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벨의 일상: 아름다운 동행

두 달 전에 국외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방문국 가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그림을 볼 수 있는 나라, 모차르트의 고향, 비엔나커피가 있는 오스트리아였다.

오스트리아는 10세부터 학생들의 적성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진로를 미리 정하는 교육시스템을 가진다고 한다. 직업학교로 갈지, 대학 진학을 위한 고등학교로 갈지에 정한다고 한다. 너무 이른 결정일 것 같지만 뒤늦게라도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바꿀 수도 있다. 오스트리아 학생은 경쟁적인 성적보다는 자기주도적인 학습, 프로젝트 학습 등으로 서로 토론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사고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오스트리아 연수에서 학교교육과정 및 교수방법보다는 내가 가장 배웠던 점은 다른 팀의 선생님 두 분의 아름다운 동행으로 따뜻한 마음을 배우게 되었다.

두 분의 중년 남자분이 서로 팔짱을 끼고 다니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웃으며 대화를 하는 모습은 타국에서 의도치 않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남자 교사 분들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나도 의아하게 쳐다보았으나 분명히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던 참에 우연히 듣게 된 두 분의 사연은 이러하였다.

남자 선생님 한 분이 약시로 사물을 거의 볼 수 없는 상태이며, 다른 한 분의 선생님이 장애를 가진 선생님을 보조해 주는 지원 역할을 하셨다고 한다.

중년의 남자분이 팔짱을 끼고 다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연수 중에 서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보조자 역할을 하시는 분이 주위 환경, 사람들의 특징, 문화 유적지의 특색 등에 대해 자세하게 약시 선생님에게 설명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일주일 간의 두 분의 아름다운 동행을 보면서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범주화의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 그것은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인간으로서 지닌 가치, 존엄성에서 덜하지는 않으며, 육체적, 지적,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그들의 불편함을 우리의 불편함으로 인식하는 것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일주일간의 아름다운 동행을 하시는 중년의 남성 두 분을 보면서 ‘정상’이라고 우리들이 칭하시는 분은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연수를 받는 것에 불편함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보는 것’의 불편함을 상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두 분을 보고 있잖니 2024년 9월 파리 패럴림픽의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한 김황태 선수를 옆에서 지원한 부인 김진희 님이 떠올랐다. 김황태 선수는 47살의 늦은 나이에 프랑스 파리 알렉상드르 3세 파리 부근에서 열린 패럴림픽 남자 트라이애슬론(장애등급 PTS3)에서 1시간 24분 기록으로 철인 3종 경기의 결승선을 통과했다.

양팔이 없어 수영에서 가장 불리한 선수였지만 부인 김진희 씨의 핸들러 도움과 평생의 지원자인 부인 덕분으로 무사히 결승전을 통과하였다. 11명 참가자 중에 10위를 한 성적보다도 결승전 통과 후 두 부부가 함께 결승전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 눈 주위도 눈물이 고였다.

“ 제 옆에서 제가 다치기 전이나 다친 후나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까지 평생 곁에 있어주는 제 아내 김진희 님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고 그리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라고 김황태 선수의 말에 김진희 부인에 대한 존경이 담겨있는 소감이었다.

김황태 선수가 패럴림픽 나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도 있었겠지만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도움과 지원인 사회적 지원이 김황태 선수의 잃어버린 두 팔의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다.

장애를 극복한 패럴림픽 김황태 선수를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힘들면 힘들다고, 비 오면 비 온다고, 오늘 말고 내일 하면 되지라는 핑계 대면서 밖으로 나가서 운동하지 않는 나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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