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친근한 멕시코의 문화
픽사의 최신작 애니메이션 ‘CoCo’는 아름다운 음악과 가족이라는 훈훈한 메시지 외에도 세밀하게 묘사한 멕시코 문화가 또 다른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실제로 작품을 위해 감독과 제작진이 무려 3년간 멕시코에 거주했다고...)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는 ‘죽은 자들의 날’은 원래 아즈텍인들의 명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죽음을 불길하게 여기는 서구인들과 달리 남미 원주민들에게 죽음은 삶과 가까운 친근한 존재이며, 죽은 자들의 날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축제에 가깝다.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 제국주의자들은 이 ‘이교도 풍습’을 없애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서양의 할로윈과 겹쳐지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게 된다. 10월 말 죽은 자들의 날이 오면 멕시코인들은 어른에게는 데킬라와 담배, 어린이에게는 장난감을 무덤에 가져가 애도를 한다.
미겔의 가족들이 제단에 조상들의 사진을 올려놓고 먹을거리며 장식으로 치장하는 장면을 보면 우리나라 제사 문화와 흡사해 신기한 느낌이 든다.
어쨌든 이 즐거운 축제에 먹을 것이 빠질 수 없는 법. 서민들의 살림이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멕시코이지만 이 지역에서 풍부한 몇 안 되는 식재료가 죽은 자들의 날에 ‘필수템’으로 등장한다. 바로 설탕이다.
다만 멕시코 사람들이 주로 먹는 설탕은 우리가 먹는 백설탕이나 황설탕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별도의 정제 과정 없이 사탕수수즙을 졸여 만든 필론칠로(piloncillo)라는 갈색 덩어리가 일반적인 멕시코 가정에서 사용하는 설탕이다.
돌처럼 딱딱한 필론칠로는 녹여서 먹기도 하고, 치즈 그라인더 등을 이용해 각종 요리에 쓴다. 우리가 보기엔 좀 낯설지만 사탕수수 자체의 영양성분이 살아 있어 오히려 일반 설탕보다 건강에는 좋은 편이라고 한다.
죽은 자들의 날이 오면 멕시코에서는 설탕과 초콜릿으로 뼈다귀 모양을 한 과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음식이라기보다는 장식용에 가깝긴 하지만. 할로윈의 영향을 받았는지 호박에 녹인 필론칠로를 묻혀 먹기도 한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이면 설탕으로 만든 해골의 이마에 죽은 이의 이름을 써넣고 나눠 먹는 풍습도 있다. 색소를 넣기도 하고 깃털이나 스팽글 등으로 장식하기도 하는데, 명절을 전후해 시장이나 노점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미겔과 가족들의 저녁 식탁에 오르는 ‘타말레스’도 죽은 자들의 날에 자주 먹는 메뉴이다. 칠리소스로 양념한 돼지고기나 닭고기, 치즈, 채소 같은 다양한 재료를 옥수수 잎에 싸서 찌는데, 찌기 전 잎 안쪽에 옥수수가루와 쇼트닝을 섞은 반죽을 바른다.
타말레스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로, 꼭 축제일이 아니더라도 일반 가정에서 흔하게 맛볼 수 있으며 아즈텍 문명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유서 깊은 음식이다.
아티초크 페이스트와 오렌지 주스, 각종 허브를 넣어 밑간한 닭고기를 토마토, 양파와 함께 바나나 잎으로 싼 ‘피비폴로’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이 요리는 땅을 파고 구덩이에서 익힌 것이기 때문에 죽은 자의 영혼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여겨진다.
노란 빛깔의 ‘죽은 자들의 빵(pan de muertos)’은 죽은 자들의 날에만 특별히 만들어 먹는다. 밀가루 반죽에 아니스 씨앗과 오렌지 껍질로 향을 내고 발효시켜 굽는데, 모양은 다양하게 변형시킬 수 있으며 설탕 해골을 안에 넣어 굽기도 한다.
끝으로, 우유와 물, 옥수수가루, 설탕 등을 섞은 ‘아톨(Atole)’도 죽은 자들의 날을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시나몬, 바닐라로 향을 낸 이 뜨겁고 걸쭉한 음료는 죽은 이의 영혼이 무사히 무덤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력을 돋워 준다고.
우리나라에서 제사가 끝나면 음식을 나눠 먹는 것처럼, ‘코코’에서 선조들의 영혼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 미겔 가족의 모습을 보면 다르지만 또 같은 인간 사회의 보편성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