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벨의 단상, 단 한 사람의 믿음과
따뜻한 말 한마디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정여울 저) 중에서-

" 점점 비대해지는 조직과 기업, 국가와 자본의 힘 앞에서 사람들은 '나 하나의 힘'은 너무 미약하다고 느낄 수 있다. 개인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사람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일상은 한 사람의 기분, 한 사람의 열정, 한 사람의 실천 앞에서 크게 좌지우지된다. 엄마가 행복하면 온 집안이 화목해지는 것처럼, 동료 한 사람의 감정 상태가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출처: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정여울 저)

정여울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의 일상은 한 사람의 기분, 한 사람의 열정, 한 사람의 실천 앞에서 크게 좌지우지한다는 말에 나는 한 마디 더하고 싶다. 한 사람의 믿음, 한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교직계에 발 들인 지가 24년째이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우스갯소리로 “너같이 고등학교 때 공부 지지리도 못했던 애가 선생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불쌍하다. ”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하곤 한다. 교육계로 들어올 생각은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경영을 전공했던 나의 이력을 보면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나의 삶의 로드맵에 없었던 교직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현재의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교육행정기관에 근무하면서 내가 가장 난감할 때가 학부모로부터 자녀의 담임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말하면서 교사를 바꿔달라는 전화를 받을 때이다. 학부모의 말만 듣고 교사를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터이며, 교사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전화를 받으면 교사든, 학생이든, 학부모든, 같은 학교 동료든, 학교 관리자든 서로의 신뢰를 쌓은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말 한마디의 격려, 칭찬, 관심을 가져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상황에서 서로의 조율점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격려, 칭찬과 관심이며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관찰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하고 싶다.


4차 산업혁명이니, AI 교육이니, Chat GPT이니, 디지털 교육이라는 급변하게 변화는 교육의 프레임 안에서 개인적으로 교사의 자질은 학생에 대한 진심 어린 관찰과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학생에 대한 믿음이, 한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학생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벌써 30년이 지난 나의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따뜻한 관심과 말 한마디로 나를 격려해 주셨던 선생님이 생각난다. 햇살이 유난히 좋은 봄이었다. 영어 시간이었고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우리 반 영어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얼굴도 이쁘고 성격도 좋고 온화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에서는 ‘잘난 부모 밑에서 평온한 가정에서 자라고 재정적인 뒷바라지도 받아서 좋은 대학도 나오고 교사라는 좋은 직업도 얻으니 성격이 저렇게 좋을 수밖에’하는 나름대로 영어 선생님에 대한 가상의 성장 배경을 만들면서 선생님과 내가 자란 희뿌옇게 보이는 나의 미래와 비교하면서 무한한 열등감에 쌓여서 선생님을 판단했던 것 같다.


영어 수업 시간은 나에게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유는 잠이 잘 올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잠자는 나를 악착같이 깨우시지 않으셨다. 창문에 비치는 봄 햇살을 맞으며 책상에 엎어져 있을 때 영어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그런데 영어 선생님이 갑자기 칠판에 ‘innocent'라는 단어를 쓰시면서 모든 학생들 앞에서 '헤벨아. 선생님은 너를 볼 때마다 이 영어 단어가 생각이 나네. 너의 순수한 매력에 빠질 때가 많단다. 선생님은 헤벨의 잠재력을 믿어. 네가 하는 모든 일이 잘될 거야!' 하시면서 교실 앞문으로 나가셨다.

모든 반 아이들의 나를 부럽다는 시선을 쳐다보았지만 나는 도대체 모르는 영어 단어를 칠판에 쓰시는 선생님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도대체 'innocent'라는 단어의 뜻이 뭐야’ 내가 모르는 단어를 왜 칠판에 쓰고 난리야‘라고 혼자 투덜대면서 반장한테 달려가서 “반장아, 저 단어가 무슨 뜻이냐?”물어보았다. innocent 단어는 형용사로 순결한, 청순한, 천진난만한, 무지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그때 반장이 불러주었던 여러 가지 단어의 의미 중에서 오로지 ‘무지한’이라는 단어만 내 머리에 꽂혔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그런 단어를 쓰신 의도가 내가 무지하고 모자라니 공부를 해보란 말인가?라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시간에 지남에 따라 정말 내게 잠재력이 있어 보이기는 한 것일까? 선생님이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해, 내 미래에 대해, 나의 학교 성적과 등수로 대학은 갈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 선생님이 나에게 던져주었던 단어의 의미보다는 성적도 뒷자리이고 집안 환경도 썩 좋지 않으며, 꿈도 없이 수업 시간에 잠만 자는 나를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주고 내가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영어 선생님의 “너는 잠재력이 있어”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나에 대한 관심은 공부의 신이 된 친구와 함께 시립도서관을 다니면서 무지함의 탈출과 나에게 잠재력이 있는지를 스스로 검증하기 위해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영어선생님만이 알아봐 주었던 나의 잠재력은 빛을 발하였고, 지방대학의 장학생으로 경영계통의 학과에 합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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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경영이 아닌 교육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교육에서 교육공동체가 서로에 대한 ‘관찰’, ‘관심’, ‘따뜻한 말 한마디’, ‘서로에 대한 배려’가 기본이 되면 현재 교육계에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학교폭력, 아동학대, 청소년 자살 등의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준에서 벗어나 소위 문제 청소년으로 규정지어 놓은 청소년들은 자신을 좀 바라봐 주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나도 힘들다는 의미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세상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나 편견의 방어기제로 위악을 행하고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관심, 믿음, 지지 일 것이다. “넌 잠재력이 있는 아이야”, “넌 잘될 거야” 하는 진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 일 수도 있다. 그들 또한 고등학교 시절 영어 시간에 인기 있는 선생님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엎드려 자는 척했던 나처럼 말이다.

오늘 누군가에게 관심이 있는 격려의 말 한마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보면 어떨까 싶다. (2021년 전국독후감대회에 제출한 작품 수정하여 써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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