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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Apr 03. 2023

피렌체 Mercato Centrale 탐방

곱창버거와 친절한 할머니

50일간의 유럽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이탈리아 피렌체였다. 두오모 성당을 비롯한 르네상스 건축물들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고, 메디치가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흔적을 따라가며 즐거운 역사투어를 했다. 그 중에서도 왁자지껄한 피렌체 중앙시장, Mercato Centrale는 나중에 유럽을 다시 찾는다면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다. 

중앙시장 2층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와인한잔

메르카토 첸트랄레는 '중앙시장'이라는 뜻으로 사실 피렌체 뿐 아니라 로마 등 다른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요일에는 운영하지 않으며 오후 시간이 되면 1층 식료품 가게는 대부분 문을 닫으므로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다. 피렌체 중앙시장의 위치는 유명한 가죽시장 인근이다. 1층은 농수산물과 육류 등 다양한 식재료가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깔끔한 푸드코트에서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푸드코트의 다양한 달다구리

피자, 파스타부터 각종 전채요리, 빵, 디저트, 심지어 딤섬 같은 아시아 음식들도 판매한다. 내가 선택한 메뉴는 3가지 부르스케타에 화이트 와인 한잔. 토핑은 각각 훈제연어+캐비어, 시금치+앤초비+크림치즈, 닭간 파테이다. (이것 말고도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 느긋하게 와인을 홀짝이면서 오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입맛에 맞는 메뉴를 조금씩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면과 소스를 선택하면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파스타 코너도 인기가 많다. 

갖가지 간식용 빵과 젤라토, 파나코타 등 디저트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다만 종류에 따라 좀 많이~ 단 것들이 있었다.)

정육점에 전시된 내장고기
네 가지 속재료와 완성된 내장버거

서울에서는 마장동까지 발품을 팔아야 살 수 있는 소 내장을 이곳에선 다양하게 갖춰 놓고 판다. 피렌체는 오래 전부터 소 목축이 성행했던 곳으로, 가죽으로는 가방이나 지갑 등을 만들어 팔고 도축한 고기의 각 부위를 활용해 만든 특색 있는 요리들이 발달했다고 한다.  

막상 피렌체에서 유명하다는 티본 스테이크는 맛보지 못했고...ㅠㅠ(가격도 가격이지만 최소 두 사람 이상이 가야 함) 시장에서 유명하다는 내장버거는 두번 사먹었다. 셰프끼리라는 예능프로에서 오세득 셰프가 선보인 적이 있다. 

위 사진 속 내장들은 트리파(벌집위), 람프레도또(곱창), 링구아(혀), 포파(유통살) 등등이다. 버릴 것 없이 알뜰하게 내장을 활용하는 것이 우리나라 식문화와도 비슷해 반가운 생각이 든다. 보통 내장버거는 곱창이나 벌집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 

이날 갔던 가게에서는 네 종류의 맛이 있었는데 토마토 베이스인 듯한 매콤한 양념과 그레이비 느낌의 소스가 많이 팔리는 듯 하다. 향미 야채를 넣어 푹 삶아내 잡내를 없애고 질감을 연하게 한다. 매운 정도를 보면, 한국 사람인 내 입맛에도 양념이 꽤 맵게 느껴졌다. 따라서 맵찔이인 분들은 감안을...빵은 우리가 생각하는 햄버거빵과는 달리 하드롤과 비슷한, 겉이 바삭하고 약간 질긴 빵이다. 내장을 잘게 다져서 먹기 힘들진 않지만 소스가 흘러내리니 주의. 

왠지 다음날 아침에도 이 내장버거가 먹고싶어져 다시 시장을 찾았다. 여기는 푸드코트가 아닌 1층 가게로 간단한 스낵바 느낌이다. 북적이는 푸드코트가 부담스럽다면 이런 장소에서 조용히 밥을 먹을 수도 있다. 좀 달달한 레드와인과 내장버거를 시켜놓고 앉아 있는데, 한참 있다 영어를 못하는 주인 할머니가 갑자기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하더니 위 사진에 나온 우설 카나페와 튀긴 가지 등을 슬쩍 가져다 줬다. 알고보니 버거를 시킨걸 모르고는, 내가 아침부터 안주도 없이 낮술을 때리는 걸로 오해하신 모양...^^ 조심스럽게 서비스 메뉴를 준건 아마 다른 테이블을 의식해서인듯 하다. 주인 할머니의 따뜻한 배려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전채류와 키안티 와인

한편, 요렇게 각종 샐러드와 파테 같은 전채류를 조금씩 덜어서 파는 가게도 있다. 소량씩 포장 후 집이나 숙소에 가져가서 먹는다는 선택지도 가능하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결정하기 어렵다면 추천 메뉴를 골라보자. (대충 재료 이름만 알아도 어떤 맛인지 어느 정도 추측 가능..) 오른쪽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병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끼안티 와인이다. 토스카나 지방의 유명 와인으로 피렌체에서 꽤 자주 볼 수 있음. 짚으로 된 포장은 농사 짓던 농부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닌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어리, 올리브, 치즈, 프로슈토 햄

여기는 이탈리아 가정에서 평상시 자주 찾는식료품들을 파는 곳이다. 등푸른 생선 종류가 꽤 많았는데 정어리나 앤초비 필레를 가장 자주 본 것 같다. 그리고 남유럽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올리브! 일단 올리브 품종 자체도 엄청나게 다양할 뿐더러 절이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그냥 소금만 사용하기도 하고 각종 허브를 넣기도 하는데 이동네에 꽤 오래 살더라도 올리브 종류를 다 먹어보긴 힘들겠다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국으로 치면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는 장아찌 반찬을 보는 기분이다. 

치즈도 프랑스 못지 않게 다양한 종류를 판매한다. 파르메잔이나 그라나파다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루 형태가 아닌 덩어리째 판매한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종류는 생 모짜렐라와 부라타, 리코타 같은 프레시 치즈다. 이런 치즈들은 선도가 중요한 만큼 아침 일찍 시장이나 슈퍼마켓에 가면 깨끗한 물에 담긴 새하얀 치즈를 볼 수 있는데, 마치 금방 만든 순두부를 연상시킨다.  

밧줄로 묶인 커다란 덩어리는 이탈리아 생햄인 프로슈토이다. 스페인의 하몽과 비슷하게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만드는데, 진한 짠맛에 발효를 통해 생겨나는 풍미가 독특하다. 그냥 먹기가 부담스럽다면 빵에 얇게 썰어 넣거나 오믈렛으로 만들면 좋다. 보통은 아주아주 얇게 카빙해서 와인안주로 먹는다. 햄 아래 뾰족하게 솟은 것은 그라나파다노 치즈 덩어리...  


피렌체 시장 뿐 아니라 유럽의 재래시장에는 이렇게 이색적인 먹거리들이 가득해 구경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여기에 여러 가지 음식을 조금씩 맛보는 재미, 상인들과 손님들의 역동적인(!)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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