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가 왔는데 오늘은 화창한 발칸반도이다.
오늘 방문할 곳은 크로아티아의 부산정도 되는 제2의 도시 스플리트라는 항구도시라고 한다.
눈부신 아드리아해를 품은 항구도시라고 책자에 소개되어 있다.
설렘을 품고 아드리아해 연안 최대의 로마 유적지인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도 방문해 볼 만하다고 한다.
꽃보다 누나 방송을 통해 알려진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방송이 크로아티아의 관광
산업에 한몫을 했구나 싶다.
한국 방송만 나오면 그 장소가 우리 국민들에게는 꼭 가봐야 하는 곳이 되는 이유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라는 분이 나에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왕족도 아니고 귀족도 아닌 하층민 출신의 농민이 어떻게 황제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원로원 의원인 아울리누스의 노예 부부가 낳은 아들로서 달마 티아민이었고, 디오 클레스라는 이름도 디오 클레아라는 도시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젊은 나이에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하고, 장교까지 가는 동안 지원해 준 사람의 부모의 옛 주인 부자들이었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카루스 황제의 은덕과 안니우스 아울리누스의 후언 등으로 38세의 나이에 카루스의 차남인 누메리아누스 황제를 경호하는 기병 지휘관이 되었다.
카루스 황제가 전쟁에서 즉사하고 난 후 누메리아누스가 황제가 되었으나 암살되었으며, 정치적인 무리들로 인하여 정치와 무관한 누메리아누스의 경호대장을 디오클레스 황제로 선정하여 옹립되어 새황제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가 되었다.
로마인들은 하층민인 디오클레티아누스를 황제라기보다는 귀족적인 지도자로 여겼으며 20년간을 통치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자진하여 퇴위하였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어서 만든 장소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라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쇠락하는 로마를 잠시나마 부활시켰고, 로마제국의 오현제 이후 마지막 철학가로서의 황제를 생각하면서 후세 황제에게 선위, 선양을 하고 생전에 은퇴한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고 한다.
최고의 권력에서 자발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평범한 노인으로 생을 마감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처럼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도 그렇게 호화스럽지는 않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에서 들려오는 남성 4중 창의 노래 소리를 따라 발을 옮겼다. 궁전의 천장이 소멸된 장소에서 4분의 중년 남성분들이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중년이신데도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계셨다.
감동을 머금고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에서 엄지발가락을 나도 만지면서 소원을 빌었다. 로마 황제의 신하들이 거주했던 구시가지를 돌아보았는데 꽃보다 누나에서 출연진들이 묵었던 호텔 옆 시계탑도 여기에서는 유명한 명소가 되어있다.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리바 거리는 겨울철인데도 현지인들로 붐비었다.
아드리아해 연안 최대의 항구도시 답게 해안가의 풍경들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중세 시대에 항구도시에 한때 볼 수 있었던 돌바닥, 좁은 골목에서 비린내 나는 생선, 와인, 소금, 먹거리 등이 거래가 왕성했던 거리들과 사람들이 이제는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바뀌어 있다. 인간의 삶은 바뀌고 어떻게 서든지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스플리트 항구도시의 파란 물감을 뿌려놓은 바다를 보면서 쉽게 잡은 권력을 스스로 놓아버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용기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가지고 싶은 욕구들이 넘쳐나는 나이다. 나이에 걸맞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구,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노후를 풍요롭게 살고 싶은 욕구, 좋은 직장을 가진 자녀가 있었으면 하는 욕구 등등 말이다.
논어인지 순자인지 어디에서 들은 말 같은데.. 50대 이후에는 노욕을 버리라는 말을 기억하면서 스플리트 바닷가 벤치에 앉아 다짐해 본다. '노욕을 버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