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벨의단상: 세상에 정답은 없다 -
헤벨의 ‘없다’ 시리즈 두번째는 ‘세상에 정답은 없다. 무수한 해답만 있을 뿐' 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몇 해 전에 생리학적 젊은이들의 대다수가 선호하는 직장이 공무원이며, 공무원이라는 꿈을 위해 노량진으로 향한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나의 마음이 답답했다. 이유는 교육계에 몸담고 있던 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꿈을 가지라고 목소리 높여서 가르쳤다. 그런데 현실에서 젊은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갈만한 사회적 인식과 경제적 구조가 그들의 꿈을 찾을 수 있게 만들지 못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최근 나 자신을 깊이 있게 돌아볼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나의 영혼은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고, 감정은 메말라 감을 느낀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옳다고 믿어왔던 사회적 신념, 가치, 취향 및 원칙들이 정답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정도 살면 세상의 기준에 잘 살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이 정도는 소유하고 있어야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준다. '같은 나만의 신념과 기준이 흔들린다. 그러다보니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답은 없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하고 있다.
다양성이 침해되어서 일률적으로 중고등학교 성적은 상위 몇% 이상은 되어야하며 서울 수도권대학 정도는 들어가야하며, 연봉은 얼마정도 수준 이상이 되는 직장을 가져야하고, 결혼하고 자녀는 가져야하는 보편화된 가정을 꾸리고, 집은 몇 평이상 정도 살아야지 그래도 세상에서 인정받는 정답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그런 신념 안에서 살았다. 겉으로 드러내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세상적인 기준에서 사회적 기준에서 못 미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표현은 안했지만 암묵적으로 무시 한적이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왜 저렇게 살까? ‘ ’무슨 이유에서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심연한 인생의 어려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 라면서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는 그래도 그들보다 우위에 있을 수도 있다는 정말 말도 안되는 오만함의 극치를 달린 적이 있었다.
이 시점에서 나의 오만함의 극치에 대한 반성과 우리는 함부로 나의 기준, 세상 기준에 비추어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할 수도 평가 내려서도 안되며, ’세상에 정답은 없고, 무수한 해답이 있다‘는 말을 위해 나의 가정사에 대해, 나의 어머니의 삶을 소개하고 싶다.
나의 어머니는 두명이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 부모님이 사셨던 1950~1960년대만 해도 가문의 대를 이어야한다는 뼈대 깊은 가문들은 본처 외에 첩을 가진 집안이 있었으며, 우리집은 뼈대있는 가문은 아니었지만 본처인 큰 어머니가 자녀를 낳지 못하여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의 우리 어머니를 데려오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다행히 3남 3녀의 자녀를 낳았고, 본처가 하지 못한 가족의 숙원사업을 성취했지만 본처는 안되었다.
유년기에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머니와 큰어머니의 모습은 이러했다. 나의 어머니는 매일 부엌에서 밥하고 집안 일하고 빨래하시며 벽돌공장 인부들 밥해주는 모습이었다. 반면에 나의 큰 어머니는 아리따운 한복을 입으시고, 예쁘게 화장을 하시고 친구들과 놀러다니셨다.
청소년기에 접어둔 나는 우리 집안이 특별한 가정이며, 왜 이런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는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그 시기에 나는 나의 어머니에게 모진 말을 내뱉곤 했다. ”엄마는 왜 이렇게 살아, 그냥 엄마 인생 살라고 지금이라도 집 나가서 새로운 인생 살으라고. 엄마처럼 사는 인생 구질구질하고 창피하다고“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집을 나가지도 않으셨고, 큰 어머니의 무시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자식들을 위해, 힘든 일들과 시간을 인내하시면서 자식들을 키우셨다.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내 말을 듣고 집을 나가셨다면 현재의 나도 존재했었을까 의구심이 든다.
나의 어머니가 노환으로 인해 나와 함께 계실 날들이 얼마 남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면서 시골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에게 “엄마!, 엄마 고생시키고 구박하고 무시한 큰 어머니 밉지도 않았어. 나 같으면 혼자 나가서 다른 남자 만나서 새 살림 차리고 떵떵거리면서 잘살았을 거야. 엄마는 왜 자신의 인생도 없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살았어?” 라는 질문에 어머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 큰 엄마도 불쌍한 여자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자식낳고 자식 자랑하며 사는데 아이도 못가진다고 세상 사람들이 뒤에서 얼마나 험담했겠니. 그런 이야기 들은 너의 큰 엄마는 스트레스를 당연히 나에게 풀었겠지. 나는 너희 큰 엄마 이해한다. 세상 사람들이 큰 엄마가 얼굴도 이쁘고 본처로 사니 잘사는 것처럼 보여도 내가 보기에 안쓰러웠다. 그리고 동네사람들이나 세상사람들이 나를 뭐라 부르고 업신여겨도 나는 내 인생 만족했다. 너희들 커가는 과정보면서 이쁜 짓 하는 것 보면서, 결혼하는 모습들 보면서 나는 그래도 인생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너희들 먹는 모습 보고 커가는 과정을 보면서 살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 ”
세상사람들 기준으로 보면 나의 어머니의 처지는 참으로 불행한 여자 인생같이 보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면 나의 어머니는 행복하셨다. ‘나는 행복했다.’라는 나의 어머니의 말은 나로 하여금 어머니의 삶을 평가하고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 인생에서 한참 뒤떨어진 불행한 삶이라고 단정지어버린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세상은 자꾸 ‘정답사회’, ‘획일적인 사회’ ‘이 정도는 갖추어야 성공하고 잘사는 거야’라면서 어떤 기준에 모두를 맞추어가기를 바란다. 대다수의 기준에 맞추지 못한 사람은 심지어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고 그러한 말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떤 작가가 한국인은 늘 한 가지 길이 정답인 것처럼 달려가는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들었던 예시인 한때 은퇴한 중년들이 모두 치킨집을 열었다는 우스갯소리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며, 한국사회는 다양성이 결여된 정답사회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다.
정답사회로 되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나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고 다양성을 추구하라는 말을 말하기기 조십스럽다. 하지만 니체의 말을 빌려서 말하고 싶다. “ 삶은 오류투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오류들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때 우리는 성장한다”고 말이다.
인생에서 정답 인생은 없다. 무수한 해답을 찾아갈 뿐이다. 하지만 무수한 해답을 찾아가려고 하는 누군가와 우리는 끊임없이 조우하면서 그들을 바라봐주고, 따뜻함과 위로를 전해주기도 하면서 함께 성장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