 조지아의 전통 항아리를 말한다고 한다.
집을 지을 때 그들은 크베브리 포도주 항아리를 중앙에 놓고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만들어서 그들만의 독특한 와인을 생산하였다고 한다.
조지아인들은 와인을 마실 때 ‘타마다’라도 외친다고 한다. 타마다란 건배를 외치는 사람이 말하지만 ‘신께 영광을, 인류에게 평화를, 모두에게 안녕을’기원하는 뜻이다. 답례를 하는 사람은 ‘가우마조스!’라고 외치며 잔을 부딪친다고 한다.
조지아인들에게 와인은 아마도 힘겨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의 삶의 희망과 기쁨을 찾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기쁜날에는 26잔의 와인을 마시고, 슬른 날은 18잔을 마시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잔 역시도 염소 뿔로 깎은 ‘깐지’라는 뿔잔을 사용한다.
조지아인들의 건배대신에 외치는 차마다의 뜻은 먼저 신에게 영광을 올리고, 세계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며, 모든 타인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외침이 조지아인들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1) 시그나기와 피로스마니 화가
백만송이 장미 노래는 러시아 민요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지아의 시그나기라는 지역에서 유래한 것을 조지아 시그나기를 방문해서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특히 백만송이 장미의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 피로스마니라는 화가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되었다.
시그나기(Sighnaghi)는 해발 800미터 정도의 언덕에 있는 산간마을로 아주 예쁘고 작은 아름다운 도시였다. 사랑을 하거나 급하게 결홈을 하고 싶은 사람은 "시그나기로 오세요"라는 말이 있듯이 시그나기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회문이 열리는 장소라고 한다.
동네 구석구석 돌아보면 성벽으로 둘러싸여있으며, 시그나기란 피난처나 대피소라는 뜻이다. 시그나기는 1762년 조지아의 왕 헤라클레스 2세가 이곳을 노리는 다게스탄 부족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성곽이 4.5미터나 세워져 있고, 23개의 망루와 7개의 성문이 지어져 있어서 아마도 피난처라고 불리는 듯 싶다.
중세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현재는 피로스마니의 백만송이 슬픔 사랑이야기로 인해 사랑을 찾아 달려오는 사람들이 많은 시그나기이다. 시그나기 중심 광장에서 백만송이 장미를 부르는 버스킹 하시는 남자 가수분의 목소리 가 구슬프다.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 노래가 원래는 피로스마니의 사랑을 배경으로 한 노래이며, 러시아의 알라 푸가쵸바가 부른 백만송이 붉은 장미라는 노래를 심수봉이 번안해서 불려진 노래라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되었다.
백만송이 붉은 장미는 피로스마니의 사랑이야기가 모토가 되었다. 피로스마니 화가가 프랑스에서 공연 온 가수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림팔고, 집팔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피까지 뽑아 팔아서 그녀가 묵었던 호텔 창가 마당에 장미를 쏟아놓고 사랑을 고백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가수는 떠나버렸고, 이런 애절한 이야기가 시가 되고 노래가 되었다고 한다.
피로스마니의 사랑이야기를 들은 여행객 한 분이 ‘피로스마니는 모질이다’ 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는 말도 안되는 모자란 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순순하고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용기있는 남자일 수 있을 것이다.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는 조지아의 1라리의 화폐에 초상화가 그려져 있을 만큼 유명한 국민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피로스마니 화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이 쓰여져있다고 한다.
내 피로 피어난
100만 송이 붉은 장미
이미 당신에게 주었으니
내 무덤 옆에는
단 한송이의
붉은 장미도
놓지 마라
피로스마니의 인생도 묘비명 답게 1918년에 홀로 숨을 거두고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정규미술공부대신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했으며, 수도 트빌리시로 이주한 뒤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돈을 받고 간판을 그려 생계를 유지하였지만 정통파가 아닌 화가에 대해 자국 신문사의 혹평에 피로스마니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사람들을 멀리하며 혼자 살았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 그의 그림은 인정받아 트빌리시 국립박물관, 시그나기 박물관, 비투미 미술관에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헤벨이 조지아를 다시 방문한다고 하면 단 하나 그 이유는 피로스마니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2) 즈바리 수도원
조지아에 온 이튿날 시내를 벗어나 ‘십자가 교회’ 즈바리 수도원을 찾았다. ‘즈바리’는 십자가라는 뜻이다. 기독교를 전해준 성 니노가 4세기 경에 이방인의 신전터에 포도나무 십자가를 꽂고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즈바리 수도원에 내부에 십자가가 많았고, 포도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내부에 있었다.
성 니노가 돌아가신 후에 그녀의 시신을 옮겨 모시려 했다는 즈바리 수도원. 하지만 성니노의 시신이 움직이지 않아서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수도원이 높은 곳에 위치해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하나님과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서 높은 곳에 수도원을 지었을까? 즈바리 수도원은 므츠헤타 시내와 세 갈래로 흐르는 쿠라강의 멋진 전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부니 모자를 꽉 잡도록..
3)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과 인근 마을
장엄한 분위기의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은 조지아의 기독교의 개종을 상징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이라고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독특하고 환상적인 프렛스코 벽화로 장식되어있고, 조지아에서도 최대의 고대 건축물에 속한다. 나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주위를 감싸고 있는 스베티츠호벨리 동네를 돌아보았다.
이탈리아의 시골마을에 온 느낌의 스베티츠호벨리 근처 동네는 아담하고 조용했다. 담벼락마다 예쁘게 핀 무화과나무, 호두나무가 어어우려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에 팔지 않은 와인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조지아가 와인으로 유명하다더니 아이스크림도 와인이 들어갔나보다. 와인아이스크림 한입 떼어먹어보니 끝맛에 포도주와인맛이 배어나온다. 색다르다. 꼭 한번 먹어보시기를 권한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에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를 말해본다. 2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이야기, 어떤 동생이 아픈 언니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릴 때 입었던 옷자락을 구해다 주었는데 만지자마자 죽었다고 한다. 아무리 손에 옷자락을 떼어내고자 하였으나 그렇지 못했고 예수님의 옷자락과 함께 묻은 언니의 묘지에 삼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삼나무를 베어 이곳 교회 기둥으로 썼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스베티츠호벨리 교회를 지은 건축가는 아르수키제라고 하는데 교회지들 때 건축가에겐 쇼레나라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여인이 아름다워서인지 게오르기 왕도 이 여인을 사랑했다고 한다. 아르수키제가 교회를 다 지은후 아르수키제는 왕에게 손이 잘리고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를 건축가는 예상했고, 그는 교회를 지을 때 연장을 든 자신의 초상과 함께 불사쪼를 새겨 교회 바깥문 위에 조각해놓았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의 설에서 나는 아르수키제를 따라서 쇼레나라나는 여인도 따라 죽었을 줄 알았는데 아마도 그 여인은 게오르기 왕의 여인이 되었나보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이 지어진 두 가지의 설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을 마친 후에나 이 야기를 알게되었는데 혹시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을 찾는 이들은 2가지 미션 1) 교회기둥으로 만들어진 삼나무 기둥 2) 아르수키제가 새겨놓은 불사조 조각 을 꼭 찾아보시길 권해본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고 돌아가신 여인의 무덤에서 자란 삼나무로 교회의 기둥이 지어졌고, 성니노에 의해 미리안 3세 왕이 기독교로 개종했을 때 왕은 일곱 개의 기둥을 만들어 교회의 토대로 삼으라고 했다고 한다. 스베티츠호밸리 대성당은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고 한다.
4) 진발리 호숫가와 아라그비 성채
카즈베기 산을 가기 전에 들른 진발리 호숫가와 아라그비 성채를 들렸다. 아라그비 성채는 아라그비 백작이 지은 성채로 백작은 실크로드 길곡의 대상들을 상대로 큰 돈을 벌었고, 아라그비 백작은 그의 딸을 카헤티 왕과 결혼시켜서 그 부자가 되어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라그비 성채에 근엄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살았던 백작, 귀족 가문은 멸망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도사들이 들어와서 아라그비 성채에 수도원을 짓고 와인도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5) 파노라마 벽화탑
카즈베기 산을 가는 도중 산 중턱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1983년 조지아와 러시아가 군사도로 착공기념으로 세운 우정의 벽화탑. 러시아와 조지아의 역사를 타일 벽의 그림으로 구운 벽화인데 벽화그림이 색달랐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