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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 편지: 나의 친구, H에게


친구야 잘 지냈어?

너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 것 같다.  나의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너와 대화하고 편지 쓰면서  그 시기를 견디면서 지낼 수 있었지.  우리가 언제부터 소원해졌는지 모르겠다.  

카톡 프로필을 보면서 근근이 너의 안부를 보고 있다. 어디에든지 네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하다 독서실 뒤에 놀이터 벤치에서 나누었던 수많은 꿈 이야기들이 

이제는 별이 되어서 허공에 맴도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소중하기만 하다. 너는 유학을 꿈꾸며 세계를 돌아다니는 학자가 되기를 바랐으며, 나는 간신히 대학교만 들어갈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랬었는데.  


   H야. 너는 꿈을 위해 참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지.  우리 학교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을 거두어서 나는 너라는 아이는 천재가 아닐까 종종 생각해 곤 했어.


    너는 항상 조용히 묵묵히 다른 아이들이 수다 떠는 쉬는 시간에도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너만의 공부 방법을 체득한 공부 벌레였던 것 같아. 그런 너에 비하면 나라는 아이는 반에서 시끄럽고, 성적도 맨 뒤자리이고, 항상 사람들이 곁에 없으면 불안해하는 수다쟁이였지. 


   성적으만 보면 너와 나는 접점이 없을 것 같았는데  어쩌다 보니 하굣길에 집이 동향이어서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너와 나는 접점이 생기기 시작했지. 그런데 그거 아니. 나는 너와 이야기해 보고 싶어서 집에서 한 정거장 더 늦게 내려서 너와 걸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었던 것 말이야.  


H야, 이제는 중년이 다 된 우리들의 인생의 길의 간격이  참으로 멀어져 버렸구나. 

우리들의  인생길에 밀물의 시기였던 청서년기에 만났던 우리의 인연이 이제는 인생의 썰물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중년의 인생의 썰물은 누구에게는 무섭기도 하고, 힘든 시기이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는 기회의 시기이기도 하지. 누구에게는 지금까지 이룬 것들이 쓸려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누구에게는 썰물이 지나간 후에 남겨진 진주를 품고 있는 조개를 발견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는 것 같아. 


   친구야. 중년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너라면 잘 극복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인생의 썰물의 시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너라는 친구는 어디에든지 낚싯대를 던지면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을 것라고 상상해본다. 

친구야 나는 중년의 전환기에 너가 참으로 그립니다. 

인생에 무엇을 해야할지 무슨 꿈을 꾸어야 할지,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친구 네가 나에게 ‘이런 것을 해보면 어때?’,  ‘이것도 한 면 고민해 봐’,  ‘빅터 프랭클린 박사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 한번 읽어봐’ 등의 조언과 책을 권하면서 희미한 안개 같은 나의 인생에서 등대의 역할을 해주었던 네가 그립니다.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은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 그 시대 유태인들의 참혹한 삶을 낱낱이 기록한 책이다. 

고통받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그 고통을 자신의 과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은 그의 유일하고도 특별한 과업이다. 그리고 그는 고통 속에서조차도 자신이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도 그의 고통을 없애주거나 그의 자리에서 고통을 대시 겪어줄 수 없다. 그 부담을 어떻게 견뎌낼지 선택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기회인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프랭클린 이 사람들에게 주어진 고통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개인적 성장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해준 너의 말에 따라서 나의 청년기의 가정적인 어려움과 삶의 무게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웠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에 네가 있어서 말이다. 

   직업적 전환, 사회적 전환 시기인 중년이라는 인생의 썰물 시기에 이제는 친구 너를 만나서 인생의 조언을 듣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친구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의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싶다. 

   한 대학교수는 자신의 인생의 전환기와 경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고 해. 

“ 나는 거의 3년째 어딘가에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 삶의 여정은 항상 내강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둔 공간 사이의 거리를 좁혀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하며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으려고 한다. 중심을 잃었지만 중심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다. 한쪽 발은 이쪽 배를 디디고 또 다른 발은 저쪽 배를 디디고 서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것이다. ” 


 위의 교수처럼 나라는 인간도 이제는 한쪽 배에서 다른 한쪽 배로 옮기는 법을 배워나가고 적응해야 나가야 할 것 같다.

    H 야! 새벽 모두가 잠은 밤에 우연히 네가 생각나서 쓴 글이 두서없지만 그래도 네가 옆에 있다는 생각을 들면서 이야기하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친구야. 또 편지할게. 잘 내고 있어.  

                                                                                         - 2024.8.15. 광복절 새벽에, 헤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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