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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Sep 18. 2015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적 식성

카탈루냐 지방의 다채로운 음식문화

미드 ‘로스트’를 보면 한국인 남자 진수(대니얼 대 김)가 내미는 성게를 헐리(조지 가르시아)가 억지로 입에 넣었다 뱉어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일본인이나 한국인이 이 모습을 본다면 “아니 갓 잡은 성게가 얼마나 고급 요리인데?”하며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입맛은 다양한 법. 서양인이라고 해서 모두 날생선이나 해산물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서구권의 잘 알려지지 않은 성게 마니아들 중에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있다.


그가 성게며 해산물을 즐겨 먹었던 이유는 바다를 끼고 있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카탈루냐 요리에는 유럽 다른 지역 사람들이 잘 먹지 않는 오징어나 문어, 혹은 돼지 태아처럼 금기시된 식재료도 사용된다.


달리의 식성은 그의 많은 작품들에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의 그림 ‘기억의 습작’에는 녹아내리는 시계가 있는데 이 아이디어는 그날 저녁으로 먹은 카망베르 치즈에서 떠올린 것이라고 한다. 


또한 평생을 사랑해온 아내 갈라의 모습에 양갈비를 함께 그려 넣은 ‘양갈비를 이고 가는 갈라’라는 작품도 있다. 다소 기묘해 보이는 이런 조합을 택한 이유는 “둘 모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대답이다. 


어쩌면 이렇게 엉뚱한 발상에 능했던 달리이기에 초현실주의라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서 영감을 받은 몽환적인 화풍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그의 어린 시절도 매우 반항적 기질이 강했으며 기존의 가치에 대한 도전의식 같은 것들이 있었다고 한다.  


달리의 자서전에 기록된 그의 유년기에는 이탈리아의 한 왕녀가 여름날 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이 맛있는 걸 먹는 게 금지된 죄라면 얼마나 더 감미로울까?”라고 했다는, 스탕달의 말을 인용한 구절이 나온다. 기괴하고 이상한 것, 듣도 보도 못한 것들에의 강한 동경은 그의 별난 식성과 그림들에 투영된 셈이다.    


다만 그림 속에서 묘사된 음식들은 철저히 고향 카탈루냐의 것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의 작품 세계가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환각이지만 왠지 모르게 현실성을 띄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 예로, 달리의 작품 중에는 유독 빵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포트리가의 마돈나나 원자핵의 십자가 등에 묘사된 빵은 카탈루냐 사람들이 식사를 할 때 주로 먹는 빵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른바 샐러드나 감자튀김 같은 ‘사이드 메뉴’를 거의 곁들이지 않기 때문에 빵을 유난히 많이 먹는다고 한다. 


카탈루냐 지방 요리의 특징은 앞서 들었던 성게알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유럽 어느 지역보다도 독특하다. 바닷가재에는 초콜릿 소스를 곁들이며, 달팽이와 토끼고기를 함께 먹는다. 캐러멜 소스와 돼지족발 등도 카탈루냐에서만 즐길 수 있는 별미 요리들이다.       


참고로 그의 작품 행보 중에는 재미있는 것 하나가 있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캔디 ‘추파춥스’의 포장 디자인을 한 일이다. 우리로 치면 지휘자 정명훈이 CM송을 만든 셈. 


하지만 영역을 가리지 않는 다채로운 활동들에 힘입어 그는 예술적인 면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게 된다. 그의 작품들은 후대의 영화나 애니메이션, 현대음악 등에 적지 않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엉뚱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파격. 달리가 초현실주의의 거장이 된 것은 아마 타고난 성격 자체가 이미 초현실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고향 카탈루냐의 독특한 음식문화는 그의 작품세계 형성에 많은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페인 요리가 아직 대중화되어있지 않지만 홍대 등을 중심으로 타파스나 빠에야를 파는 곳이 늘고 있다. 달리가 사랑했던 카탈라냐 향토 음식들을 맛보고 싶다면 한번쯤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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