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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May 08. 2024

나에게 엄마의 맛이란..?

이해를 돕기 위한 '만 개의 레시피' 사진입니다.(문제시 삭제)



20대 중반에 생각지 않게 음식 칼럼니스트 일을 하게 됐다. 그러고 이런저런 이력을 쌓다가 어쨌든 다시 음식 에세이를 공식 출간했다. 지금 내 포지션은 프리랜서 기자+음식 작가(공식적으로는 백수..ㅠ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식 관련 글을 청탁받거나 마음먹고 써보려 했을 때 지금까지도 제일 어려운 주제가 바로 '엄마의 맛'이다. 뭔가 모두를 감동시킬 만한 치트키이기는 하지만 뻔한 전개를 피해갈 수 없고, 또 쓰다 보면 역시 희생하는 K-여인의 아름다움...이딴 결론으로 빠지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내 엄마의 음식 이야기를 조심스레 풀어보려 한다. 1940년생인 엄마의 친정집은 그 동네에서 꽤 유복했다고 한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외할아버지의 젊은시절 사진을 보면 말 그대로 일제강점기 하이칼라 지식인 느낌이 든다. 외할아버지도, 외할머니도 식도락에 꽤 일가견이 있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설하고, 조부모님의 영향인지 외가에 가면 항상 맛있는 음식이 넘쳐났다. 그리고 축하할 만한 일이 있으면 꼭 나오는 음식이 신선한 생선회와 문어, 성게 등 해산물이었다. 과한 양념 대신 재료 그대로의 맛을 즐기는 것이 일종의 가풍...?이었던 셈이다. 엄마의 음식도 레시피 자체로만 보면 꽤나 간단했다.


한겨울이 오면 항상 우리집 식탁에 올랐던 메뉴가 바로 알이 꽉 찬 도치와 김치만으로 끓인 탕이었다. 그닥 복잡한 양념이란 건 없고 미원을 약간 넣는 정도다. 봄이면 산속에서 뜯어온 쑥과 찹쌀가루만 넣은 쑥버무리, 여름엔 싱싱한 전복 내장을 기름소금에 무친 것, 가을에는 귀한 송이버섯을 조금씩만...이런 느낌이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말 그대로 재료발!!..... 즉, 엄마는 기교를 부려 보잘것 없는 식재료를 맛있게 만드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돈주고도 쉽게 사먹기 힘든 귀한 식재료를 채집해 오는 수집가였던 것이다.......생각해 보니 엄마는 젊은 시절부터 분재, 수석, 그림 등 보통이 아닌 수집벽의 소유자였다. 


엄마의 맛이라는 것은 결국 주관적인 개념이다. 누군가에게는 자투리 재료로 솜씨 있게 차려내는 한상이 엄마의 맛일 수 있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본인은 굶더라도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만드는 음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의 엄마의 맛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열정적 에너지, 낯설고 새로운 것을 항상 탐색하는 심미안이 엄마의 맛있는 식탁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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