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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Apr 12. 2023

유럽에서 만난 달다구리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다채로운 디저트

어린시절 프랑스 동화책을 읽으면서 나는 '봉봉'이란게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었다. 나중에 봉봉이 캔디류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인걸 알았을 때 살짝 실망한 적도 있지만, 이름도 근사한 프랑스 디저트들은 여전히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실제로 유럽을 다니면서 나는 여러가지 달다구리들을 맛봤는데 결론은...기호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디저트는 오히려 프랑스보다 이탈리아가 맛있었다. 하긴 마카롱 같은 프랑스 대표 과자를 가져온 사람이 애초에 이탈리아 출신의 카트린 메디치였구나.

파리 카페 마고의 핫초코

도착지인 파리는 생각보다 추운 날씨였다. 조식을 먹고 생제르맹 데프레 수도원을 구경하고 나오니 날이 꽤 으슬으슬했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카페 마고에 자리를 잡고 시그니처 메뉴라는 핫초코를 시켰다. 한국에서 마시는 코코아와 달리 우유 맛이 거의 안 느껴질 정도로 진하고, 약간 걸쭉한 것이 수프 같다. 음료로 마시는 초콜릿이 훨씬 익숙했던 시절에는 이렇게 추운 날에 몸을 데우기 위해 마셨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고 보니 본고장 남미에선 매운 칠리 파우더를 넣어 보온 효과를 높인다고..

리나센테 백화점 식품관. 색색가지 과자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탈리아 최대의 백화점 체인 리나센테에 가면 고급 식료품과 함께 다채로운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단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색색가지 캔디와 초콜릿, 마카롱 등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각종 과일이나 보석, 혹은 립스틱 같은 화장품 모양으로 만든 과자들도 즐비하다. 과자와 곁들여 먹기에 좋은 커피와 티 종류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시럽에 담근 바바인데 럼, 리몬첼로, 화이트 와인 등의 술이 시럽으로 쓰인다. 

밀라노에서 먹은 달콤한 바바

바바의 원조는 프랑스라고 하지만 어쩐지 이탈리아에서 더 자주 먹었던 것 같다. 부드러운 브리오슈 반죽을 강한 양주가 섞인 시럽이 감싸 들척지근~하면서 술 향이 코끝을 찌른다. 이렇게 버섯처럼 생긴 바바가 일반적이지만 동그란 형태나 작은 도넛 모양 등 종류는 다양하다. 도넛 형태 브리오슈 한가운데에 과일이나 크림으로 장식한 과자는 '사바랭'이라고 불린다. 

명불허전 젤라또

이탈리아까지 왔는데 젤라토를 안 먹어볼 수는 없는 일! 이탈리아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 젤라토는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밀도가 높고 진하며 재료 자체의 맛이 살아있다.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데 내가 맛본 것으로는 라즈베리와 둘세 데 레체, 아마레나, 오렌지 필 등이다. 콘 위에 두 가지 맛 젤라토를 얹고 기호에 따라 토핑을 뿌리는 게 기본이며, 시칠리아 쪽으로 가면 브리오슈에 담아 주는 젤라토도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스페인 계단 부근에서도 젤라토를 파는데 괜히 영화 따라한다고 계단에서 먹었다가는 벌금폭탄을 맞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이탈리아 정부의 조치로 계단에 앉거나 음식을 먹는 일은 엄격히 금지돼 있기 때문. 

피렌체 두오모 근처의 사탕가게

피렌체 두오모 부근에는 호화로운 명품 샵들과 함께 과거 메디치 가문이 지배하던 시절의 단면을 보여주듯, 다양한 공예품과 과자 가게가 많다. 사진 속 과자들은 정교한 세공함에 담겨 있는데 설탕옷을 입힌 장미꽃잎과 제비꽃잎, 아몬드 등이다. 가격이 꽤 비싸지만 기념품으로 한두개 구입해볼 법 하다. 설탕옷 아몬드는 영화 '대부'와 '그리스인 조르바' 등에도 언급되는데, 결혼식 날 축하의 의미로 주고 받는다고 한다. 

피렌체 카페에서 맛본 판나코타와 머랭

이탈리아의 로컬 카페에 가면 커피와 함께 다양한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왼쪽 사진은 캬라멜을 뿌린 판나코타. 쉽게 말해 우유푸딩인데 캬라멜 시럽이 좀 진해서 내 입에는 좀 달았다. 오른쪽은 설탕을 섞은 차가운 머랭인데 바닥에 리몬첼로가 깔려 있다. 우유 젤라또, 혹은 샤베트와 리몬첼로는 상당히 궁합이 좋음. 뜨거운 커피와 함께 이런 차가운 디저트를 즐기는 것도 별미다. 

시칠리아 시장의 마르치파네

마르파치네는 영어로 마지팬, 즉 아몬드 가루와 설탕을 반죽해 만든 과자를 가리킨다. 케이크 같은데 올라가는 각종 장식물의 재료이기도 하다. 시칠리아에서는 마르파치네에 색소를 넣고 만든 과일 모양 과자가 꽤 흔하다. 실제 과일의 디테일을 살린 것이 언뜻 일본 화과자 같기도 하다. 다만 지나치게 선명한 색깔에 왠지 거부감이 들어 사먹어 보지는 않았다. 마르파치네는 얼마 전 톡파원25시에도 나왔는데 화과자보다 더 달다니...안사먹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원한 코코넛 음료와 민트 그라니타-시치리아

시칠리아 시장에 가면 이런 길거리 음료도 자주 볼 수 있다. 시원한 코코넛 음료나 즉석에서 즙을 짜주는 석류 등은 시장 구경을 하다 잠깐 쉬며 갈증을 풀기에 딱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음료는 직접 대패로 간 얼음에 민트시럽을 넣은 그라니따. 다만 이렇게 얼음을 손으로 갈아주는 곳은 많지 않고 대부분 슬러시 기계에 담긴 그라니따를 덜어서 판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맛보는 화한 민트 향의 청량함은 그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리코타 치즈를 채운 카놀리

"총은 버리고, 카놀리는 챙겨와"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과자 카놀리는 영화 대부의 중요한 모티브로도 등장한다. 대롱에 감아 튀긴 반죽에 달달한 리코타 치즈를 채우는 것이 기본형이며 여기에 초콜릿 칩이나 피스타치오, 각종 과일 등을 곁들인다. (종류가 젤라또만큼이나 다양하므로 기호에 맞게 택하면 된다)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에서도 이 과자를 볼 수 있다는데, 미국식 카놀리는 리코타 대신 크림을 넣어 좀 더 느끼하다고 한다. 의외로 많이 달지는 않아서 식후에 한두개 먹기 좋다. 

설탕에 조린 오렌지-발렌시아

스페인의 과자들은 오랜 무슬림 지배의 영향인지 중동 느낌이 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즉, 엄청나게 달단 얘기.... 시장 같은데선 산더미 같은 누가를 쌓아 놓고 파는 곳이 흔하며, 설탕에 절인 견과류에 바클라바나 로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발렌시아를 상징하는 오렌지를 위 사진처럼 설탕시럽에 절여 정과처럼 만든 과자도 있다. 이것 역시 단맛이 강해 차나 커피와 함께 조금씩 베어물며 먹는 게 좋을듯...

발렌시아 시내의 과자가게
양젖으로 만든 쿠아하다

끝으로, 내가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푸딩류 디저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위 사진은 쿠아하다라는 밀크 커드인데 요거트와 치즈의 중간 정도 느낌이다. 레닛으로 응고시켜 만드는 것이라 치즈에 좀 더 가까운듯.. 이것 자체로는 전혀 단맛이 안나는데 우유의 풍미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그냥 먹어도 되고, 보통은 꿀이나 시럽을 끼얹어 먹는다. 양젖을 재료로 테라코타 단지에 담아 파는게 정석이라고 한다.  

다양한 스페인식 푸딩들

생크림을 곁들인 것은 커스터드 푸딩과 거의 비슷한 플랑이며 캬라멜 시럽을 곁들였다. 비스킷을 곁들인 디저트는 약간 걸쭉한 크림인데 커스터드보다는 살짝 덜 달고 우유의 풍미가 강하다. 오른쪽은 쌀을 넣은 라이스 푸딩으로 차갑게 먹는다. 

크레마 카탈라냐

이거는 스페인식 크레마 카탈라냐 푸딩이다. 진한 커스터드 크림에 설탕을 뿌리고 토치로 지지는 과정이 크림 브륄레와 거의 유사한데, 양쪽에서 원조 논쟁이 있다고 한다. 스페인 요리에는 자극적인 양념이 꽤 많다보니 식후에 이런 차가운 디저트가 입가심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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