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래'가 되고 싶다

오랜 만에 글을 쓴다. 이 글은 나는 복어라는 청소년 권장도서를 읽고 쓴 글이다.

‘나는 복어’라는 책을 덮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김두현 학생 참 잘 컸다.’이다.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인 두현이의 미래가 희망적이고 밝아 보이는 것은 김두현 학생 주위의 조력자들, 할아버지, 할머니, 준수, 재경, 선생님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청소년들의 미래 희망의 불꽃은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빛을 알아봐 주고 빛을 밝힐 수 있는 사회의 조력자들일 것이다.


‘나는 복어’라는 책에서 나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은 재경과 장 귀녀 사장간의 대화였다. 재경이라는 학생이 자신의 오빠가 현장실습에서 다친 후 몸과 마음의 상처로 삶을 포기한 상태에 대한 책임을 귀금속공장 사장인 장귀녀와 나눈 대화로 현장실습 공장의 안전 문제와 무리한 작업 환경으로 인해 현장실습생이 사고를 당한 것에 대한 장귀녀 사장에게 내 짓은 다음과 같은 소리가 가슴 한쪽 편을 먹먹하게 했다.

“ 당신 같은 사람들이 용광로에 사람을 떨어뜨리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들이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사람이 끼여죽게 만드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들이 콜센터 직원을 자살로 내몰리도록 내버려두고, 현장실습생이 배에 붙은 따개비를 따다가 바다에 빠져죽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이 빌어먹을 세상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해도 괜챦은 거라고, 더 많은 시간동안 일할 자유를 허락해주니 얼마나 고맙냐고 떠느는 거야. 뻔뻔하고 파렴치하게 ” 라는 고등학생의 말에 장귀녀라는 어른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 얻다 대고 나한테 훈계질이야? 우리들의 노동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 자본주의 세상에는 돈이 최고고 그게 현실이야” 라고 막받아친다.

재경과 장귀녀 사장의 말다툼 속에서 나의 둘째언니가 떠올랐다. 나의 둘째언니도 작금의 시대의 우상인 자본주의라는 것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고 자신의 꿈도 포기한 채로 살아가는 희생양이었으며 멍자국을 가진 인물로 나에게 기억된다.

나의 둘째언니는 학업을 포기하고 중학교 졸업직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노동운동에 발을 담군댓가로 밥벌이가 없어져버린 둘째언니의 삶이 재경학생과 장귀녀 사장의 대화에 투영되었다.

나의 둘째언니는 삼남 삼녀 형제자매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관심은 첫째 딸에게 모두 쏟다졌고, 특히, 신체적 장애가 있는 둘째 언니는 더욱이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아픈 손가락 자녀였다. 둘째 언니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1시간 이상 걸어가면 위치한 방직공장의 기숙사에 2년째 지내고 있었던 때이다. 아버지가 둘째 언니에게 필요한 생필품, 음식, 옷가지들을 자전거 뒷 안장에 끈으로 묶고 계시면서 “ 막내야! 둘째 언니에게 함께 가보자” 하셨다. 마침 그날은 수업이 없는 날이어서 아버지와 함께 둘째 언니가 일하는 방직공장에 가볼 수 있었다. 언니의 직장을 방문하는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공장 입구에 들어서니 빨간 글씨로 “ 투쟁”“ 노동권을 사수하자!!” 등의 현수막이 걸렸고, 공장의 중앙에는 천막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천막 안에는 붉은 띠를 머리에 매고, 조끼를 입고 있는 언니와 같은 또래의 젊은 여성분들이 앉아있었다.

아주 앳된 여직원 중에 둘째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언니와 언니 동료들은 방직공장의 노동자들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작업 환경과 자신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회사를 상대로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언니의 모습이 새삼 낯설었다. 집에서도 항상 조용하고 부모님의 자녀 중에서 가장 순종적이었던 언니가 전투적인 얼굴 모습과 손을 불끈 쥐고‘임을 향한 행진곡’ 노래에 맞추어 주먹을 흔들고 있었다.

언니의 중학교 친구들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을 때 언니는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언니는 종종 자신이 근무하는 방직공장 환경에 대해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일하는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재봉 소리와 기계 소리로 일하고 나면 귀가 먹먹해지고 잠잘 때도 재봉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하였다. 더욱이 한 여름 더위 속에 공장은 솜과 선풍기 바람이 뒤엉켜서 얼굴에 흐르는 땀과 솜먼지가 범벅이 되어 숨쉬기가 힘들다고 했다. 여름이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고 받은 언니의 적은 월급은 가난한 집의 생활비, 대학생이었던 나의 용돈으로 거의 소진되었다. 조용히 직장 생활만 했던 언니가 갑자기 투쟁적인 모습을 하고 세상의 부조리, 부의 공급의 불공평을 소리 높여 외치는 언니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했다. 천막 농성장에 앉아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드는 언니에게 아버지는 “건강 잘 챙겨라.” 이야기하시고 생필품, 옷가지 그리고 약간의 돈을 언니에게 챙겨주셨다. 노을이 져가는 집으로 오는 길에 아버지는 계속 한숨을 쉬셨고, 그 한숨은 아름답기만 한 노을에 묻혀서 붉은빛을 더욱 밝혔다. 반년 넘게 지속되었던 언니와 동료 근로자들의 회사를 상대로 한 천막농성은 아무런 소득 없이 끝이 났다. 언니는 회사에서 이제 그만 나오라는 회사의 해고통지를 받으며 언니와 동료들도 가진들의 힘과 보이지 않는 사회의 벽 앞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지체 장애가 있는 둘째 언니가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했음에도 노동운동을 했던 이유를 몇 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언니의 답은 이랬다. “다른 동료들이 투쟁하고 있는데 나만 모른 척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기업주가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적게 주려고 하고, 작업 환경을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을 아끼려고 발버둥 치는 폭력만큼이나 더 큰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복어’에서 나타나듯이 우리 이웃들에는 사회적인 약자. 가정적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와 위로를 필요한 타인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눈과 귀를 닫고 ‘나 혼자만 잘 살면 된다.’‘나는 그들을 도울 자격이 없다’라는 자신의 타 당화에 빠져 세상에 아무가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며, 청소년들에게 불합리한 세상의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장 귀녀 사장에게 학교 징계를 받을 줄 알면서도 울부짖은 재경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인식하지 못하는 폭력들을 폭력이라고 깨닫게 해주는 용기가 나를 소름이 끼치게 창피하게 만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것들도 말없이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진리인 것처럼 살고 있는 나에게 ‘나는 복어’의 젊은 친구들이 나를 반성하게 했다.

어렸을 때부터 짓밟힘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

세상의 편견과 부조리에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른 떠는 젊은이들

삶 속에서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이들을 대신해 세상과 싸워주고 위로해

줌으로서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주는 작은 일들에 대해

‘나의 복어’ 책을 읽고 나는 고민해 본다.

청소년인 나의 딸에게도 잔소리보다는 칭찬의 말 한마디,

직장 후배들에게는 질책보다는 격려의 말 한마디


그래서 두현 학생이 ‘복어’라 면 ‘나는 고래’가 돼 보려 한다.

내가 고래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이렇다.

포유류라는 동물들은 서로 경쟁하고 약자를 죽이는 습성이 있는데

오직 고래라는 포유류만이 약한 동료가 있거나 아픈 동료가 있으면

서로의 등을 빌려주고 떠받들어서 아픈 고래를 수면으로 1시간마다 올려주어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살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나도 이제는 고래처럼 경쟁보다는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조금이라고 돌아보는 ‘고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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