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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Mar 24. 2020

신기루 같은 하룻밤의 만찬

'보바리 부인'속 프랑스 오트퀴진

“전 재벌 2세가 꿈인데 아빠가 노력을 너무 안해요”      

어느 초등학생이 썼다는 인터넷 글은 한편으로는 우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계층 구조가 그만큼 공고화되고 있다는 메시지로도 해석할 수 있어 씁쓸하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꿈꾸는 ‘상류사회’라는 곳이 본인의 노력보다는 태어난 신분이나 재력 같은 선천적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는 현실을 이 짧은 글은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이처럼 ‘바꿀 수 없는 선천적 환경’ 때문에 좌절감을 맛보고, 눈앞의 행복을 보지 못한 채 환상 속에 사는 이들 중에서는 아무래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성들이 남성 못지않게 능력을 발휘하는 ‘알파걸’의 시대가 왔다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여성들은 학업과 취업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약자에 머물고 있다. 이른바 ‘신데렐라’나 ‘취집’, ‘된장녀’ 같은 신조어들이 생겨난 계기도 남성의 지위를 따라잡기 힘든 여성들이 그들의 외모나 매력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라 해석 가능하다. 


지금이야 그래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많이 향상됐다지만, 투표권도 주어지지 않고 마음대로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의 여성들은 어땠을까.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은 미모와 자존감을 지니고도 주어진 현실을 벗어날 수 없어 꿈속에 살다, 결국 스스로 파멸하고 마는 한 여성의 비극을 그린 자연주의 소설이다.      


부유한 농부의 딸인 여주인공 엠마는 시골 여성이지만 빼어난 미모에 수녀원 학교에 다니면서 교양까지 쌓은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진찰하러 온 의사 샤를의 구애에 설렘을 느끼고, 그의 나이 많은 아내가 급사하자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에 대한 로맨틱한 환상을 갖고 있던 엠마는 한밤중에 횃불을 켜 놓고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했으나, 아버지는 그런 딸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술꾼들이 시끌벅적 떠드는 요란한 잔치가 며칠이고 계속된다. 짐수레 헛간에 준비된 식탁에는 소 등심고기, 병아리 프리카세, 송아지 스튜, 양 허벅다리 고기, 통돼지구이, 미나리를 곁들인 소시지(필자가 읽은 번역본에는 ‘순대’라고 되어 있는데 정황상 소시지와 조금 다른, ‘부댕’이라는 이름의 선지가 들어간 블랙 푸딩일 가능성도 있다) 등 죄다 고기 요리이다. 여기에 통에 넣은 브랜디와 애플 시드르, 와인 등이 반주로 곁들여진다. 

노르망디 향토요리인 홍합과 감자튀김

이 부분에서 우리는 소설의 배경이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 지역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자주 등장하는 ‘루앙’이란 지명은 노르망디의 중심지로 발달해 온 도시이며 엠마의 건강 때문에 남편 샤를이 이사한 곳도 루앙 인근의 ‘용빌’이란 작은 마을이다. 플로베르가 작품의 모티브로 삼은 ‘들로네 사건’ 역시 작품 속 배경과 가까운 ‘리’라는 지역에서 한 시골 의사의 아내가 자살한 실제 사건을 말한다.  


대체로 프랑스 요리 하면 화려한 메뉴를 떠올리지만 어느 나라나 그렇듯, 현지의 서민들이 먹는 음식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특히 그 중에서도 노르망디 향토 요리는 비교적 조리법이 단순하고 기교가 적은 편이다. 잔치 장면에 나오는 ‘프리카세’란 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어 끓인 크림 스튜이며 애플 시드르는 우리가 무색투명한 탄산음료로 잘못 알고 있는 ‘사이다(Cider)’, 즉 사과를 발효시킨 도수가 가벼운 술을 가리킨다. 사과가 많이 생산되는 노르망디에서는 애플 시드르를 음료로 즐기는 동시에 다양한 요리에 활용한다. 노르망디 특산의 브랜디 ‘칼바도스’는 이 시드르를 증류해 만든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 만찬을 묘사한 대목에는 “노란 크림을 쌓아올린 큰 접시는 식탁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고, 그 위에는 신랑 신부의 머릿글자가 당초무늬로 새겨져 있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번역이 약간 모호하긴 하지만 이것은 아마 프랑스식 웨딩케익인 크로캉부슈일 것으로 짐작된다. 크로캉부슈는 슈크림을 탑처럼 수십 개 쌓아올려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든 후 실처럼 가늘게 뽑은 설탕시럽으로 장식한 과자이다. 일반적인 웨딩케익과는 달리 하객들이 하나씩 나눠 먹을 수 있는 이 과자의 원조는 현대 프랑스 디저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앙투안 카렘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설탕 시럽 장식은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어렵다보니 바로 뒷 문장의 ”투르트와 누가를 만들기 위해 이브토에서 일부러 기술자를 데려왔다“는 대목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기술자는 식후에 고성과 큐핏 등을 소재로 한, 화려하지만 왠지 촌스러울 듯도 한 과자를 날라 온다. 


한편 엠마의 결혼식과 가장 대비를 이루는 이 작품의 ‘먹방’으로는 샤를 부부가 초대돼 간 어느 남작 집의 저녁 만찬이 있다. 샤를에게 치료를 받은 남작은 시골 여자답지 않게 우아한 엠마의 모습에 이끌려 두 사람을 무도회의 손님으로 부른다. 이날의 파티는 상류 사회를 동경하며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끼던 엠마에게 그야말로 ‘제대로’ 바람을 넣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녁식사를 위해 홀에 들어선 엠마는 ‘고기와 송로, 테이블클로스의 향기’ 등이 뒤섞인 따뜻한 공기에 휩싸인다. 


부유하지만 평범한 시골 농부의 딸인 그녀에게 남작 집의 저녁식사는 말 그대로 신세계를 보여준다. 바닷가재와 깃털이 달린 메추라기, 생전 처음 구경하는 석류와 파인애플 등 낯선 음식들은 엠마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녀는 얼음에 채운 샴페인 맛처럼 강렬한 문화충격을 경험한다.  

프렌치 오트퀴진의 예

프랑스에서 ‘오마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바닷가재는 지금도 레스토랑의 고급 메뉴로 대접받고 있다. 19세기 미국 동부에서는 바닷가재가 빵보다도 쌌다는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사실 이는 조리법 탓이 크다. 끓는 물에 장시간 삶으니 맛있는 육즙이 빠져버리는 것은 당연지사였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테르미도르’라는 바닷가재 요리는 가재 머리로 낸 육수에 화이트 와인과 생크림 등을 섞어 소스를 만들고, 그 소스를 치즈와 함께 가재 위에 얹어 구워낸다. 


메추라기는 고기보다 알로 우리에게 친숙한 새이다. 메추라기 고기가 대중적이지 못한 이유는 크기가 작고 살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인데 풍미와 식감 면에서는 오히려 닭고기보다 낫다는 이들도 많다. 영등포시장 등지에 가면 연탄불에 구운 메추라기 고기를 맛볼 수 있는데 바삭한 껍질 아래 주이시한 육즙이 식욕을 돋운다. 닭고기에 비해 야취(野臭)가 강한 이 새는 허브와 마늘을 곁들이거나 유산지로 싸서 굽기도 하며, 레드 와인에 바짝 조리는 방법도 있다.  


식사 후 열린 무도회에서도 호화로운 음식의 향연은 이어진다. 춤을 추던 엠마는 마라스캉 주를 넣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떠 넣으며 황홀한 상상에 젖는데, 이 술은 리큐르의 일종인 무색 투명한 체리 브랜디를 말한다. 맛이 달콤한 리큐르는 주로 귀부인들이 즐겨 마셨으며 각종 과나 디저트 재료로도 많이 쓰였다. 그밖에도 새우와 아몬드 즙이 섞인 수프, 트라팔가의 푸딩, 온갖 냉육 등이 밤참으로 제공된다. 


생전 처음으로 아름다운 세계를 접한 엠마의 마음은 무도회가 끝난 그 순간부터 붕 뜨기 시작했다. 마치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엠마는 집에 오자마자 하녀에게 짜증을 내고 “역시 집 밥이 맛있다”는 남편을 속으로 한심하게 여긴다. 몽상 속에 빠진 그녀의 행동은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변해 아무것도 아닌 요리에 특별한 이름을 붙이는가 하면 사치스러운 물건들을 사들인다. 그저 엠마가 아프다고만 생각한 샤를은 용빌로 이사를 감행하고, 그곳에서 그녀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남성과 사랑에 빠진다. 


작품 속에 묘사되는 음식들은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고급 레스토랑에 가야 맛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송로버섯’은 전직 대통령의 만찬에 등장하면서 뜻하지 않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런 프랑스 요리의 이미지에 지나치게 거품이 끼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누벨 퀴진’ 같은 새로운 음식 트렌드가 생겨난 것도 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요리에 대한 필요성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격식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풍조도 프랑스 요리에 붙은 프리미엄을 어느 정도 제거하는 역할을 했다. 


엠마가 그토록 손에 넣고 싶어 했던 화려하고 낭만적인 삶도 결국은 시대와 함께 사라져갈 허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지은 오귀스트 플로베르 역시 사망하기 직전 “내가 바로 보바리였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곁에도 재벌2세 드라마에 빠져 가까이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는 이들은 너무나 많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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