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동행자들이 발칸반도의 하이라이트가 드보르브니크라고들 한다.
드보르브니크를 보기 위해 발칸반도를 선택하신 분들도 있다고 한다. 나도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드보르브니크로 향했다.
드보르브니크 성문을 들어가기 전에 거리의 악사가‘ 왕조의 게임’테마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왕좌의 게임'의 촬영지가 드보르브니크에 있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한때 내 일상의 기쁨이 되었던 미드 ' 왕좌의 게임' 촬영지라면 드보르브니크 여행의 만족도가 5점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16개 조각이 새겨진 오노프리오스 분수 앞에서는 체험학습 온 학생들이 분수에 나오는 물을 마시고 있다. 오노프리오 샘은 1438년 새로운 수도사업 완공기념으로 만든 우물이며 16개의 물구멍은 각기 다른 얼굴 조각의 입속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오노프리오스 분수 옆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14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회랑과 1317년 세워진 약국으로 만든 약국이 유명하다. 카톨릭 유물, 중세에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유럽 최초의 약국이라고 한다. 프란체스코 수도원 벽아래에 돌로 만든 올빼미같은 석상이 있는데 그 위에 올라서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올빼미 석상의 면적이 몇센치 되지않은 돌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들을 쓰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1991년 6월 인종 및 종교갈등으로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 유고정부군 및
세르비아계와 처참한 내전을 치뤘다. 6개월 동안 약 1만명 사망, 수십만이 피난, 드브로브니크의 30%가 파괴되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 1995년 12월 데이튼 협정으로 마침내 크로아티아는 안정을 되찾고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드브로브니크도 성공적으로 보수가 되었으며 두브로브니크는 코스타 델솔(Costa del Sol:태양의 해변)로 명성을 되찾았다고 한다. 드보르브니크 시민들이 전쟁을 기억하기 위한 박물관 앞에 그 당시 힘들었던 사진이 전시되어있었다.
“ 크로아티아 사람들만이 진실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라고 드브로브니크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각자 사람들이 안고 있는 아픔이나 상처는 그 사람만이 진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함부로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성안에는 여전히 드보르브니크 성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성 주민들을 만나 크리아티아 내전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이제는 과거의 아픔을 들추어내는 것도 그들에게는 더욱 끔찍할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으로 망가지고 부서졌던 집들은 모두 복구되었고 현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새롭게 시작하는 드보르브니크이다.
아드리아해를 감상하면서 , 드보르브니크의 시청사앞에는 다양한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함께 지켜낸 낙원에서 사람들이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다.
‘돌이 노래하는 곳’이라는 드브로브니크 말처럼 모든 성이 대리석과 돌로 되어있다. 지금의 삶을 지금 이순간을 즐기고 있는 드브로브니크 시민들의 얼굴만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졌다.
성벽으로 이루어진 도시, 성벽을 걸어보았다. 돌이 만든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직접 말로 느껴보니 세월이 깊이까지 녹여있는 성벽에서의 시간은 가슴이 벅찼다.
두브르보느크 성벽은 13세~16세기 만들어진 난공불락의 성벽 높이 25m, 길이 2Km로 이루어진 드브로브니크 성벽에서 바라본 풍경은 환상 그 자체였다.
성벽을 거니면서 아드리아해 파란 색깔, 석양에 물들어보이는 구시가의 모습, 성벽 밖으로 넘쳐나는 아름다운 풍경은 말보다는 발로 돌을 느껴볼만하였다.
성벽에서 보니 다이빙 장소도 있었는데 겨울이라서 다이빙하는 분들은 아무도 없었다.
성벽투어를 마치고,
성블라에 성당과 스폰자 궁전 앞에 있는 루자 광장이라고 불리는 광장 앞 카페에서 나도 커피한잔을 마시면서 여행의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드브로브니크의 랜드마크인 도시종탑은 1440년에 건축되었고, 매일 정오에 마로와 바로의 쌍둥이 인형이 종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인데 마로와 바로를 정확히는 보지 못했다. 스폰자 궁전은 16세기에 고딕르네상스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성블라이세 성당 앞에는 1418년에 세워진 올란드 동상이 있다. 8세기 사라센족과 싸움에서 도움이 된 영웅 올란드의 전설을 바탕으로 세워진 동상이며 마을의 자유를 되찾아준 동상이라고 한다.
스폰자 궁전 옆건물 렉터 궁 앞에는 루브르브니크를 통치했던 렉터의 직무실 입구에 “ 개인은 잊고 공공을 위해 고민하라” 라는 라틴어가 쓰여져 있었다.
OBLITI IRIVATORV
PVBLICACVRATE
워라벨이 중시되고 있는 현재의 풍조에서 렉터의 직무실에 있는 글귀가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완전히 받아들이수는 없지만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는 현시대에서개인은 잊고 공공을 위해 고민하라는 글귀가 울림이 있다.
왕좌의 게임 촬영장소인 오래된 계단을 찾아나섰다.
오래된 계단은 아쉽게도 공사 중이어서 오래된 계단 옆의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을 볼수는 없었다.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내부에는 바로크 장식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드보르브니크에서 크리아크아아의 전통요리를 맞보고 싶어으나 동행한 여행자들이 수제햄버거와 피자를 먹고 싶다고 해서 수제햄버거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스르지산으로 이동하여 드브로브니크성을 멀리서 보았다. 스르지산에서 바라본 드브로브니크 성이 다른 각도로 보니 색다른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었다.
이처럼 나도 사람을 볼때 때로는 멀리서 다른 각도로 바보는 연습을 해보아야겠다.
내전으로 인한 아픔을 딛고 새롭게 삶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드브로브니크 시민들의 저력이 느껴졌으며,
헤벨에게 드브로브니크성 여행 만족도는 자기점으로 하면 별점 5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