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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Sep 21. 2015

음악과 미식을 사랑한 남자, 롯시니

시대를 풍미한 작곡가의 식탐 스토리

베토벤과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생전에 그보다 더한 명성을 누렸다는 음악가 롯시니. 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 하나가 있다.


롯시니는 평생 세 번 울었다고 하는 데 그 첫 번째가 오페라 데뷔작인 세빌리아의 이발사 초연날 관객들이 난동을 부려 공연이 엉망이 되고 말았을 때이다.


두 번째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감동해서, 세 번째는 센 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를 갔다가 트러플을 채운 칠면조 요리를 물에 빠뜨렸을 때라고 한다.


지금도 ‘땅 속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릴 정도로 값비싼 트러플 요리를 잃어버렸으니 분명 아깝고 원통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다 큰 남자가 울기까지 하다니. 이 일화는 음악가인 동시에 미식가였던 롯시니의 면모를 보여준다.


롯시니의 고향은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페자로’라는 도시이다. 이탈리아인들의 자국음식 사랑은 대단해서 “세상에는 이탈리아 요리와 다른 나라 ‘식량’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롯시니는 자유분방한 음악가 가정에서 자란데다 명성을 얻은 후에는 유럽 곳곳에서 초청받아 여행 경험이 많았던 덕인지 프랑스 요리를 비롯한 다른 나라 요리들도 즐겨 먹었다.     


그가 만년을 보낸 곳은 파리 근교의 ‘파시’라는 곳이었다. 그는 단지 미식을 즐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요리에도 관심이 많아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로 손님들을 대접했다고 한다.


당시 그와 어울렸던 명사들은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를 비롯해, 리스트, 바그너, 생상, 베르디 등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로시니의 집에 모여 수십 종류의 와인과 치즈를 비롯한 각종 진미를 즐겼다.


롯시니는 직접 와인을 담그기도 했으며, 포르투갈 국왕이 ‘하사’한 왕실 포도주도 그의 와인 콜렉션에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요리사 마그니와 함께 이전에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요리들을 개발하는 데 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물론 중간 중간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하고, 후진 양성에 힘쓰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가 개발한 메뉴 중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롯시니 스테이크’라고도 불리는 ‘투르네도 로시니’가 있다.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 위에 생 프와그라를 올린 것이다.


이 요리에는 때로 오페라 가수 닐리 멜바가 다이어트식으로 먹었다던 멜바토스트나 마데이라 와인을 채소와 함께 끓여 만든 소스가 곁들여지기도 한다.  


투르네도 롯시니에도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파리의 비스트로 앙글레에서 식사하던 롯시니는 주방장에게 자기가 보는 앞에서 요리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주방장이 이를 거절하자 “Et alors tournez le dos” (그러면 등을 돌리시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프와그라 하면 동물학대 음식으로 한국에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겨울철 자연스럽게 지방분이 쌓인 거위의 간만을 재료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농가에서 더 많은 양을 생산하고자 하는 욕심에 파이프로 옥수수 사료를 강제 주입하는 방법을 택하면서 학대 논란이 시작됐다.


다만 그렇게 대량생산한 푸와그라는 자연산에 비해 맛이 현저히 떨어진다. 혹시 푸와그라를 먹고 맛이 없었다는 사람들은 아마도 하급품을 맛보았을 가능성이 크다.(실제로 자연산 프와그라는 가격이 넘사벽 수준으로 비싸서 일반인들이 먹어 볼 기회는 극히 드물다.)


또 그는 송로버섯이라고도 불리는 '트러플'을 열렬히 사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항간에는 그가 일찍 오페라 작곡을 접은 이유가 트러플을 캘 돼지 사육을 위한 것이었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이며, 지금도 파리의 전통 있는 레스토랑에서 '~아 라 롯시니'라는 이름이 붙은 요리는 모두 트러플을 이용한 요리이다.  


이 트러플은 매우 향기가 강해서 다른 재료의 맛을 압도해 버리지 않도록 소량만을 사용한다. 워낙 귀한 버섯이다 보니 얼마전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지드래곤의 냉장고 안에 있던 트러플 크기를 보고 셰프들이 눈이 휘둥그래진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롯시니의 식도락 기행은 후대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영감을 주었던 듯 싶다. 하루키의 소설 ‘태엽 감는 새’에는 스파게티를 삶으면서 들으면 좋은 노래로 롯시니의 ‘도둑 까치’를 들고 있다.


하루키는 여러 음악가들이 연주한 앨범 중 런던 교향악단이 연주하고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버전을 추천한다.


‘도둑 까치’는 물건을 훔쳤다고 누명을 쓴 한 하녀가 목숨을 잃고 난 후, 진짜 범인이 까치인 것으로 드러났다는 내용의 오페라이다. 다만 원작과는 달리 오페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식도락과 예술, 사람들과의 교류를 즐겼던 롯시니. 이런 그의 성격 탓인지 롯시니 오페라 작품들 중 대부분은 유쾌한 희극이다.


보마르셰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프랑스 앙시엥 레짐 당시 귀족들의 타락상을 신랄하게 비꼰 것으로 유명하다.     


그밖에도 그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신데렐라’, ‘이집트의 모세’, ‘오리 백작’, ‘빌헬름 텔’ 등 동화적인 요소가 듬뿍 묻어나는 오페라들을 작곡한다. 그밖에도 칸타타와 피아노, 관현악곡, 실내악 등에서도 많은 곡들을 쓰며 명성을 누렸다.


아마 우리나라 위인들 중 그와 가장 유사한 인물을 꼽자면 자유분방한 삶을 살면서 평생 식도락을 즐겼다는 허균이나, 값비싼 매화를 보며 술 마시는 데 하룻밤에 몇 천냥을 썼다는 김홍도 정도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롯시니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풍류를 즐기는 한량으로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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