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이라 부른 것들 ' 중에서(정재찬 저)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 복효근 시인 -
어둠이 한기처럼 스며들고
배 속에 붕어 새끼 두어 마리 요동을 칠 때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먼저 와 기다리던 선재가
내가 먼 책가방 지퍼가 열렸다며 닫아 주었다.
아무도 없는 집 썰렁한 내 방까지
붕어빵 냄새가 따라왔다.
학교에서 받은 우유 꺼내려 가방을 여는데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종이봉투에
붕어가 다섯 마리
내 열여섯 세상에
가장 따뜻했던 저녁
출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정재찬 저)
복효근 시인의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의 시에서 마음 따뜻한 선재라는 친구의 배려와 우정의 깊이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켜 시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썼겠구나 싶다.
헤벨에게도 선재와 같은 친구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의 시를 읽으면서 삶의 희망을 준 친구가 생각났다.
청소년 시절, 나는 선생님들이 정한 기준의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1, 2학년 인생의 꿈을 생각해 볼 나이에 나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만화를 보거나 미팅을 나가거나, 팝송 가수인 스모키, 밥 딜런 등의 노래가사를 외우고 또 외웠다. 팝송 노래 가사가 학교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수학 공식이나 수업 내용보다 훨씬 나에게 친근했고 도움이 되었다. 학교 공부에 충실하지 않으니 성적은 하위권을 유지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랄 총량의 법칙’의 말처럼 나의 인생에서 지랄할 시간의 3분의 2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한 것 같다. 희망 없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을 맞이했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함께 놀던 무리 지어 놀던 친구 한 명이 변해서 왔다. 쉬는 시간에도 눈도 안 돌리고 공부만 하였다. 나와 비슷한 하위권 성적에 있던 친구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인생 처음으로 공부를 하지 않던 내가 불안감이라는 것을 느꼈다. 친구의 3학년 4월 모의고사 성적이 너무 높게 나와서 담임선생님이 그 친구에게 ‘유레카’라는 말을 연신하셨다.
나도 너무 놀라서 그 친구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 왜 그렇게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 “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조용히 눈가에 눈물이 맺혀서 친구가 공부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시작 전 친구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며, 큰 딸이었던 친구는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가정환경의 변화를 맞이했다. 더욱이 가장으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그 이후부터 밤새우면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의 친구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인지, 아버지의 부재로 가장의 삶무게를 짊어지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무섭게, 미치게 공부했다. 갑자기 함께 놀던 친구가 공부하기 시작하니 나에게 선한 불안감이 찾아왔다. ' 친한 친구는 대학교 들어가는데 나는 대학교도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그런 불안감의 날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친구가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 함께 공부하자고 했다. 그 후, 나는 덩달아서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던 시립도서관이라는 곳을 고3 봄부터 친구와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는 ‘공부의 신’이 된 것 같았다. 나에게 산수부터 시작하여 미적분까지 알려주었고, 명사, 형용사부터 T0부정사를 거쳐 IF 가정법까지 세심하게 가르쳐주었다.
시립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함께 걷는 발걸음 소리와 찬란하게 빛나는 별빛을 받으며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의 꿈은 법조인이 되어 힘없고 돈 없어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들을 변호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우선 대학교에 들어가서 멋진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공부의 신이었던 친구는 장학금을 받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했으며, 하위권 성적을 달리던 나도 지방대학교 상위권에 속하는 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졸업할 때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나의 고등학교 마지막 성적을 보시고 ‘유레카’를 외치셨다.
돌이켜보면 꽃이 피어서 봄이 온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누군가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내 인생의 봄이 온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무지한 나를 인내하며 가르쳐주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 준 나의 친구는 '인생의 행복티켓'이었다.
밥 딜런의 노래 가사처럼 자기가 뜻한 바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군든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인생을 기대해 보면서 삶을 살아봐야 한다. 삶의 인생행로는 바뀔 수 도 있다. 아낌없이 공부를 가르쳐준 고 3 친구와의 만남은 나에게 어두운 산골을 지나 신작로를 만나게 해 주었고, 인생에서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도 나를 겸허(謙虛)하게 만들어 끊임없이 성장하고 성숙시켜 자갈밭에서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배고플 친구를 위해 조용히 가방에 붕어빵을 넣어준 선재 같은 친구, 이웃 및 직장 동료가 우리 인생길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나라는 사람이 선재 같은 인물이 되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며 가치로울 수 있다. 비 오는 토요일 오후, 문득 찬란한 별빛을 보면 함께 꿈에 대해 이야기했던 친구가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