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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Feb 21. 2017

산딸기의 임금님을 기억하세요?

딸기의 족보와 그 친척들

계몽사 50권 동화를 읽고 자란 세대라면 아마도 '산딸기의 임금님'이라는 북유럽 민화를 기억할 것이다. 

텔레즈와 아이나라는 두 소녀는 어느날 오빠인 로렌조가 죽이려던 딸기 벌레를 살려준다. 

그리고 그날 오후, 둘은 겨울에 먹을 잼을 만들 딸기를 따러 가는데 그만 숲에서 길을 잃고 만다.

무섭고 배가 고파서 엉엉 우는 두 사람 앞에 난데없이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와 우유가 쥐어진다.

영문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더니 이번에는 푹신한 침대가, 자고 일어난 후에는 모닝커피까지 나온다.

알고 보니 전날 텔레즈와 아이나가 구해준 벌레가 바로 딸기나라의 임금님이었고, 

곤경에 처한 둘을 보자 임금님이 은혜를 갚은 거였다고.... 

임금님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형제들을 위한 선물로 어마어마한 양의 딸기가 있었다고 한다.

.....


그런데 반전(!)하나. 여기 나오는 딸기는 우리가 흔히 보는 그 딸기가 아니었다. 

산딸기라는 과일을 알고는 있었지만 당시 시중엔 산딸기 잼이라는 게 없었기 때문에 착각한 것임. 

산딸기의 임금님의 그 딸기는 라즈베리라고도 불리는 나무딸기를 말한다. 

오늘날 봄날의 시장과 마트를 점령하는 딸기는 심지어...자연적으로 생겨난 품종도 아니다!

따라서 중세나 근세를 배경으로 한 동화나 문학작품에 딸기라는 과일명이 등장한다면 

거의 대부분 숲에 자생하는 나무딸기를 가리킬 가능성이 높다. 


딸기(Strawberry)의 기원은 1712년 남미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식물학자 아메데 프랑소와 프레제(Amédée-François Frézier)는 칠레에서 야생딸기를 조사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정체는 프랑스 육군의 스파이로, 딸기를 관찰하는 동시에 군사정보를 채집했던 것이다.

프랑스에 돌아온 후 프레제는 딸기에 대한 관찰일기를 책으로 출간하고 종자를 심었다. 

불어로 딸기를 가리키는 '프레제'는 바로 그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토종 칠레 딸기는 예쁜 열매를 맺었으나 사람이 먹을 수는 없었다. 서구인들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북미 버지니아 종 야생딸기와의 교배를 통해 오늘날의 딸기 종자를 만들어냈다. 


딸기는 봄을 상징하는 과일로 그 달콤한 맛과 빛깔 때문인지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다. 

각종 디저트의 단골 재료로 쓰이며, 요즘 같은 철에는 호텔에서 호사스런 딸기 뷔페가 열린다. 

생각해 보니 나도 어릴때는 아이스크림 중에서 딸기맛을 유난히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신경숙의 소설 '딸기밭'에서도 딸기는 풋풋한 스무살 두 여주인공의 삶과 사랑을 묘사하는 소재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모양도 너무 반듯하고 설탕처럼 단 딸기에 약간은 거부감이 든다. 

마치 한 사람의 있는 그대로보다는 정형화된 틀을 강요하는 사회를 떠올리게 한달까...

(딸기 얘기 하면서 외모지상주의로 빠지다니...--;;;)


이런 이유로, 어른이 된 지금은 왠지 투박한 느낌을 주는 산딸기에 더 정감이 간다. 

여름 한철 스쳐가니 더욱 귀한 과일 같고 산딸기 따러 다니다 뱀에 쫓기던 추억도 떠오른다.

잼도 산미가 강한 라즈베리 잼 쪽이 좀 더 야생에 가까운 맛인 듯 하다. 

아... 참고로 한약재로 쓰이는 복분자는 덜 익은 산딸기를 말려서 쓰는 것으로, 

술이나 잼 재료인 검붉은 복분자와는 좀 다른 종류를 말한다. 맛보다는 약으로 먹는 셈이다.    

또 강원도 산골 어린이들은 연보라색 초롱꽃에 산딸기를 넣어 쌈으로 싸서 먹는다고 한다.    

이런 운치도 아마 세월에 따라 사라져갈 듯 싶다. 올해는 딸기축제 대신 산딸기를 실컷 먹어볼까..

(하지만 재래시장 가도 이제는 제법 비싸단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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