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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Nov 24. 2018

오미자가 주는 다섯 가지 즐거움

오미자 막걸리 오희

*술펀닷컴(www.sulfun.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조선 21대 임금 영조는 집에서 술을 빚은 무관을 남대문에서 공개 참수할 정도로 엄격한 금주령을 내렸다. 그런데 우습게도 궁궐에서 영조 자신이 몰래 술을 마신다는 소문이 돌았고, 신하들이 이에 대해 묻자 “오미자차를 마셨을 뿐”이라며 변명했다고 한다.


다만 일설에는 왕의 체신을 지켜주기 위해서인지 영조가 마셨던 음료가 오미자주가 아닌 생맥산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생맥산은 오미자에 맥문동, 인삼, 황기, 감초 등을 달여 시원하게 마시는 음료로 동의보감에는 “사람의 기를 도우며 심장의 열을 내리게 하고 폐를 깨끗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달고, 쓰고, 시고, 맵고, 짠 다섯 가지 맛이 난다는 오미자에는 혈류 개선, 고혈압 및 심혈관 질환 예방, 당뇨 예방, 원기 회복 등의 효과가 있으며 간기능과 호흡기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금주령을 내린 임금이 신하들 몰래 마실 만큼 오미자주는 향기롭고 맛이 좋았던 것 같다.



고려 말과 조선 초의 학자인 권근은 오미자를 소재로 시를 쓰기도 했다.


어두운 눈을 맑게 해주고

마른 목을 촉촉하게 해주며

막힌 가슴을 씻어주는 데다가

마시면 양쪽 겨드랑이에 바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오미자는 특히 품질이 좋고 살이 많으며 새콤달콤한 맛이 살아 있어 중국에 가는 사신들이 각종 하례 행사 선물로 가져갔다는 기록이 있다. 말린 오미자를 우린 연분홍 빛깔의 물은 시각적으로 보기 좋아 거의 모든 화채류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오미자 물을 차갑 게 식혀 각종 고명을 띄워 내는데 계절에 따라 진달래, 보리알, 배, 장미꽃, 앵두 등이 들어가며 녹말 반죽을 국수처럼 채 썰어 넣는‘화면(꽃국수)’도 있다.


열매 외에 뿌리에도 약효가 있어 조선 중기 정치인이자 문장가인 윤두수는 지인인 최흥원에게 한시를 지어 오미자 뿌리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오래도록 상공의 약상자에 의지하였으니

무슨 마음으로 인삼 백출로 효험을 보리이까

깊은 가을에 홍단자가 생각나서

오미자 신령한 뿌리 몇 떨기를 빌립니다


오미자에는 로맨틱한 전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음력 7월 7일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만날 때 까마귀와 까치들이 오미자 덩굴을 물어다가 오작교를 만들었다는 것.


이처럼 맛과 영양이 뛰어나며 풍류도 함께 겸비한 오미자는 술을 빚어도 적당한 산미와 단맛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 전통 방식의 오미자주를 빚을 때는 우선 멥쌀로 고두밥을 지어 식혔다가 누룩과 물을 부어 발효시킨다. 이것을 소주고리로 증류하는데 고리 끝에 헝겊을 묶어 증기가 내려오는 곳에 오미자를 두와 맛과 향이 배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가정에서 만들 수 있는 오미자주는 소주에 오미자를 넣고 밀봉한 다음 10일 후 개봉해 여과지에 붓고 설탕을 넣는다. 1개월이 지나면 적갈색의 약술이 된다.


보다 간단하게 만들려면 오미자청을 마시고 남은 찌꺼기에 소주를 부어 3개월 익히는 방법도 있다. 다만 이렇게 만든 오미자주는 의외로 도수가 높아 단맛에 홀짝홀짝 마시다가 ‘훅 가는’ 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대학시절 필자는 집에서 담근 오미자주를 몰래 조금씩 떠 마시다 취해 엄마의 등짝스매싱을 맞은 기억이 있다.


 문경주조 공식홈페이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오미자 전통주로는 막걸리를 베이스로 만든 ‘오희’가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만찬주로 유명세를 탄 오희는 일반 막걸리보다 맑고 투명하며 2차 발효 때 오미자를 첨가해 선홍색이 또렷하게 살아 있다. 도수 8.5%의 오희는 톡 쏘는 탄산이 청량감을 주며, 단맛이 적고 적절한 산미와 오미자 특유의 은은한 스파이시향이 난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술꾼들에게 권할 법 하며 맛이 산뜻해 기름진 안주와 궁합이 좋다.


오미자주에는 강장, 무기력, 식욕 증진 등의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술이니 적당히 마시고 과음은 피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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