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는 없다'에 대한 헤벨의 단상 -
고등학교 3학년 교실 급훈에‘ 세상에 공짜는 없다. ’라고 쓰여 있던 교실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노력하라는 말을 에둘러서 써놓은 급훈이리라. 더욱이 공짜로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지니 공짜 좋아하지 말라는 우스갯소리도 생긴 것을 보면 보편적인 인식으로 우리들 의식 속에 자리 잡은 추상명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에 세뇌당한 우리는 성공하려면 노력을 해야 하고, 자기 계발을 끊임없이 해야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교육받아왔고 생각한다. 유년 시절부터 경쟁에서 이기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좋은 학교, 더 나은 직장, 인생의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다고 교육을 받아왔다.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에게 공짜 인생은 절대 용납되지 못하고 노력하지 않은 인생은 실패한 인생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노력하면 성공한다. ’‘현재의 고난은 미래의 성공'이다. ’‘미래의 꽃길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은 잠시 미뤄둬도 된다. ’ 같은 희망으로 점철된 말이나 글들로 인해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면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자신들의 꿈이 아닌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행복 기준을 쫓아가는 이들이 노량진 학원에서, 고등학교 수능 교실에서, 꺼지지 않은 취업준비생들의 방에서 젊은 청춘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이야기를 당연한 진리처럼 듣고 자란 우리들의 삶은 목표지향적이며 투쟁적으로 되어간다. 우리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실패와 실수는 쉽게 용납되지 않는다. 실패와 실수는 경쟁에서 뒤처지게 만들고 미래와 성공을 얻기 위해 현재의 즐거움은 반납해도 괜찮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한다.
나라는 인간도 ‘공짜는 없다.’라는 유사한 말들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세워놓은 성공, 명예, 부를 쫓으며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달려왔다. 나에게도 실패와 실수는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미래의 성공이라는 유토피아적인 언어에 현혹되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안온함과 즐거움 대신 노력을 위한 고통은 감수하는 것이 당연히 여겨왔다. 사람들이 세워놓은 성공, 직위, 명예 등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반납하고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나오는 ‘호랑 애벌레’가 되어 다른 애벌레들이 만들어놓은 기둥을 오르며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발밑에 깔리지 않기 위해 다른 애벌레를 밟고 쉼 없이 달려왔다.
끝도 없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애벌레들로 만든 기둥을 계속 오르다 보니 삶이 너무 피곤하다. 팍팍하다.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느껴야 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나 상황이 되어도 어떻게 즐기고 행복을 느끼는 줄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를 찾고 즐거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고행으로 변하고 직장의 친목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직장배 탁구대회에서도 나는 악착같이 경쟁에서 이기려고만 한다.
최근에 나에게 자주 질문하곤 한다 ‘왜 이렇게 경쟁하고 달려가야만 하는가?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이 나에게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이 규정해 놓은 성공, 부의 기준, 행복의 기준을 위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 즐거운 것을 반납하고 달려온 나는 회의감에 휩싸이곤 한다.
이리하여, 나는 외치고 싶다.
'공짜로 무엇인가 얻는 것이 뭐가 그렇게 나쁜가?'
' 나누면서 서로 공짜로 받아서 살아가는 삶도 어떤가?'
'공짜 인생으로 노력은 조금만 하고 삶을 즐겨보는 것은 어떤가?'
'실패와 실수를 거침없이 하면서 공짜로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는 삶은 어떤가?'
'인생의 힘겨운 무게, 경쟁이라는 힘겨운 단어를 짊어지고 있는 어깨에 힘을 빼고 실수와 실패를 하면서 삶을 즐기는 것은 어떤가? '하고 말이다.
공짜라고 하면 감나무 밑에서 감이 저절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공짜 인생은 ’ 세상 사람들이 세워놓은 기준에 나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 주위 사람, 자연을 들여다보면서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지는 인생“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림에 여백이 중요하듯이 우리 인생에도 여유와 목적 없는 공짜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공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충분조건은 있어야 한다. 우선 내가 너무 지나치게 누군가에게 받아만 먹는 빈곤이나 궁핍에 내몰리지 말아야 한다. 매슬로우 욕구단계인 생리적 요구인 생존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생존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받은 인생의 공짜의 어느 부분은 분명하게 다른 누군가의 희생과 배려로 얻은 것이기에 우리는 받은 것들을 타자에게 봉사라는 말로, 자선이라는 말로, 공동분배라는 방법으로 베풀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짜는 없다는 말로 강요된 노력 안에 실패와 실수가 용납되어야 한다. 실패와 실수가 허용되지 않은 노력은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공짜는 없다’고 말하는 강요된 노력 뒤에 실패와 실수를 하는 것을 힐책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래선 안 된다. 실패와 실수를 하면 어떠니까? 실수의 경험을 겪다 보면 사람마다 ‘아하’ 법칙이 생긴다. 아하!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실패하지 않는다. 아하! 이런 상황에서의 인간관계는 이렇게 하는구나 등의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고 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로 노력만을 강요하고 실패와 실수가 용납되지 않으며 자기 계발과 세상 사람들이 정해놓은 기준과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나를 포함한 타자들에게 너무 타인의 이목에 세상의 기준에 목마르게 살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 인생에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온 우리는 한 번쯤은 공짜도 바라보고, 요행도 바라보고, 노력도 해보고, 실패와 실수도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인생의 지도를 그려가야 한다. 누군가 정해놓은 삶의 기준과 규정해 놓은 삶의 방향이 아닌 나만의 방황의 시간, 즐거움의 시간, 실패 후 갖게 되는 용기의 시간의 터널을 지나 자신만의 인생의 지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 미래의 그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을 위해 현재의 나를 버리고, 현재의 즐거움을 반납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