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인 삶의 질 고려한 미시적 접근 아쉬워
*이 글은 BI매거진(비프렌더스 인터내셔널) 1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노인 빈곤층 중에서 독거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처분소득을 적용한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는 노인 빈곤층 중 독거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27.1%에서 2016년 45.9%로 1.7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4년 도입된 기초연금제도의 효과가 독거노인들에게는 와 닿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무엇이 독거노인의 삶을 빈곤하게 하는가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여인의 향기’에는 나홀로 추수감사절을 보내게 된 노인 프랭크와 연휴 동안 그를 돌보러 온 고교생 찰리의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가 들떠 있는 명절이지만 고독과 상실감에 젖어 있던 프랭크는 난데없이 주인공을 데리고 초호화 뉴욕 여행을 감행하더니 호텔 방에서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려 한다.
실제로 독거노인이 많은 서구에서는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 기간에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통계가 있다. 풍족하고 호화스러운 바깥 세상의 분위기는 노인들의 외롭고 처량한 처지를 더욱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영화 속 프랭크는 엄밀히 말하면 독거노인은 아니다. 친자식은 아니지만 숙식을 제공하고 거동이 불편한 그를 돌보는 조카 집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조카네 가족은 연휴 동안 집을 비우면서 대신 돌봐줄 도우미를 채용할 정도로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그를 소홀히 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프랭크로 하여금 생을 포기하고 싶도록 만든 것일까.
‘내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는 어르신들
기자는 최근 취재를 위해 서울역에서 무연고 노숙인들을 돌보는 센터를 찾은 적이 있다. 노숙인들이 할 수 있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주선하는가 하면 옷이나 생필품을 제공하고 겨울철 머물 수 있는 시설을 안내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을 이용하는 노숙인은 비교적 연령대가 낮고, 여성이 대부분이다. 남자 어르신들은 센터를 잘 찾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으니 돌아온 답변은 씁쓸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보통 겨울에 시설에 들어가라고 권해요. 그런데 시설에 들어가면 술 담배며 하지 말라는 게 많으니 가기 싫어들 하시는 거지.”
그렇다면 머물 집이 있는 어르신들의 사정은 어떨까. 그들의 처지도 별반 나을 것이 없었다. 종로 3가 탑골공원에는 거의 계절에 상관없이 공원을 배회하는 노인들이 많다. 공원 한켠에서는 한 보수단체가 선거운동 차량과 비슷한 트럭을 세워 놓고 울긋불긋한 선전 문구에 영상물을 연신 틀어대고 있었다. 보수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초로의 남성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탄핵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는 동안 어르신들은 늘어선 의자에 앉아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더러 박수를 치거나 열띤 응원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앉아 계신 어르신들은 자발적으로 집회에 나오는 건가요?”
기자의 질문에 공원을 관리하는 분은 이렇게 답했다.
“참가자들한테 한 4~5000원씩 쥐여주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앉아서 이야기 듣다가 막걸리랑 담뱃값 벌어 가는 거죠.”
그러고 보니 탑골공원 내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옹기종기 앉아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는 할아버지들이 눈에 띈다. 바둑을 두며 술 한잔을 기울이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야당과 ‘빨갱이들’을 욕하며 흥분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추운 날씨에 굳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대부분 “집에 있기가 불편해서”였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며늘아이가 눈치 주고, 손주들은 할아버지 때문에 공부에 방해된다고 잔소리야. 이 동네(종로3가) 오면 말벗 돼줄 동년배들도 있고, 싼 값에 배 채울 수 있는 식당도 있으니 매일 오게 되는 거지.”
실제로 종로 3가 인근에는 노인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해 주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5000원이 채 되지 않는 돈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저렴한 국수집 등이 줄지어 있다. 추운 겨울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썩 좋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다보니 이곳으로 모여든다는 것이, 기자가 이야기해 본 어르신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였다.
‘품앗이’하며 공동생활하는 독거노인들
그래도 비교적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어르신들 중에는 자녀와 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분들도 많다. 부양할 자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독거노인이 되는 이유는 앞서 들었던 자녀, 손자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다. 자녀들의 신세를 지며 불편하게 지내느니 외롭더라도 혼자 사는 쪽이 낫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부동산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는 김모 할아버지(72세) 역시 지난해 아내를 잃은 후 원룸을 얻어 혼자 살고 있다.
“며느리가 해준 밥도 입에 안 맞고, 아들놈은 출장이다 뭐다 해서 코빼기도 안 비쳐. 거기다 이 녀석들이 종종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하니까 함께 지내기가 힘들더라고.”
김 할아버지는 아직은 혼자 밥을 짓고 살림을 꾸려가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녀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고 하지만 생각까지 어려지는 건 아니야. 아무리 자식들이 극진히 돌봐준다고 해도 내 몸 하나 마음대로 못하고 사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데.”
이렇게 혼자 사는 어르신들 중에는 같은 처지의 독거노인들끼리 상부상조하며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지내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서울 서초동의 조그만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최모 할머니(80세)는 가끔 오는 아들 며느리보다 이웃집 할머니들과 더 친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낸다. 겨울 김장철이면 다 같이 김장을 해서 나눠 먹는가 하면 설이나 추석 때는 명절음식을 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병원이며 건강에 대한 정보도 이곳에서 교환한다. 갑자기 몸이 아파도 도움을 청할 이웃집이 있으니 멀리 사는 자녀보다 오히려 낫다는 것이 어르신들의 이야기다.
최근 최 할머니는 이웃의 권유에 따라 사후 장기기증 서약을 한 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한다. 병원에서 무료 장례를 치러 준다는 말에 한시름 놓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요즘 것들, 지 부모 산소 매번 찾아와 벌초라도 하겠어? 혼자 가더라도 거둬 준다니 이제 안심이 돼.”
실제로 독거노인들 사이에서는 자녀들의 신세를 지는 대신 장기기증 서약 후 모든 사후 처리를 병원에 맡기는 일이 늘고 있다고 한다. 후손들이 대대로 제사를 모셔 준다는 기대를 버린 어르신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결국 우리 사회의 독거노인 문제는 혼자 사느냐, 아니면 자녀나 이웃들과 함께 사느냐 하는 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할 일이 아닌 듯하다. 자녀와 살아도 불편해하는 어르신들이 있고, 혼자지만 스스로의 삶을 충실히 꾸려 가는 분들도 상당수다. 그러니 독거노인 문제의 해법은 ‘누구와 사느냐’가 아닌 ‘어떻게 사느냐’의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 터이다. 일률적인 주거나 생필품 지원이 아닌, 보다 가까이에서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챙길 수 있는 대책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