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벨의 영화: 성냥공장 소녀 영화..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 제목과 비슷하여 호기심을 자극하여 명절에 보게 된 영화가 '성냥공장 소녀'였다. 영화 분위기가 무겁고 배우들 얼굴도 침울하다. 북유럽 영화는 자주 접하지 않아서 내가 더욱 무겁고 침울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건조하고도 처절한 분위기의 영화다. 보고 난 후에 가슴에 고구마를 몇 개 먹은 느낌의 영화였지만 잘 만든 영화임에 틀림없다.

핀란드의 천재 영화감독인 아키 키우리스마키 작품이었고. 그의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배우 카티 오우티넨이 주연을 맡았다.


movie_image.jpg?type=w640_2 성냥공장 소녀, 드라마, 코미디, 2001, 아키 카우리스마키

카티 오우티넨 배우는 예쁘지만 않지만 묘한 매력을 풍기며,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을 가진 배우였다. 주인공 아리스는 빨간 성냥 알 만큼이나 언제든지 청춘의 불꽃을 불태울 준비가 되어있는 꿈 많은 소녀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외모가 볼품없어서 인지 관심이 없다.

그녀의 일상 역시 우울하다. 무능력하고 무표정한 얼굴의 엄마와 계부의 생활비를 위해 매일같이 성냥공장에서 기계처럼 일하고 퇴근하면 집안일을 해야만 하는 단조로운 생활을 한다. 그녀의 유일한 꿈은 저녁이면 댄스 클럽에 나가서 멋진 왕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온기가 느껴지고 사랑을 느끼고 싶은 아리스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댄스 클럽에 가지만 붙박이 의자처럼 앉아만 있다가만 온다. 우울한 얼굴과 후줄근한 옷차림의 그녀에게 어떤 남성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

무료한 일상에서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 속 장면이 뭔지를 모르지만 눈물을 흘리고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고 나오는 아리스의 모습에서 마음이 여린 젊은 여성을 본다.

그러던 어느 날 화사한 빨간색 원피스를 구입하여 사 입고 간 댄 스크럽에서 그녀가 가슴에 기대어 춤출 수 있는 남성을 만났고, 아리스에게 꿈같은 하룻밤은 남성에게는 유희로 끝났지만 아리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에게 찾아가서 당신이 나를 보고 싶어 할 것 같다고 말한다. 남성은 아이리스에게 미안해서인지 다음날 집에 찾아가겠다고 한다. 그다음 날 어머니와 계부는 한껏 옷을 차려입고 있다. 소파에 앉아있는 남성은 집안을 한번 휙 둘러보더니 가난하고 빈민가에 가까운 집안의 소품들을 보면서 실망의 빛을 내비친다. ‘자신은 여기에 맞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리스는 한껏 치장하고 남성과 함께 식당에 간다. 식당에서 남성은 아리스에게 자신과 아리스는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헤어지자고 한다. 남성과 헤어진 후에 시간이 흐른 뒤, 아리스는 임신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된다. 딸이면 이쁜 원피스를 입히고 사내아이면 하키를 시킬 준비를 하자면서 아기를 가졌다는 편지를 정성스럽게 남성에게 쓴다. 남성에게 받은 답장은 “ 애새끼를 지워라”라는 편지글과 돈이 들어있는 봉투였다. 충격을 받은 아리스는 정신없이 집 밖으로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병원에 입원한 아리스를 찾아온 계부는 아리스가 자신들에게 실망을 주었으며 새로운 가정을 찾아보라고 하면서 집에서 내쫓는다.

오빠에게 신세를 지게 되는 아리스는 한 번도 피우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자신이 만든 성냥에 불을 지피면서 담담히 담배를 피운다. 약국에 가서 쥐약을 달라면서 약사에게“ 쥐약은 어디에 쓰냐고?” 질문한다. 쥐잡는데 쓴다는 말에 안도의 얼굴 표정을 한다. 집에 가서 쥐약에 물을 정성스럽게 탄다.

자신과 자신의 아이기를 버린 남성에게 찾아가 헤어져 주겠다고 하며 남성이 마실 음료에 쥐약을 딴다. 어머니와 계부에게 만찬의 준비하듯이 닭 다리와 푸짐한 요리를 대접하고, 그들이 먹는 물에 아리스는 쥐약을 탄다. 그다음 장면에서 아리스는 태연하게 성냥공장에 출근한다. 경찰이 찾아왔을 때도 담담히 그들을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으로 영화를 끝난다.


2001년도 작품인 성냥공장 소녀 영화 장르가 코미디로 나와있다. 세상은 성냥공장처럼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세상에 사는 것 자체가 코미디인가? 아리스는 인간으로 성냥처럼 자신을 사랑으로 태우고 싶어하고 자유를 향한 욕망을 갈구한다. 하지만 아리스를 짓밟는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고 하듯이 처참한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자신이 만든 성냥 한 개비의 불꽃을 태우지 못하고 비에 젖듯이 살아온 아리스의 삶을 영화 속에서 보면서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파진다.


보는 관객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충격적이 장면은 아리스가 쥐약을 물에 타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가 임신한 사실을 직장동료에게 말하자 직장동료는 담배 피우면서 "그래" 하면서 자리를 떠버린다.

누군가에게 큰 고민거리가 타인의 입장에서는 듣고 싶지 않고 하찮은 이야기 거리일 수 있음을 표현하며 인간의 여러가지 면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 처럼 사람관계는 허무해 보인다

인생의 잔혹한 삶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희망고문 혹은 그들에게 잔인한 일 일까? 아키 키우리스마키 감독은 성냥공장 소녀의 삶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받지 못하는 소녀의 삶의 몸부림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고민에 빠져본다. 허장성세하지 말자. 말을 줄이자. !!! 마음의 상처가 있는 이들을 돌아보자. 오늘 새벽에 다시 한번 러디어드 키플링의 '만약에'라는 시를 읽어본다.


만일 네가 모든 걸 잃었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너 자신이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그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면 미움을 받더라도 그 마음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체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 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서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