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벨의 여행: 발칸반도(5)
보스니아 모스타르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어 보스니아로 들어섰다. 국경 넘어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도시 풍경이 대조를 이룬다. 크로아티아는 EU에 가입될 정도의 수준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지만 보스니아는 EU 연방에 가입되지 못한 유럽 국가이다. 아마도 보스니아 내전의 여파일 것이다.

보스니아 내전은 한도 시, 한마을에 어울려 살았던 형제 같은 사람들이 보스니아계와 세르비아계라는 혈통, 서로 다른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총구를 겨누며 내전의 상황을 이루게 된 배경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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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연방으로부터 보스니아 독립을 위해 1992년 2월 29일 보스니아 국민들이 실시한 국민투표 99퍼센트가 보스니아 독립에 찬성하였고 유엔에서도 보스니아 주권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밀리 세비치는 크로아티아와 전쟁을 일이킨 것과 같은 명분으로 보스니아가 독립하면 그 영토 안에 거주하는 세르비아계가 박해를 받게 되리라는 선동을 하여, 말로셰비치는 전쟁을 다시 일으켰다.


세르비아인들은 이웃이었던 보스니아인들을 상대로 극악무도한 ’인종청소‘를 자행했다.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로 서유럽과 미국이 책임을 회피하며 방관하는 사이 제대로 무기 한번 사용해 보지 못하고 보스니아의 수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던 보스니아 내전이다.


특히, 보스니아 내전의 특유의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 곳이 바로 보스니아 남부의 모스타르라는 소도시이다. 모스타르는 이슬람교인 보스니아계 주민들과 카톨릭교도인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이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평화롭게 공존했던 도시였다고 한다.

보스니아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사이의 통혼율도 보스니아 전체에서 가장 높았으며, 네레트바강을 가로지르는 스타리모스트('오래된 다리'라는 뜻)는 1566년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점령했을 당시 건립되었던 다리였다. 이 다리에서는 세 민족들이 서로 일상적인 약속을 하였고, 프로포즈 명소였으며 한 여름에는 다이빙 대회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EB%AA%A8%EC%8A%A4%ED%83%80%EB%A5%B4_%EB%8B%A4%EB%A6%AC_.jpg?type=w773 스타리모스트가 보이는 모스타르 전경

그러나 말로세비치의 허황된 전쟁으로 이 곳은 내전 초기에 함께 세르비아계 맞섰던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 주님들이 반목하여 마을이 불타고 수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신원이 밝혀진 사망자수는 2,501명이었다고 한다.

평화의 상징이었던 아름다운 다리인 스타리모스트는 1993년 11월 9일날에 크로아티아 포병대의 포탄 60발에 파괴되었다. 도시이름 자체가 ’다리의 파수꾼‘이라는 뜻을 가진 모스타르는 도시를 지키지 못한 샘이 되었다. 마을 곳곳에 자리한 공동묘지의 비석들에 새겨진 출생연도는 제각기 달랐지만 사망년도는 대부분 1993년이라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전쟁의 잔상에도 2004년 유네스코 등의 후원으로 스타리모스트가 재건되고 2005년 다리와 그 일대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점차 많은 관광객이 모스타르를 찾고 있다. 내가 모스타르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쯤이어서 문을 연 가게가 많지는 않았다. 옛다리의 르네상스 풍과 그 주변 지역을 포함한 구시가지는 다양한 문화, 민족적, 종교적 배경을 가진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반들반들한 자갈길을 따라늘어선 상점, 갤러리, 튀르키예 기념품 가게, 전망 좋은 카페, 규모는 작지만 건축적으로 훌륭한 모스크 등이 있는 구시가지는 그 자체만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전쟁의 아픔을 보여주듯이 상점에서는 탄피를 이용한 목걸이와 열쇠고리가 기념품으로 팔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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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의 깊은 상처를 남긴 전쟁은 모스타르의 가게 상품이 되어있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들이 남긴 유품을 가지고 물건을 팔아 살아가고 있었다. 스타리 모스트 양 끝에는 영어로 1993년을 잊지 말자는 ’Don't forget 93’이라고 쓰여진 돌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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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지는 스타리 모스트에서 보스니아가 전쟁의 아픔을 이기고 새로운 희망의 빛을 품고 살아가는

모스타르 사람들의 희망의 환한 미소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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