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에 얽힌 이런저런 트리비아
요리에 막 재미를 붙이던 시절, 필자에게는 혼자만의 미신 하나가 있었다. 아침에 프라이를 부칠 때 달걀 노른자가 깨지면 그 날은 재수 없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달걀 프라이란 참 미묘한 데가 있는 음식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요리로 인식되지만 제대로 하기는 은근히 어렵다. 하긴 달걀찜이나 달걀이 들어간 과자류를 봐도, 달걀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상당히 다루기 까다로운 식재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심야식당 부엌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노른자 주위를 둘러싼 불안정함이 달걀의 매력'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또 달걀을 '고쇼구루마'라고 해서 왕이 타고 있는 수레에 비유한 표현도 있다. 달걀을 어떻게 먹는가는 취향에 달린 일이지만 필자의 경우 한쪽 면만 익히는 서니 사이드 업을 선호한다. 특히 볶음밥이나 덮밥, 막 구워낸 토스트 위에 얹은 달걀 노른자를 톡 깨서 주르르 흐르는 모습을 보면 군침이 돈다. 날달걀을 깨어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는 달걀밥도,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상 차리기 귀찮을때 한끼 때우기 좋은 메뉴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메뉴라도 달걀 하나가 올라가면 왠지 호화스러워지는 예는 많다. 속을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도 있지만, 물냉면 위에 올라간 달걀 반쪽이 그렇다. 특히 노른자가 서서히 냉면 육수에 풀어지면 고소한 맛이 배가된다. 라면에 찐덕찐덕한 노른자를 적셔 먹는 맛도 별미이고 옛날 짜장면에는 삶은 달걀 반쪽이 올라가 있어 영양을 보충해 줬다고 한다. 쌍화탕이나 커피에 달걀을 띄운 메뉴는 70년대 다방의 인기 종목이었다. 달걀 노른자를 커피에? 조금 의아한 면이 있지만 스웨덴에서도 이렇게 마시는 커피가 있다고 알려졌다.
요리에서 조연이라는 인상이 강한 달걀이지만 의외로 달걀이 주연급 역할을 하는 요리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 음식 중에서는 경북 지역에서 종가 음식으로 전해져 내려온다는 수란채(일명 경주채)가 있다. 야채와 갖은 해물을 삶아서 담아내고 물에 익힌 수란으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고소한 잣즙을 뿌린 수란채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먹고 감탄했다는 메뉴로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몽 생 미셸 지역에서는 지명을 그대로 딴 이름의 오믈렛이 있다. 흰자를 풍성하게 거품 내서 약한 불에 조심스럽게 구워낸 것이다. 종종 거품 때문에 속았다며, 적은 양에 불평하는 관광객들도 있으나 이 요리는 달걀이 가진 부드러움을 120% 끌어내 심플하면서도 사르르 녹는 맛을 자랑한다. 사실 오믈렛은 양식 메뉴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면서 제대로 만들기 가장 어려운 요리이기도 하다. 겉은 탱탱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프라이팬을 탕탕 쳐서 나뭇잎 모양으로 만드는 모습은 프로 요리사의 포스를 제대로 느끼게 해 준다.
그밖에 달걀을 이용한 좀 색다른 요리로 베트남 사람들이 보양식으로 먹는다는 호비룡을 들 수 있다. 부화 직전의 달걀을 그대로 삶은 것인데 동남아 지역에서는 흔하며, 오리알로 만들기도 한다. 형성되다 만 뼈와 몸체가 보여서 좀 엽기스럽기는 하지만 눈을 감고 씹어보면 아주 고소하다. 마치 알과 고기를 동시에 먹는 듯한 느낌이다.
참고로 외국, 특히 유럽 쪽에 갈 일이 있으면 가급적 날달걀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달걀을 생식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 보니 위생 상태가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흔하지 않은 살모넬라 식중독 사고가 서구권에서 괜히 많은 게 아니다. 혹시 시골에서 닭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달걀 표면에 묻은 이물질을 씻어내고 먹는 것이 위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