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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Oct 06. 2018

크림, 크림, cream, cream!

꽤 오래 전 일이지만 내가 싫어하는 음식 리스트에는 '케이크'가 포함돼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80년대 초, 중반에는 거의 모든 제과점이 버터크림만 사용했던 탓이다.

그 인공적인 단맛과 느끼함, 양초라도 씹은 듯한 식감 때문에 나는 크림 바른 케이크를 

싫어했고, 먹더라도 크림을 싹싹 긁어내고 먹었다. 

그러다 90년대 초반 처음 만난 생크림 케이크는 내게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크림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다니... 물론 비싸서 자주 사먹을 수는 없었지만 

생크림 케이크는 나의학창시절 내내 '최애템'중 하나로 남아 있었다. 


버터크림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된 것은 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을 읽고 나서이다.

안 그래도 케이크를 싫어하는 타치바나가 버터크림이라는 말에 기겁하는데, 

오노가 (양주를 듬뿍 넣고) 제대로 만든 버터크림을 맛보여주자 저절로 납득...

만화에도 설명이 나오지만 그 당시 시판되던 케이크의 버터크림은 쇼트닝 같은

인공 재료로 만드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좀 괜찮은 빵집에서 고퀄의 버터크림을 맛보고 나는 그 말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유제품이 비싼 편인 우리나라에서 크림이나 버터는 단가가 꽤 많이 든다.

그렇다보니 빵집들은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 이런 편법을 사용하는 것.

심지어 생크림마저도 최근까지도 제대로 된 가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음식 드라마를 표방한 막드 제빵왕 김탁구에서 주원은 케이크를 만드는 이영아에게

"100% 생크림으로만 하면 맛이 느끼해져 식물성 유지를 섞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당시 제과점들이 대부분 그렇게 했던 건 맞지만 사실 그건 맛이 아니라 편의성 때문이다.

우유 생크림은 다소 흐물거리다보니 식물성 유지를 첨가해 빳빳하게 만들어

데코레이션하기 쉽게 했던 것. 물론 제조 단가를 낮춰야 한다는 이유도 작용했다. 

동물성 크림이 맛과 영양 면에서 더 낫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암튼 생크림 케이크에 바르는 생크림은 보통 '크림 샹티이'라고 한다. 

'샹티이'는 불어로 '성(Castle)'을 의미하는데 뾰족하게 솟은 모습에서 착안한 것.

예전에 나는 생크림을 사다 아무리 저어도 거품이 나지 않아 좌절(ㅠㅠ)한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빙빙 돌려 젓는 게 아니라 탁탁 치듯이 섞어줘야 한다는 걸 깨우치고

한동안 신나게 생크림 삼매경에 빠져 지낸 기억이 난다.(후덜거리는 팔은 덤)


입맛이 변한 지금은 꼭 생크림만 찾지는 않는다. 버터크림도 나름의 매력이 있고

꾸덕한 클로티드 크림은 스콘에 곁들이면 생크림의 맛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클로티드 크림은 시중에서 자주 보기 힘들지만 집에서 의외로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생크림을 아주아주 약한 불에 올려 데우면 얇은 막 같은 게 형성되는데 이를 

걷어서 식히면 클로티드 크림이 완성된다.

(종종 이마트에서 크렘 프레슈와 클로티드를 파는 걸 보긴 함)


참고로 생크림을 한 통 사면 남는 일이 많은 데 그럴 때 처리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냉동시켰다가 스튜, 커리 등을 만들 때 넣는 것이다. 

다만 크림은 한번 얼리면 다시 거품이 나지 않으므로 신중히 생각을...

두 번째는 버터를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을 찾아낸 건 진짜 우연인데,

한번은 생크림을 지나치게 젓다 보니 뻣뻣해진 적이 있었다. 

젓기도 힘든 크림을 꾸역꾸역 계속 젓다 보니 어느 순간 수분이 분리되면서

버터가 만들어진다. 만드는 과정이 꽤나 고되지만 금방 만든 버터의 

맛을 보고 싶다면 '강추'하는 방법이다. 

(무염 버터이므로 제과제빵에 활용하는데도 용이하다...)

글고 보니 '초원의 집'에서 어머니가 겨울에 짠 우유로 버터를 만들면

샛노란 빛깔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당근즙으로 물들이는 장면이 떠오른다... 


영어로 '크림'이라는 단어에는 '정수', '알짜'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하긴 케이크 위 생크림은 맛을 완성시키고 장식 효과를 내는 '정수'이다.

지금은 추억의 메뉴가 된 파르페 위 생크림이나 비엔나 커피 위에 

원뿔 모양으로 쌓인 크림도 왠지 마음이 설레게 만든다. 

차갑고 달콤한 크림에는 사람의 기분을 '노곤하게'하는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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