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 마을로 유배되었다. (1)

교사의 발령은 가끔씩 유배처럼 찾아온다.

by 최선

발령지를 보자마자, 바다 냄새가 나는 기분이었다. 교사의 발령은 가끔 유배처럼 불쑥 찾아온다. 준비도, 선택도 없이.


내가 사는 지역에는 임용 TO가 현저히 적었다. 한 명 내지 두 명을 뽑을까 말까 했다. 오래도록 사랑해 온 나의 고향을 뒤로하고 내가 임용을 응시한 곳은 어느 도지역이었다. 그곳은 어머니의 고향이었고, 따로 연고지가 없던 나는 그저 선발 인원에 혹하여 임용을 치게 되었다. 그렇게 임용 합격 후 생활 근거지를 기점으로 희망지를 3순위까지 적어냈다. 내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바닷가에 근접한 도시로 갈 것인가, 혹은 고향과 가까운 시골로 갈 것인가.


임용 결과 발표를 기다리며 나는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 졌던 순간이 있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산을 오를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내가 고른 희망지는 바로 이곳이었다. 사실상 내가 지원한다고 해서 인기가 많은 도시로 갈 확률이 현저히 낮을뿐더러 어차피 신규 발령 교사의 무덤에 묻힌다면, 내 발로 가는 것이 그나마 나았다. 또 하나의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집값이었다. 임용 합격과 동시에 가장 아닌 가장이 된 내게 금전적인 이유는 꽤 컸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비릿한 바다가 아름다운 유배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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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쓴 자전 소설에서 나는 엄마와 나의 관계를 묘사할 때 이 같은 표현을 썼었다. 엄마의 죽음을 먹고 태어난 아이. 무슨 해리포터도 아니고 우스운 표현이 아닐 수 없으나, 절반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우리 엄마는 마흔다섯에 나를 낳았다. 당시에는 꽤나 충격적인 출산이었다. 산모는 출산 직전에도 흡연을 했고, 아이는 2.4Kg의 작은 몸집이었다. 결혼연령이 지금보다 한참 일렀던 그 당시, 엄마의 친구들은 일찍 낳아 키운 아이를 독립시키고 이제 노후를 맞이할 나이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노후를 잡아먹을 것을 무섭게 예고하며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늘 나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다른 엄마들을 좇기 바빴다. 운전이 그중 하나였다.


내가 임용에 합격한 당시 우리 엄마의 나이는 예순아홉이었다. 칠순을 한 해 앞둔 그 나이에 우리 엄마는 그 작은 손으로 핸들을 움켜쥐며 평생 올라본 적 없던 고속도로에 올랐다. 유배지 아니 발령지는 산으로 둘러싸인 내 고향에서는 결코 볼 수 없을 만큼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세상에는 바다를 업으로 살아가는 삶도 있다는 것을 그제야 두 눈으로 실감했다. 늘어선 횟집과 양식장, 멀리 보이는 조선소의 모습까지 그곳은 생의 현장 그 자체였다.


인생에서 겨우 교사가 되었다는 것 하나를 업적으로 둔 내가 짙고 깊은 바다에 압도되는 순간이었다. 최인훈의 <광장>에 나온 첫 문장의 묘사가 떠올랐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지평이 내 눈에 아른거리는 수평선만큼 넓어지는 것을 목격하며 유배지에 첫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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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차에서 내려 향한 곳은 부동산이었다. 2월 중순에 발령을 받고, 3월 초에 바로 근무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집을 급하게 구해야 했다. 당시는 이사철이었기에 매물은 많았다. 그리고 그곳은 확실히 남쪽 끝 바다 마을이라는 이유에선지 월세가 내 고향보다는 훨씬 저렴했다. 그렇게 나는 브랜드 아파트를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으로 구해서 들어갔다.


집값을 따지면서 굳이 아파트를 들어간 이유는 오직 하나, 엄마였다. 여러 이유로 아버지와 떨어져 지낸 지 몇 년이 된 상황에서 이제 내가 가장 아닌 가장이었다. 집 계약도, 생활비도, 온갖 법적 사회적 문제도 내가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모시고 1000에 40짜리 아파트를 계약했다.


부동산 투기를 좋아했던 아빠 덕분에 아파트는 돈이 안된다는 이상한 명분으로 늘 월세를 살며 이사를 다녔다. 2년에 한 번 있는 행사가 나에게는 아주 익숙하고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어쨌든 나는 취업에 성공했고, 저렴한 집값으로 브랜드 아파트에 살아보는 경험을 하는 거니까. 그 순간만큼은 바다의 비릿한 향이 꽤나 달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 행선지인 발령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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