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영정과 어머니의 울음
첫 해에 2학년, 두 번째 해에 3학년, 그리고 현재 다시 3학년을 맡으면서 올해 아이들은 내가 학교에서 가르친 적이 없는 아이들었다. 3년을 학교에서 근무했지만, 작년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일은 꽤나 허탈했고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하는 일은 마치 모두가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데 나만 도돌이표를 그리는 느낌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늘 교사를 뛰어넘어 새로운 영감을 선사했다. 스물여덟명으로 구성된 우리 학급에는 정말 스물여덟가지의 사연이 있었다. 어쩌면 스물아홉 개일지도 모르겠다. 담임도 동물의 숲 게임에 나오는 이웃 주민 같은 NPC가 아니라 유저니까.
낯선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나를 낯설어 했다. 조심스러워 하였으나 동시에 살갑게 다가와 주었다. 하지만 이전부터 아이들을 봐왔던 선생님들과는 라포의 수준이 달랐다. 인생에서 가장 어설프지만 날카롭게 빛나는 그 열일곱, 열여덟을 함께 보낸 사람일 테니 아쉬운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맞이한 2025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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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아이들은 그간 자신에게 진심을 다해 마음을 내어준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이었던 나는 스승의 날 교사의 심정에 대해 감히 추측만 할 뿐 깊게 고민해 본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스승의 날은 마치 중간고사와 같은 느낌이라는 것을. 성적표는 나오지 않지만, 어쩌면 분명한 평가의 날이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준 마음을 아이들은 마치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이 소중한 마음으로 돌려주었다. 초여름의 시작을 알리듯 비가 많이 내리던 그 날, 우리 반 아이들은 내게 장미꽃다발을 건넸다. 그 마음은 너무 작고 소중해서 내가 감히 닿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선물의 크기나 편지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설프게 옆반을 따라 준비한 다섯 송이의 장미꽃은 내가 올해 이 학급을 온 마음 다해 맡는 일에 어떠한 의구심도 가지지 않도록 만드는 데 충분했다.
다만 비가 많이 내리던 그 날, 모두가 겪는 열여덟, 열아홉을 사무치게 아파했던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처음 연락을 받은 것은 주무관님을 통해서였다. 학교 내선번호로 전화가 왔다고 한다. 경찰서에서 온 전화였다. 학생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보호자 연락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로 전화를 걸어 온 것이었다. 놀라고 당황한 주무관님은 담임이었던 선생님께 알렸다. 그리고 그 선생님께서는 잠깐 나를 불러 이야기를 전했다.
경황이 없던 그날 하루, 우리는 성로원과 학부모님께 소식을 전하고 황망히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여전히 세상은 믿기지 않게 아름다운 스승의 날이었고, 주변의 선생님들 자리엔 만개한 색색의 꽃다발이 가득했다. 수줍게 전하는 학생의 감사 인사와 붉게 상기된 선생님들의 기쁜 뺨은 유난히 흐리고 어둡던 하늘과 대비되었다. 그렇게 퇴근 후 작년 담임 선생님과 나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빗속을 뚫고 도착한 우리는 ATM기 앞에 멈추어 섰다. 그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내가 그 아이를 위해 현금을 인출하는 일. 이전에 아이가 가출했을 때 나를 잠시 만났던 적 있다. 그때 나는 밥도 못 챙겨먹고 다닐 아이가 안타까워 무작정 편의점으로 달려가 ATM기 앞에 섰다. 현금을 인출하려고 카드를 넣는데 하필 그날 따라 인출이 안되는 것이다. 편의점 사장님께서는 고장이라는 말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아이가 좋아할 만한 크림빵, 바나나 우유, 초콜릿 등을 보이는 대로 담아 전해줄 뿐이었다. 장례식장 ATM기 앞에서 그날이 떠올랐다. 내가 그때 쥐어주지 못한 현금을 조의금으로 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슴은 울렁거리고 먹먹했다. 너무 믿기지 않아서 였을까, 눈물은 고일 뿐 흐르지 않았다. 감히 내가 슬퍼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영정 앞에 섰다.
졸업 후 민증 사진을 만들기 위해 찍은 증명사진이 그대로 영정으로 쓰였다. 너무 어리고 예뻤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기에는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볼, 유난히 슬퍼보이는 눈, 앙다문 입술까지, 믿어지지 않았다. 절을 올릴 때 아이의 어머니께서는 쓰러지듯 오열하셨다. 비밀 전학에 가정폭력 소송에 바람잘 날 없던 모녀관계 였을지라도 딸은 딸이었다. 그녀가 낳은 핏덩이가 싸늘하게 희고 말간 영정이 되어버렸다. 그 앞에서 나는 무력감과 어지럼증 그 사이에서 혼미했다. 밥술을 뜨는 둥 마는 둥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다들 검은 옷으로 비를 맞고 돌아온 나를 걱정해 주셨다. 여전히 하늘은 뚫린 듯 폭우가 쏟아졌고, 나는 그날 그 아이의 영정을, 그 어머니의 울음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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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매년 3월부터 2월까지, 입학부터 졸업까지, 8시 30분부터 16시 30분까지, 1교시부터 7교시까지 끝도 없는 일과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 속의 사연은 너무나 선명하고 짙어서 나는 늘 그 일과를 헤매며 살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프지만, 혹은 행복하고 감사하지만 학교는 돌아간다. 2025년 5월 15일, 그날 나는 실감했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