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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Sep 16. 2015

생굴, 커피와 함께한 발자크의 생애

구강기 애착 성향과 그의 식탐

심리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구강기 애착'이라는 단어는 한두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갓난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빨며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이 시기에 빨고 싶은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는다면 식탐이 많거나 애정결핍인 성인으로 자랄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프랑스의 위대한 소설가 중 하나로 불리는 오노레 발자크('드'라는 귀족 칭호는 스스로 붙인 것)의 생애를 보면 말 그대로 전형적인 구강기 애착의 예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이런 성격 형성의 배경에는 부모의 냉대가 있었다. 


1799년 투르에서 관료의 아들로 태어난 발자크. 그의 양친은 30세 이상 나이 차이가 났다고 하며, 이 때문에 부부 사이가 나빴던 발자크의 어머니는 그를 낳아만 놓고 사실상 방치한다. 어린 소년으로 성장한 후에는 아예 남의 집에 맡겨 기르기까지 했고 나중에는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기숙사에서 그가 겪었던 괴로웠던 경험들은 소설 '루이 랑베르'에 상세히 묘사돼 있다. 이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스무살 때 부모에게 처음으로 반항,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생활에 여유를 갖기 위해 손댄 여러 가지 사업들은 줄줄이 실패해 발자크는 무거운 빚을 지게 됐고 그는 이 때문에 그 어떤 작가보다도 '전투적으로' 작품을 썼다고 한다. 당시 그가 누이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어떻게 자신을 혹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편지에는 "12시간 동안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씨를 마냥 갈겨 놓는 거야, 누이동생. 이렇게 한 달을 생활하고 나면 꽤 많은 일이 이루어지거든"이라는 언급이 있으며 "저녁밥을 주둥이에 처넣고' 여섯 시에 잤다가, 자정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정오까지 일한다"고도 알려졌다. 그리고 탈고한 후에는 레스토랑에 달려가 몇 사람 분의 음식을 쓸어 넣었다고 한다. 


이렇게 생활하니 그의 건강은 좋았을 리가 없다. 특히 잦은 폭식과 과도한 커피 섭취는 그의 직접적인 사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앉은 자리에서 1444개의 굴을 먹어 치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며, 집필을 할 때에는 50잔 이상의 커피를 마셨다고 하니 아무리 체력이 튼튼하다 한들 버텨냈을까...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고급 요리들을 '꿀꺽' 하고 출판인에게 돈이 없다고 고백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단골 레스토랑인 '베리'라는 곳에서 출판업자와 식사를 했으며 이날 그가 먹은 음식은 오스텐드 굴 100개, 양고기 커틀릿 12개, 순무를 곁들인 오리고기, 구운 자고새 한쌍, 노르망디식 생선요리 등이었고 여기에 고가의 와인과 술을 곁들였다. 발자크가 아마 현대에 태어났더라면 먹방 BJ로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파리에 고급 레스토랑들이 생겨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혁명이었다. 귀족들이 대부분 죽거나 해외로 도피한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은 셰프들은 식당을 개업했으며, 그들의 주인들이 먹던 진귀한 요리들을 내놓는다. 


그 중 생굴은 요즘에도 고급 요리로 대접받는다. 해산물을 날 것으로 먹지 않는 서양인들의 식성을 볼 때 생굴 섭취는 상당히 예외적이다. 생굴이 비쌌던 이유는 비린 맛이 나기 전에 재빨리 공수해 가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름이 많은 오리고기는 종종 '콩피'라는 형태로 식탁에 올랐다. 저온에 오리를 익혀 나오는 기름에 각종 향신료를 넣고 고기를 넣어 봉한 보존식이다. 기름진 맛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콩피에는 민들레 같은 쓴맛이 강한 채소류가 곁들여졌다. 


우리에게 낯선 재료인 자고새는 사냥으로 잡는 야생 조류로, 18~19세기 프랑스 문학작품을 보면 자주 등장한다. 자고새의 살은 촉촉하며 간요리와 비슷한 부드럽고 진한 풍미가 있다고 한다. 


발자크는 또한 커피 로스팅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기도 했다. 그는 독한 터키쉬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하며 로스팅 방법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그 시대의 원두는 더 이상 재배되지 않아 구할 수 없다. 


한편 발자크의 구강기 애착 성향은 그의 연애사에도 나타난다. 어머니의 사랑에 굶주린 탓인지 그는 연상의 여인들과 주로 사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골짜기의 백합'의 모델인 베르니 부인, 18년 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 폴란드 귀부인인 한스카 부인이 그들이다. 


한스카 부인과 발자크는 뜨겁게 서로를 사랑했으며, 1850년 그녀의 남편이 사망하자 드디어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불행히도 두 사람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발자크가 집필활동을 하는 동안 반복됐던 밤샘작업과 폭식, 카페인 중독 등으로 인해 결혼한 지 반 년이 채 되지 못해 사망한 것이다. 그의 유언은 "비앙숑(발자크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의사)을 불러줘! 그만이 나를 치료할 수 있어!"였다고. .           


평생 사랑을 갈구했고, 문학에 몰두했으며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에 세상을 떠나고 만 발자크. 그런 그가 정말 먹고 싶어한 음식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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