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

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의 뜻은 교묘하고 위장된 거짓은 투박하지만 우직하며 성실한 진정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노나라 대부 맹손이 사냥을 하고 있었을 때, 새끼 사슴을 잡아 진서파를 시켜 새끼사슴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진서파는 어미 사슴이 울면서 수레를 따라오는 것을 보고 가련하게 여겨 새끼 사슴을 놔주었다. 맹손이 돌아와서 새끼 사슴을 찾자 진서파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차마 견딜 수 없어서 사슴의 어미에게 주었습니다." 맹손은 크게 노하며 진서파를 추방했다가 3개월 후에 다시 불러 들여 자기 자식의 스승이 되게 했다. 마부가 맹손에게 물었다. 지난번에는 죄를 내리시더니, 오늘은 불러서 자식의 스승으로 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맹손이 말했다. 어린 사슴이 가련해 못 견딜 정도이니 사람 자식은 얼마나 귀하게 여기겠는가? 내 자식을 맡기기에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옛말에 훌륭한 거짓말은 서투른 진정에 미치지 못한다는 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의 유래가 되었다.


학교에서 15년간 근무하다가 직장을 옮기고 나서 나를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거짓되고 진실되지 못하는 칭찬들이었다. 상사동료와 동일 직급의 동료들 앞에서는 영혼 빼줄 것 같은 칭찬을 하다가도 칭찬했던 상사 동료나 직급 동료가 사라지면 혹독할 정도로 험담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것이 참으로 나에게는 고민이었다. 친구에게 학교에서는 많이 만나보지 못했던 험담 즐기는 사람들을 직장을 옮기고 나니 만나고 있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고 고민을 말했다. 친구는 나에게 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 이야기를 해주면서 사람들 말을 모두 믿지 말고 너에게 투박하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더욱 신뢰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사람들 앞에서 영혼까지 쏙 빼놓을 정도로 칭찬하는 사람들의 말을 상사동료들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정말 상사동료들은 아부하는 말을 모두 믿을까 하고 의심해 보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웃으며 아첨하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더욱 대접받고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사람들마다 다양한 가면들을 쓰고 살기 때문에 아첨하고 험담하면서도 앞에서는 누군가를 칭찬하는 사람들을 욕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참을 수 없고 무서운 것은 나답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나 자신의 변하는 모습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나의 자아를 발견할 때이다.


야무구치 슈의 '철학은 삶의 무기가 어떻게 되는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의 인격은 본래 짧은 시간에 크게 변화할 수 없지만 인격 가운데서 외부와 접촉하는 외적 인격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하였고 페르소나는 원래 고전극에서 배우가 사용하는 가면을 뜻하는데 융은 페르소나를 한 사람의 인간이 어떠한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는가에 관해 개인과 사회적 집합체 사이에서 맺어지는 일종의 타협이라고 정의하였다.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면이 페르소나라는 것이다. ”

사람의 인격은 다면적이어서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 혹은 인물에 따라 다양한 페르소나를 바꿔 쓰면서 인격의 균형을 유지해 살아간다는 것이다.


융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들이 다소 마음 편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속된 사회, 회사, 학교, 가정, 친구관계 또는 동호회에 따라 일종의 다중인격도 필요하다는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전적으로 순응할 수는 없다. 만나는 사람, 조직 구성체, 동아리, 가정 등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 속에서 그때마다 나에게 편한 가면을 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융의 주장을 완전히 반박하고 싶지도 않고 온전히 따르고 싶지도 않다. 결론적으로 앞과 뒤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칭찬하면서 뒤에서는 뒷담화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가면이 살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알고 있다. 진심 없고 영혼이 없는 칭찬이나 말들을 하는 사람들 옆에는 진실된 사람들이 있을까? 나는 상사 동료나 같은 직급 동료들에게 교언영색((巧言令色) 하는 사람은 못되어도 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의 유래가 된 진서파같은 인물이 되고 싶다.(2018년에 써놓았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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