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jin Jeung Jun 22. 2015

감자 먹기 좋은 날...하지

맛있는 감자에 대한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

최근 허니버터칩 열풍으로 인해 감자 가격이 급등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인류의 구황작물이었던 감자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갑작스럽게 몸값이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건강에도 좋지 않고 영양 효율도 떨어지는 감자칩만이 감자의 전부는 아니다. 남미에서 태어난 감자는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 전 세계 사람들의 식생활을 크게 바꿔 놓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유럽에 수입된 감자는 처음엔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했다. 품종 개량을 거친 요즘 감자에 비해서는 맛이 없고 유럽인들의 입맛에도 안 맞았던 탓이다. 덩이뿌리가 아닌 줄기나 잎을 먹고 탈이 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유럽의 왕족들은 감자가 엄청나게 귀한 식물인 양 훔쳐가지 말라는 표지판을 붙이는 등 역정보를 흘린다. 궁금해진 농민들은 감자를 몰래 캐 가기 시작했고, 조금씩 맛을 들이면서 오늘날처럼 다양한 감자 요리가 생겨나게 된다.


다만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해온 아시아인들에게는 감자가 상대적으로 빨리 식탁에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서 감자는 북저, 감저, 혹은 마령서(말방울)로 불렸고 일본인들은 쌩뚱맞게도 '자카르타에서 온 이모(마를 비롯한 서류 식물의 통칭)'라는 뜻으로 '쟈가이모'라는 명칭을 붙였다. 실제로 일본의 감자가 인도네시아에서 전래된 것은 맞는 듯하다...그래도 프랑스인들이 붙인 '폼 드 떼르(땅의 사과)'라는 명칭에 비하면 양반이다. 감자의 어디가 사과를 연상시킨다는 건지, 작명센스 하고는...(참고로 중국어로 감자는 '투더우(土豆)' 즉 땅콩이란 뜻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감자 요리로는 감자 수제비인 옹심이, 술안주로 인기 있는 감자전 등이 있다. 감자전에 간혹 밀가루나 부침가루를 넣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보다는 고운 강판에 갈아서 건더기와 전분이 섞인 물을 합쳐 100% 감자로만 부치는 게 맛있다. 얇게 썬 청양고추는 장식으로 올려도 좋으며 찍어먹는 간장에 넣기도 한다. 약간 도톰하게 부치는 편이 겉은 바삭, 속은 쫀득하니 맛있다. 그밖에 감자를 넣어 지은 감자밥은 다이어트식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휴게소에서 맛볼 수 있는 구운 감자는 노릇노릇 고소하면서 짭짤한 맛으로 여행길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외국에서 발달한 감자 요리로는 일본인들의 국민 반찬인 니쿠쟈가가 있다. 고기(종류 상관 없으나 쇠고기가 가장 인기)에 감자, 당근, 양파, 실곤약 등을 넣고 간장 설탕 미림 청주 양념을 해서 부글부글 끓여낸 것. 이 요리는 여성들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해주는 요리라는 클리셰가 있다. 또 중국에서는 감자, 피망, 가지를 '地三鮮', 즉 땅의 삼선이라고 해서 세 가지 종류의 야채를 튀겨 전분 소스에 조린 요리가 유명하다. 인도에서 대표적인 감자 요리로는 양념과 야채를 넣어 버무린 감자소를 만두처럼 빚어 튀긴 '사모사'가 있다.


서양으로 넘어가면 파이 반죽 대신 으깬 감자로 내용물을 덮은 영국의 '셰퍼드 파이'를 대표적인 감자 요리로 들 수 있다. 프렌치 프라이의 원조인 '프리츠'는 벨기에의 국민 간식이며, 이탈리아에서는 삶은 감자에 밀가루를 넣어 파스타처럼 만든 '뇨키'가 있다. 감자 대신 찐 단호박으로도 만들 수 있는 뇨키는 마치 우리나라의 감자 옹심이를 연상시켜 친근감을 준다. 고르곤졸라 치즈를 얹어 먹으면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한 끼가 된다.   


좀 특이한 감자 요리...라기보단 식재료로는 페루의 '추뇨'를 들 수 있다. 안데스 고산 지대의 큰 일교차를 이용해 만든 추뇨는 밤에 꽁꽁 얼린 감자가 낮 시간에 녹으면 풀로 덮은 뒤 밟아 수분을 뺀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10년 이상 보존해도 끄떡 없다는 추뇨가 완성된다. 스프나 스튜 재료로 사용하며 디저트로도 쓰인다고 한다. 이 지역의 유적에는 수천 년이나 된 추뇨가 발견된다니 고대부터 이 지역 민족들과 함께 해온 요리인 셈이다.

얘가 바로 이탈리아식 감자수제비 뇨키입니다. 요리한 사람은 작가...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감자의 80%는 '수미칩'의 수미 감자이다. 수미 감자는 수분이 많은 편이어서 프렌치 프라이 같은 음식에는 부적당하며, 감자탕 재료로도 좀 언밸런스한 편이다. 간혹 어르신들이 감자탕의 감자 맛이 예전처럼 포슬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특정 품종에의 편중 때문이다.


'하지 감자'라는 말은 하지 무렵의 감자가 가장 맛이 좋기도 하고, 여름철 건강에 좋은 비타민 C등 각종 영양분을 듬뿍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이 가장 길다는 오늘, 감자로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